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바빠서 뛰었다. 아니 달렸다. 오죽하면 달리는 차 안에서도 뛰었을까? 지금은 노느라고 뛰어다닌다. 구경하느라고 달린다. 오늘은 모처럼 자전거 라이딩을 했다. 걸어 다니거나 자동차로 다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내 옆에서 느껴진다. 이 또한 얼마만인가? 최근 공원에서 잠깐 이동하느라고 자전거를 탔을 뿐 현관 앞에 몇 년간 자전거를 고이 모셔 놓았다. 날씨도 화창하고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기에 오늘은 육중한 자전거를 산책시켜 보기로 했다.
옛날 살던 D지역에서는 육교 하나 만 건너면 하천을 낀 자전거도로가 있어 자전거를 많이 탔다. 잘은 못 타지만 운동 삼아서. 그리곤 C도시로 이사 오면서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가려면 멀어서 차트렁크의 뒷좌석을 젖히고 자전거를 싣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타지 않았다. 아직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니면 무섭기도 하고 사고도 한번 났던 터라 겁이 나서 타지 않는다. 물론 오르막도 잘 올라가지 못하니 평생 자전거는 초보 수준을 넘지 못할 듯하다.
헬멧과 몸에 달라붙는 바지는 기본 안전장비다. 머리를 다치거나 페달에 바지통이 걸려 넘어질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몸매가 드러나는 자전거 바지를 입지 못했다. 민망스러워서. 타다보니 엉덩이에 쿠션감이 있는 그 옷이 무리가 덜가서 편했다. 그래도 나는 덧입는 짧은 스커트를 소지하고 다니다가 필요시 입는다. 아직도노출엔 자신이 없나보다. 얼굴이 탈까 봐 안면마스크로 얼굴도 가렸다. 누가 봐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쫓기는 신세도 아닌데 철벽방어다.
남편이 앞서서 길잡이를 한다. 어제 벌써 사전답사를 한 듯하다. 복장을 갖추고 타는 사람들끼리는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예의다. 다행히 이 길은 편도라 마주치는 사람은 없다. 방해물도 없다. 나처럼 어설픈 사람에게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가끔씩 이색적인 자연을 만나게 된다. 밀림 같은 습지를 만나기도 하고, 강물 위의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꽃길을 지나기도 한다. 라이딩을 할때마다 우리나라는 자전거도로가 참 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아름다운 금계국과 향연을 펼쳤다. 이렇게 넓은 금계국 들판은 처음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본 길가나 언덕배기에 핀 것과는 다른 황금세상이다. 그의 꽃말처럼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신선함이 있었다. 자동차보다는 느리고 걷는 것보다는 빠른 스치는 바람의 상쾌함, 이것이 자전거를 타는 묘미다. 어쩌면 그런 상쾌한 기분을 느끼라고 유독 자전거도로에는 금계국이 많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넓은 벌판을 달리며 꽃 속의 주인공이 되어본다. 다시없을 내 청춘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원래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보통은 어린 시절 배운 실력으로 자전거를 평생탄다고 하는데 나는 40대 후반에 자전거를 배웠다. 같은 소도시에 근무하셨던 교장선생님 몇 분이 발령이 나자 화분대신 조그만 자전거를 사서 보내주셨다. 앞에 바구니가 달린 아줌마들 시장 갈 때 타고 가는 자전거였다. 언제가 모임에서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신 듯했다. 뜻밖의 선물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이게 내가 자전거를 타게 된 계기다. 지금 생각하니 무척 센스 있고 넓은 혜안을 가지신 분들이었던 것 같아 다시금 감사한 맘이 들었다.
원장으로 승진발령을 집에서 먼곳으로 나서 아파트 사택에서 살았다. 그 지역에 근무하시는 교장선생님들은 지역분보다는 많은 분들이 나처럼 외지에서 와서 사택에 기거하며 근무하다가, 주말에는 본가로 갔다 월요일에 오시곤 하였다. 일종의 주말부부다. 그곳은 비선호지역이라 대부분 처음으로 교장승진하신 분들이 스치듯 다녀가시는 곳이었다. 오실 땐 다들 불편한 맘을 가지고 오셨다가 떠날 때는 서운해서 발길을 못 돌리는 정많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죽하면 멀어서 울고 들어갔다가 정이 들어 울고 나오는 곳이라 했던가.
집 떠난 외로움과 저녁시간의 허허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를 포함한 5명의 교장선생님들이 모임을 가졌다. 모임은 주일의 중간인 수요일쯤 만나 저녁 먹고 맥주 한잔 마시거나, 차 한잔 마시며 교육 관련 이야기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곤 하였다. 해가 긴 여름에는 주변의 가까운 산을 등산하거나 긴 장미터널을 산책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일주일이 빨리 갔다. 물론 다른 요일에는 교장선생님들은 퇴근 후 악기를 배우거나 골프, 수영을 배우며 취미생활을 하시기도 했다. 일명 그날은 등산이라는 명분으로 모임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1년 3개월을 근무하고 내가 제일 먼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그곳을 떠났다. 자전거는 그분들이 함께 보내준 영전의 축하선물이었다.
한동안 정말 자전거를 열심히 탔다. 저녁시간이나 휴일은 무조건 자전거를 탔으니까. 자전거를 배운 후에 라이딩을 한 능내역을 지나는 남한강 자전거 길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코스는 폐역이 된 철길을 따라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다가 통기타를 치며 7080 세대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있으면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함께 손뼉 치며 즐기기도 했다. 이렇게 잠시 쉬다 다시 달린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도 하고 마지막엔 비빔국수집이 있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주 오래된 기억이라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자전거라이딩을 하면서 느낀 생경한 문화는 내 기억 속에 오래 머물렀다.
오랜만의 자전거 외출이라 무리하지 않았다. 달리다가 다리밑의 넓은 평상쉼터에 누워 잠시 눈을 감기도 했다. 역시 다리밑은 시원하다. 가지고 온 아이스커피 한잔으로 목축임도 해본다. 카페에서 여유 있게 풍경을 감상하며 마시는 커피가 은은함이 있다면, 라이딩을 할때 마시는 커피는 뭔지 모를 상쾌함을 느껴진다. 아마도 운동했다는 뿌듯함에서 오는 성취감은 아닐런지. 요즘 운동에 소홀했으니까. 갈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길은 빨랐다. 몸이 적응된 탓이리라.
한때 집에서도 운동한다고 사다 놓은 실내자전거가 있었다. 이사 오면서 처분하며 앞으로의 자전거는 햇빛을 맞으며 야외에서 타기로 하였다. 나이 들수록 햇빛을 쬐야한다니까. 모처럼의 자전거라이딩은 지난 추억들을 소환하게 했다. 함께 해주셨던 교장선생님들과 그곳에서의 교직생활이 아련히 스쳐갔다. 오늘도 나는 추억을 자전거에 싣고 달렸다.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