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그렇다고 해를 넘기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단지 매주 만나다가 방학이란 이름으로 헤어짐을 가졌다 만난 것이다. 모두 글동무들이다. 평생교육원에서 만나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함께 도전한 글쓰기 동기들 셋. 그리고 오늘은 지도교수님도 함께 했다. 내가 이사를 오면서 적은 두고 있지만 아무래도 거리 때문에 결석이 잦았다. 제주여행도 다녀오고 해서 지난 학기는 출석률이 저조했었다. 퇴직 후 시작한 글쓰기 공부이니 햇수로는 3학기가 지난 것이다. 생각이 비슷한 시절인연들이다.
글 쓰는 것도 좋았지만 퇴직 후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은 즐거움과 삶의 활기를 가져다준다. 거기에 무언가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충만함과 배움의 기쁨도 느끼게 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배운 글쓰기가 겨우 이 정도뿐이 안돼?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아니 개의치 않으련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무엇보다 평생교육원의 노교수님은 나와 같은 교육현장에 있었다는 게 더더욱 친근감을 유발한다. 함께 공유할 지난 시절 이야기 소재는 가끔 우리를 타임머신을 타고 교육현장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가끔 교수님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했다. 늘 셋이서.
산성의 남문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금 걷다가 식사를 할 예정이라고. 요즘 온열환자들이 많아 연세 많으신 교수님과 암으로 투병 중인 S가 다소 신경 쓰이긴 했다. 더위에 등산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만남이 목적인 터라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한 시간 걸린다. 만나서 상황에 맞게 일정을 조율하면 된다. 다들 건강해 보인다. 그동안 모두 글쓰기에 매진한 듯싶었다. Y언니는 자서전 준비를 하고 있고, S는 다른 평생교육원에서 시창작까지 공부한다고 했다. 삶의 목표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산성은 우리 지역 관광지이자 자랑거리며 현장학습장소이다. 다행히 교수님이 친구분들과 주 1회 산행을 하는 곳이라 그늘로 된 산책길을 잘 알고 계셔서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교수님은 산성의 유래와 유적물들에 대해 이것저것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마치 글쓰기의 야외수업처럼. 이 산성은 처음에는 흙으로 축조되었다가 나중에 돌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유독 많은 산성 중에 북문이 없는 곳이라고도 하고.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설명이나 하듯이 남문에 있는 김시습선생님의 '유산성'이라는 시비가 많은 것을 대변하고 있다. 참 아름다운 성곽길이다. 80이 넘으신 교수님은 노익장도 과시하셨다. 지팡이를 모두 우리에게 주시면서 '넌 늙어봤니? 난 젊어봤다'라는 개그와 함께.
즐거운 산행길이다. 오랫동안 살았던 지역의 유적지이고 명색이 교사였음에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설명을 듣는 내내 속으로 부끄러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학습을 와도 안전에만 관심이 있었지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내가 이 지역에 오래 살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지도했던 아이들이 유독 어린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핑계임을 나 자신도 안다. 오늘은 부족했던 내 교사시절에 나를 스쳐 지나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본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만큼 자라게 되는 것을. 후회한들 소용없고 그저 반성문만 쓸 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그러고 보니 요즘 반성문을 참 많이 쓰게 된다. 아쉬움도 후회도 없는 삶이었다고 자부했는데.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는 글쓰기 후유증이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자연과 길동무하며 걸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모임이라 그런지 덥지만 즐겁다. 중간쯤 가다가 교수님이 오늘은 여기까지! 라며 뒤돌아 방향을 바꾸신다. 연세가 있으셔서 힘이 드신가 했더니 예약해 놓은 점심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접하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오리백숙 예약으로 먼저 선수를 치셨다. 몇 번 대접한 게 부담스러우셨나 보다. 오늘은 젊은 오빠가 쏘겠다고.
죄송하지만 맛있게 먹었다. 시원한 커피 한잔을 대접하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뿌듯하다. 내 새로운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중후한 멋과 넉넉함으로 후배양성과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내 삶도 여유롭게 영글어가길 소망해 본다. 하루하루 쌓아지는 소중한 추억들이 먼 훗날 나의 자서록이 될 것이다. 이건 글쓰기의 효과이다.
이렇게 오늘도 글쓰기는 나를 살아있게 만들고 꿈을 꾸게 한다. 오늘의 글동무가 저 연이어진 성곽길처럼 오래오래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산성의 역사처럼 내 역사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