감성을 적시다

콘서트에 다녀오다.

by 바다나무

어린이날 연휴 동안 비 온 끝이라 날씨가 소 쌀쌀하다.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3시에 콘서트가 예약되어 있다. 이사 오는 것에 대비해 이 지역에 예약해 두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나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복장으로 준비했다.


콘서트에 갈 때는 왜 다른 날 보다 옷에 조금 더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서 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까 혹여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일까? 가끔 결혼식 하객으로 갔을 때 등산복차림을 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다. 의식에 따라 복장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다소 고루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남편은 노래를 곧잘 부르고 관심이 많다. 현직에 있을 때도 제자와 듀엣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에 출연한 적도 있고, 학교의 축제마당에서 제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교사들과 학생들이 좋아했다. 그런 남편이 최백호 가수를 좋아한다. 물론 나도 좋아한다.


표를 예매한다고 하기에 잘 보이는 앞자리 아니면 안 간다고 했더니 로얄석으로 준비했다. 중앙의 앞에서 두 번째 자리다. 콘서트를 갈 때마다 좋은 자리가 아니면 그 만족감이 덜 했다. 처음에는 음악만 잘 들리면 됐지?라고 생각하다가 공연자의 얼굴이 안 보이면 왠지 교감이 덜 되는 것 같았다. 이왕 즐기려고 왔으면 좋은 자리에서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물론 금전과 관계되는 부분이라 다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면에서 아주 잘 보이는 자리이다.


최백호 가수는 중, 장년 층에게 인기 있는 가수다. 거친 허스키 보이스로 음유시인처럼 노래하는 어느새 고희를 넘은 낭만가수이다. 내 젊은 날 들었던 어머니를 여의고 그 그리움을 담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에 들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엔 그의 '낭만에 대하여'가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가정의 달 기념으로 시에서 기획한 공연으로 일반 공연 때보다 관람비가 조금 저렴하다. 가수의 노래가대 부분 조용한 노래라 공연장도 조용하다. 옆에 앉은 사람 숨소리까지 들릴 듯하다. 그의 노래는 촉촉이 가슴에 저며드는 노래다. 말하듯 나직나직하며 그의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다 백발의 깡마른 모습으로 열창을 할 때는 공연장이 꽉 채워진 듯 쩌렁쩌렁 울렸다. 앙코르송으로 윤시내 가수의 '열애'를 부를 때는 그가 원곡자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연세가 지긋하신 부부나 젊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온 분들이 많았다. 최백호 가수는 노래 중간중간 이야기 나눔에서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조금씩 풀어나갔다. 젊은 날은 상실과 상처의 연속으로 홀로 운둔생활을 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때 나온 노래들이 '영일만 친구 '와 '입영전야'이다. 사연을 듣고 노래를 들어보니 당시의 그의 상황들에 감정이입이 된다. 이렇게 관객과 가수는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시간 안에서.


고희가 넘은 자신의 나이를 적당한 나이라고 말하며 하루하루 주어지는 삶이 감동으로 채워져 감사하다고 한다. 나이가 먹는다는 건 결코 나쁘거나 슬프지 만은 않으며 불편하다면 노래 부를 때 한 호흡으로 부르던 것을 고희가 넘으니 세 호흡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90까지 노래를 부른다 하면 호흡만 더 쪼개면 된다라는 간단한 진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면 된다고 했다. 고 명쾌한 전리 앞에서 사람들은 그를 노래하는 철학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책을 읽고 사유가 깊은 탓인지 솔직 담백한 그분의 이야기는 전혀 멀거나 낯설지 않은 정겨운 부산 아저씨(할아버지?)였다. 최근 책도 출판하고 미술 선생님이셨던 어머니께 배운 그림실력으로 작품전시회도 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 낭만 가객의 콘서트는 잠시 분주했던 내 삶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했다.


나 역시 어제와 같은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에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변화와 감동을 주려고 했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나의 움직임을 통해 안주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욕심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삶을 살 때 나의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오랜 직장생활로 인한 습성이 나도 모르게 굳어진 건지도 모른다.


모처럼 차분하고 열정적인 어느 노가수의 콘서트에서 또 다른 삶의 지혜를 배워본다. 공연장을 나오는데 마주한 한 움큼의 바람이 신선하다. 또 다른 희망이다.


*대문사진 출처ㅡ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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