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다리와 학의 다리가 알려주는 진정한 행복의 길

by 김정겸

반갑습니다. 연천에서 고전을 읽으며 삶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자 김정겸입니다. 요즘 세상이 참으로 어지럽고 각박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끊임없는 '비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우리는 흔히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을 쓰며 남과 나를, 혹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비교하곤 합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누구는 이런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식의 말들이 오고 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는 갈등을 초래하고 결국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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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의 가르침을 빌려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장자는 오리의 다리와 학의 다리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오리 다리는 짧고 학의 다리는 깁니다. 이것은 그저 서로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위적으로 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 다리에 붙인다고 해서 그 둘이 같아질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학은 학대로, 오리는 오리대로 각자 절대적인 평등과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자가 말하는 도(道)는 이처럼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진 경지, 즉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다문화 사회,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이러한 '다름'의 인정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가치입니다.


우리가 겪는 많은 분쟁은 자기만의 좁은 식견, 즉 플라톤이 말한 '동굴'에 갇혀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편견에서 비롯됩니다. 장자의 제물(齊物) 사상은 이러한 편견을 버리고 전체를 아우르는 홀리스틱(Holistic)한 사유를 가능게 합니다. 나와 너의 대립을 해소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입니다.장자는 또한 '혼돈(混沌)'의 이야기를 통해 인위적인 행위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남해의 임금 숙과 북해의 임금 홀이 혼돈에게 고마움을 표하겠다며, 인간처럼 눈, 코, 귀, 입의 일곱 구멍을 뚫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연 상태 그대로여야 했던 혼돈은 그 인위적인 구멍 때문에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지닌 자연성을 파괴하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 할 때, 우리는 혼돈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혼란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좌망(坐忘)과 심제(心制)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비교와 갈등을 마음속에서 깨끗이 비워내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동요가 사라지고, 비로소 병든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합니다.둘째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입니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 깨어난 뒤,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모르겠다고 한 '호접몽'의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나와 상대방이 분리된 남남이 아니라 서로 하나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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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물아일체의 마음을 가질 때, 마르틴 부버가 말한 진정한 '나와 너'의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해집니다. 상대를 이용 대상인 '그것(It)'으로 보지 않고 존귀한 '너(Thou)'로 대할 때 비로소 참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산업 현장이든 가정이든, 서로를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할 때 갈등은 사라집니다.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이해와 행복이 깃들 것입니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슬퍼하지 않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부러워하지 않는 세상, 서로의 다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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