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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by 홍재희 Hong Jaehee




다시금 영화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번역판) 마틴 스콜세지 편에 나온 스콜세지 감독의 말이다.

You might ask, "Why do films have to be personal, anyway?"

그럼 당신은 물을 것이다, "대체 왜 영화는 개인적인 것이 돼야 하는데?"


Well, of course, it's all a matter of opinion, but I tend to feel that the more singular, the vision and the more personal the film, the more it can claim to be art.

음, 그래 이건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 근데 내가 느끼기엔 영화의 비전이 독특하고, 개인적일수록, 그 영화는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


As a spectator, I find that when they’re more personal, films last longer.You can watch them over again.

관객으로서 더 개인적인 견해를 가진 작품이 오래간다. 그러면 너는 (그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보게 될 테니까.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인용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이 말에 기인한 스콜세지의 철학이 담겨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가장 개인적인 체험일 때 영혼의 고양이 극대화된다. 그리고 영화관은 가장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를 자신만의 가장 내밀한 체험으로 경험하게 하는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불 꺼진 극장 안 스크린에서 명멸하는 인생사에 우리는 바깥 현실을 잠시 잊고 스크린에 구현된 또 다른 현실 속에서 바로 우리 자신과 조우한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집에서 누워서 밥 먹다가 뒹굴거리며, 1분짜리 예고편 트레일러를 손가락으로 훑어보면서, 쿠팡 검색하듯이 OTT 넷플릭스를 보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체험이다. 극장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거대한 스크린을 관객으로서 마주한다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를 장바구니에 물건 담듯이 쇼핑하면서는 도저히 체화할 수 없는 그 무엇. 우리의 의식과 감각을 일깨우는 특별한 의례인 것이다.

우리는 그걸 잃어가고 있다.


한국 영화계를 일컫던 이름 ㅡ 충무로.


그 충무로를 66년간 변함없이 지킨 대한극장이 문을 닫았다.


대한극장은 내게도 추억이 많은 장소다. 어린 시절부터 충무로 국제 영화제 그리고 다시 코로나 3년 동안. 70mm 시네마스코프 단관극장 시절. 멀티플렉스 빌딩으로 개조되기 전 마지막 시네마스코프 상영을 보러 대한극장으로 향했다. 고전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오프닝 장면을 거대한 시네마스코프 스크린으로 볼 때의 경이로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광활한 우주를 바라볼 때의 두려움마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추억으로.


대한극장에서 혼자 내리 영화 몇 편을 보고 나면 배가 출출해진다. 그러면 정해진 의식처럼 늘 가는 곳이 있었다. 마치 코스처럼. 나는 극장 옆 골목의 노포 엘림 분식에서 여름에는 콩국수, 다른 계절에는 김밥과 라면 떡볶이 때로는 잔치국수를 먹었다. 엘림 분식의 마음씨 넉넉한 주인장은 충무로와 대한극장을 상징하는 이처럼 대한극장과 충무로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역사와 세월과 추억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런 분이었다. 대한극장이 문을 닫았으니 엘림 분식은 아아, 어떻게 되는 걸까.



영화와 추억과 세월과 역사와 이야기가 고픈 날이면. 떠오르는 이름.

안녕. 내 사랑. 대한극장.

안녕. 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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