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간병생활 6
동생이 반나절 나 대신 간병을 해주기로 했다. 그 덕에 짬이나 병원을 나와 이리저리 밀린 일을 처리하러 돌아다닌 나날.
걷다 보니 오래전에 살던 동네를 지난다. 옛 모습 그대로다. 추억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그리움으로 온 세상에 빛이 출렁출렁 흘러넘친다. 사방에서 양기가 폭발한다. 눈이 멀 것만 같다.
꼬부랑 할머니가 언덕배기 그늘을 밞으며 걸어간다. 미래의 내가 저만치 걸어간다. 길에서 꼬마들과 마주치면 지나온 나를, 늙은이와 스치면 앞으로 내 모습을 본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서 만난다. 초복이 며칠 전이었다. 잊고 있었다. 삼계탕 생각이 간절해진다. 사흘 지나면 대서다. 여름 하루가 길고도 길다.
수년 전 한여름. 스페인에 갔을 때 게서 이런 농담을 들었다. 여름 한낮 땡볕 아래 시에스타 시간에 나돌아 다니는 건? 미친개와 영국인(관광객)이라고. 영국인들이 주고받던 자학 개그였다. 뜬금없이 그 농담이 떠오른 까닭은 칠월 한낮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서울 도심 한복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밀짚모자 쓰고 터덜터덜 걸어가노라니..... 문득 난 미친개인가 아닌가.
발갛게 달군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여름. 문 닫은 카페 앞 처마 그늘에 흰머리 노년 사내가 졸고 있다. 보기에도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하지만 사내는 이미 머나먼 피안의 세계로. 떠날 수 없는 자는 꿈을 꾼다. 한 마리 심해어가 되는 꿈을. 한 여름낮 푸른 꿈. 뜨거운 아스팔트 위 새파랗게 넘실거리는 물결. 바다 깊이깊이 유영하기를. 그의 꿈이 시리도록 찬란하기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무더운 여름을 한 방! 에 날려줄 900원짜리 커피는 환상적. 커피만(Coffee Only) 카페. 메뉴 선택 주문 결제를 손님이 전부 알아서 처리한다. 무조건 테이크아웃. 인건비를 줄이고 공간도 줄이고 대신 가격을 내리고. 쥐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는 텅텅 빈 거리. 작열하는 아스팔트길을 홀로 걸을 때 벗이 되어주는 냉커피. 무더운 여름낮. 애정합니다. 여름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8년 7월 18일 쓰다.
오전 7시. 아침상을 물리고 다 드신 아침 식판을 가져다 놓고 어머니 양치질 후 칫솔과 물통을 부시고 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시고 다시 어머니 보행기 잡고 걸음 연습을 시킨다. 병실 복도를 세 번 왕복하고 다시 화장실에 들렀다 병실로 돌아간다.
세워놓은 침대를 내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가 허리에 찬 보조기를 풀고 어머니를 병상에 눕혀 드리고 베개를 고이고 발에 시트를 살짝 덮여드리고 머리맡에 물통과 간식거리를 챙겨드리면 이러면 병실의 아침 일과가 얼추 끝난다. 잠시 한숨 좀 돌리려는 차에 어머니가 마트에서 뭘 좀 사 오라 하신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러 병원문을 나섰다.
병실 복도 창문 너머로 하늘이 눈이 시리게 파랗더니 마음이 들썩들썩. 올려다본 하늘은 사랑이구나. 5월에 올려다본 하늘과 7월에 올려다본 하늘은 같은 하늘이건만 내 마음이 시시각각 변하는구나.
아직 마트가 문을 안 열었다.
'날씨가 좋아 하늘이 찬란해서'라는 핑계로 잠시 땡땡이를 쳤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열락이다.
급하면 어머니가 전화를 하시겠지. 아 몰라. 여기서 난 잠시 쉬어간다. 카페에서 노닥노닥이라. 내가 환자의 가족이자 딸인 보호자이기 망정이지 고용된 간병인이었음 꿈도 꾸지 못할 사치다.
간병인 여러분. 송구합니다.
어머니가 입퇴원을 반복하실 때마다 대학병원과 전문병원을 여러 군데 돌게 된다. 올 가을 입원한 새로운 병원에는 이런 옥상 정원이 있어서 짬이 나면 올라와 하늘을 바라봤다. 의자에 앉아 햇볕도 쬐고 광합성도 하고. 세로토닌 만끽. 햇살과 하늘만큼 기분을 좋게 하는 것도 없다.
