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았다

슬기로운 간병생활 7

by 홍재희 Hong Jaehee



고이 잠든 어머니의 등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수 십 년의 세월이 열 개의 못을 박아 놓은 저 가냘픈 등에 내려앉아 있다.



나는 내가 어머니의 옆에서 간병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프리랜서 노동자라는 사실에 감사하다. 먹고사니즘에 차여사는, 제 앞가림하기도 급급한 출퇴근 노동자였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머니의 입퇴원이 반복될 때마다 병원비를 감당해 줄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돈을 낼 수 없는 대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대신 나는 몸으로 때우면 된다. 시간은 곧 돈이다. 나는 시간으로 돈을 낸다. 운이 좋았다.



건사해야 할 자식이 없다는 점도 감사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를 낳아준 부모라 할지라도 내가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다면 부모 간병은 이차적이 된다. 제 자식이 먼저다. 그다음이 부모다. 자연에서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챙기는 짐승은 사실 사람 밖에 없다. 유교에서 부모 봉양을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도 실상 효도란 것이 인간 본성에는 불가능했던,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이성과 교육의 힘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데올로기 관념으로나마 인간의 동물성과 본성을 넘어서려 했던 것, 어쩌면 부처의 불심과 동일한 것이겠지.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 투병을 하다 2년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친구가 있다. 친구는 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올 때마다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어했다.호흡기를 낀 아버지 얼굴을 보는 것도 나날이 점점 쇠약해지며 고통 속에서 죽음과 가까워지는 노인의 숨소리를 듣는 것마저 너무 괴롭고 몹시 버겁다며. 아버지가 생사의 고비를 가르고 있을 때, 연명치료 거부에 주저했던 자신을, 아버지의 죽음에 동의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며.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자책 속에서 친구는 오랜 시간 괴로워했다.


친구를 비롯하여 친구의 가족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간병을 맡겠노라 자청한 이도 없었고, 친구를 제외하고는 아버지가 누워있는 요양병원을 방문한 식구도 없었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제 가족을 건사하느라, 나름 괜찮은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신 거로 서로 마음의 짐을 덜면서 그렇게. 친구는 씁쓸하게 웃었다. 있잖아. 우리 집은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집안이야.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책하지 마. 그건 네 탓이 아니야. 그 누구의 탓도 잘못도 아니야.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마저 어쩔 수가 없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생각해 봐. 친구야. 너도 나도 언젠가는 다 죽을 거 아니니. 먼저 연습한다고 생각해. 부모의 나이에 점점 다가갈수록. 나를 낳아준 부모의 지나간 인생을 떠올리며. 나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먼저 간 이들과 지금 떠난 이들과 앞으로 돌아갈 이들을 생각하며 나는 내 죽음을 미리 연습해.


난 말이야.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 아 참. 나는 운이 좋구나. 어머니의 병듦을 지켜보면서, 노쇠해하는 어머니와 함께 하면서, 노화가 점차 노쇠가 되어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어머니의 얼굴과, 손과, 팔다리와, 굽어가는 등을 보면서, 쭈글쭈글해지고 검버섯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어머니의 몸뚱이를 씻기면서, 나는 나의 노년과 노화와 노쇠의 시간을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올 내가 맞을 죽음을 생각해.


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해. 어머니를 통해서 나는 다행스럽게도 나이 드는 법을, 늙어가는 법을,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조금씩 조금씩 날마다 배우고 있어. 그 모든 시간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거야. 책으로도 배울 수 없는 거야. 나는 내 온 마음과 몸으로 그 시간을 간접 체험하고 있어. 그런 면에서 어머니는 나의 스승, 모든 환자는 나의 본보기, 세상의 모든 노인은 저만치 먼저 걸어가는 인생의 길잡이들이야.


그러니 감사하렴. 슬프지만 그게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병실 창밖으로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전철이 덜컹덜컹 철로를 지나가는 풍경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열차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우리의 삶도 종내는 마지막에 이르게 될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새로운 병원 새로운 병실에 머물 때마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그 모든 시간을 기록하고 남기고 기억한다.



어머니가 이 세계에서 종적을 감추고 영원히 사라진 후에

먼 훗날 어느 날 문득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이곳의 공기와 바람과 하늘을

빛과 그림자를

이 순간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추억할 것이다.


어머니를

어머니와 보낸 시간을

어머니와의 추억을

어머니가 베풀어 주신

사랑을.

그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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