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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만난 풍경

여행자의 기록 31

by 홍재희 Hong Jaehee





하나.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장 민감해지는 부분이 잠자리와 먹을거리다. 다행히도 둘 다 크게 가리는 게 없는 성격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고생도 일종의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면 어딜 가든 문제 될 것이 없다.




여행길에서는 잘 곳도 여행지에 대한 첫인상과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친다. 국내나 해외를 여행할 때 경비에 맞춰 잠자리는 되도록 다양한 곳에 머무르는 편이다. 어떤 날은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어떤 날은 모텔, 어떤 날은 비즈니스 호텔. 마음에 든 숙소는 여러 날을 묵기도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갖춰진 일이만 원짜리 게스트하우스나 여관에서부터 전망이 기가 막힌 고급 리조트 호텔까지 실로 다양하게 묵어봤다. 여행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숙소만큼은 척하면 탁, 그날그날 숙소를 선택하는 요령이 생긴다.




둘.


이번 여행길. 서천, 장항, 전주, 순창, 정읍, 군산을 돌아다니면서 고층 아파트 건설 행렬을 목격했다. 산자락을 깎아 떡하니 논밭 사이로 강변자락에 오래된 골목을 밀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야트막한 언덕의 능선과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마을 경관을 해치고 주위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초고층 아파트, 오직 나 홀로 아파트만을 부르짖는 이질적인 풍경이다.


도시마다 농촌마다 인구는 점점 더 줄고 있다는데 저 고층 아파트에는 도대체 누가 살 것인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 짓는 아파트로 신도시로 이사 가고 원래 살던 구도심은 텅 비어 간다. 부수고 또 부수고 짓고 또 짓고 헐리고 헐린다. 빈 집이 늘어가고 오가는 사람들이 줄고 상권이 죽고 주민들이 떠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셋.


대한민국 60%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2023년 한국리서치의 부동산인식조사에 따르면, 5년 내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응답자 가운데 71%가 '아파트로 이사 가고자 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에 열광할까. 다양한 주거 형태 중에서 왜 유독 아파트에만 올인할까.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란 어떤 의미일까.



아파트의 장점은 두 가지다. 편리함과 환금성. 아파트에 살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비 한 방울 안 맞고 집안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경비원이 있어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 엘리베이터가 있어 몸이 불편하거나 물건을 옮기거나 이사할 때 이동하기 쉽다는 등 편의성이 하나다. 하지만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의 아파트 사랑. 아파트 중독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단독 주택과 다양한 연립 주택 저층 빌라에도 승강기와 경비실을 설치할 수 있다. 다양한 주택에 편의성을 더하면 될 일이다.



실상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올인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아파트가 지닌 상품가치, 즉 환금성 때문이다. 아파트는 언제든지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아파트는 사는(living) 것이 아니라 사는(buying)것이다. 주거가 아니라 상품가치가 더 크게 작용하는 탓에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면서 희생을 감내한다. 아파트 구조가 인테리어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나와 딱 맞는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다시 되팔려면 나한테만 너무 맞추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품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은 가장 뒷전으로 밀린다. 아파트는 용적률과 시세가 더 중요하다. 공간을 차지하는 발코니 따위는 만들 수 없다. 더 돈을 받아낼 수 있게 지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남들과 비슷하게 살려고 하는 습성이 매우 강하다. 웃기는 건 남들과 비슷하게 살면서도 비교 우위를 가지려고 든다는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아파트에 살아야 하지만 남들이 사는 아파트보다 평수가 더 크거나 더 비싼 아파트에 살아야 더 잘 사는 것이다. '너보다 내가 더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를 남들에게 보란 듯이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살기 '좋다'의 기준은 아파트 실평수와 매매가가 좌우한다.



다시 말해,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living) 집(home)이 아니다. 돈으로 환원되는(Buying) 상품(product)이다. 아파트에 삼성이나 현대라는 회사 이름을 붙여놓거나 자이, 래미안, 이 편한 세상, 리버뷰 등의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잘 살고 못 살고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아파트가 집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런 사회에서 아파트란 일상을 영위하는 보금자리라기보다는 상품가치가 극대화된 투자 대상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아파트는 가지기만 하면 돈이 된다라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 어느 동네 어떤 마을도 아니고 어떤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어? 가 인사로 자리 잡은 사회라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마트 매대에 진열된 물건처럼 상품성으로 판단하는 천 박 함이라니. 자본주의자들의 지독한 속물근성이 한국 사회만큼 광적으로 발현되는 사회가 또 있을까.




눈 뜨고 일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이 래미안이라니...... 나는 너무 슬프다.





넷.


여행이 아니라 출장 또는 관광으로 호텔에서만 묵었던 사람은 게스트하우스와 호스텔에 머무는 묘미를 모를 것이다. 고급 풀빌라 리조트에서 휴양만 했던 사람에게 도미토리란 견디기 힘든 개고생일 뿐이다.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사람은 적산가옥의 추위를 불편함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하룻밤 묵어가는 숙소도 각양각색 다양한 법인데 사람들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사는 집이 하나같이 똑같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평생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면 그걸로 끝인 삶, 그게 과연 성공한 삶인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 인생인데 살아서 한 경험이 고작 그 아파트에 산다는 경험 밖에 없는 삶이라니. 허망하고 허무한 삶이다.


집을 떠나 객으로 남의 집인 이런저런 숙소에 머물면서, 전국 팔도에 우후죽순 늘어만 가는 고층 아파트 단지를 올려다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이 모두에게 똑같은 사회, 모두가 똑같은 꿈을 꾸는 획일적인 한국 사회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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