철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야의 위치가 달라지고 특히 해 질 녘 노을의 느낌이 달라진다. 특히 가을볕은 살갗에 닿는 감촉이 남다르다. 서늘한 공기 사이로 부드럽게 파고드는 햇살. 따스하다. 가을의 온도는 홍시처럼 바알갛고 밤톨처럼 탱글탱글하다. 햇살에 영글어 가는 과일맛이다. 원적외선 같은 온기가 살갗에 닿는 순간. 살, 아, 있, 음, 을 느끼는 순간. 행복이 별 건가. 간병생활 중에 찾아온 휴식. 이런 순간이야말로 행복이 아니면!
나는 일상생활 속 공간이나 장소에서 기하하적 틀이나 추상적인 모양을 발견하고 혼자 좋아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젠 버릇을 넘어 취미가 되었다. 병원 옥상에서 건물벽을 타고 내리며 가을볕이 그림자를 만들며 놀고 있다. 아름다워서 넋을 놓는다. 그걸 보면서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보며 나도 논다.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던 두 사내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뭘 보나? 그 위에 도대체 뭐가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내 카메라가 향한 곳을 올려다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이내 관심 없는 듯. 그 모습에 혼자 히죽히죽 속으로 웃었다. 공간과 빛이 그리는 추상의 세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알아차릴 수는 없는 거예요. 볼 줄 아는 사람에게나 보여주는 거예요.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보이는 거예요.
2018년부터 해마다 계속된 간병 생활. 어머니의 입퇴원이 반복될 때마다 대학병원과 전문병원을 여러 군데를 돌게 된다.
주위에서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병실에서 장기간 보낼 수 있냐고. 다들 고개를 내젓는다. 차라리 간병인을 쓰지 자신은 직접 그 일을 못하겠노라며. 병원에 있으면 우울해서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는 친구도 있고, 환자들 보면 자기도 아픈 거 같다는 지인도,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싫다는 사람들까지.
아니야. 막상 해보면 하게 돼있어. 병실 생활도 그냥 일상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라고 생각하면 다를 게 없어. 그저 하루 해가 뜨고 하루 해가 지는 일일 뿐이야. 어제는 누군가 죽고 오늘은 또 누군가가 태어나고 그렇게 삶과 죽음이 공존할 뿐이야.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찮은 일도 아니고 나는 이 하루도 내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뿐이야.
매번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게 될 때마다 짧으면 한 달, 길면 두 서달 동안 병실에서 먹고 자고 일상을 보냈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내게 지루한 병실 생활을 어떻게 버티느냐고 묻는다. 솔직히 나는 병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간병 중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쉬지 않고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후딱 간다. 지겨울 틈이 없다.
가끔 환자인 어머니의 잔소리가 날 짜증 나게 하고, 불합리한 병원 시스템 때문에 부아가 치밀 때도 있지만, 그것만 뺴고는 견딜만하다. 이따금 알 수 없는 갑갑증이 차올라 턱턱 숨이 막힐 때는 병실 밖을 나가 산책을 한다. 옥상에 올라갈 때도 있고 정원을 돌 때도 있고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병원 사람들을 관찰한다. 병원 안에는 온갖 인간군상들 이 오고 간다. 사람들만큼 흥미롭고 재밌는 존재가 또 없다. 이도 저도 아니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도 많다. 구름이 흘러가고 모이고 사라지고. 바라다보면 그러면 기분이 정화되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새로 입원한 병원에는 작은 옥상 정원이 있어서 짬이 나면 여기 올라와 하늘을 바라봤다. 의자에 앉아 햇볕도 쬐고 광합성도 하고. 세로토닌 만끽. 햇살과 하늘만큼 기분을 좋게 하는 것도 없다.
철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위치가 달라지고 특히 해 질 녘 노을의 느낌이 달라진다. 특히 가을볕은 살갗에 닿는 감촉이 남다르다. 서늘한 공기 사이로 부드럽게 파고드는 햇살. 따스하다. 가을의 온도는 홍시처럼 바알갛고 밤톨처럼 탱글탱글하다. 햇살에 영글어 가는 과일맛이다. 원적외선 같은 온기가 살갗에 닿는 순간. 살, 아, 있, 음, 을 느끼는 순간.
도시의 허파. 정원과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