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간병 생활 4
24시간 병실에 있다 보니 환자 보호자들끼리도 말을 트게 된다. 대개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은 돈 받고 일하는 간병인들이지만 간혹 나처럼 부모를 간병하는 자식들 그중에서도 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 병실에서도 간병인과 보호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아들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간병인을 쓸지언정 간병하는 이를 못 봤다. 남편이 간병한 경우는 한 명. 예외적인 경우라 병동 전체에 소문이 났을 정도다.
우리 병실에 각각 60 70 대 어머니를 간병하는 동갑내기 딸들이 있었다. 환자의 보호자인 40대 여성들인데 둘 다 기혼 여성으로 집에 있는 어린 자식 걱정하랴 어머니 간병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각자의 어머니를 간병하던 첫째들은 주말에는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갔고 주말은 직장인인 둘째 딸 30대 여동생들이 와서 간병을 했다. 퇴원할 때까지 자매들이 번갈아 가며 간병을 했고 어머니가 퇴원 후엔 결혼한 장녀의 집으로 모시고 간다 했다.
60대 엄마를 간병하던 여자는 반년이 넘은 어머니 간병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했다. 70 대 엄마를 간병하던 여자는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 전업주부라 차라리 다행이라 했다.
환자의 보호자는 대부분 직계가족인 딸이거나 어쩌다 아들 그렇지 않으면 형제자매들이거나 나머지는 전부 간병인이다. 며느리가 간병하던 시절은 진즉에 끝났다. 간병에서만큼은 시부모를 우선시하거나 시댁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부모를 가족이 간병하는 경우 아들은 거의 없다. 거개가 전부 딸이다. 미혼 기혼을 가릴 것 없이 전부 딸. 엄마를 간병하는 내가 독신이라는 걸 알자 주위 환자들을 비롯해서 간병인들까지 엄마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넨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같은 병실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엄마에게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속내를 생각하면 마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었다.
- 요즘은 시집 안 간 딸이 최고야.
-좋으시겠어요. 딸이 있어서. 딸이 간병하니 얼마나 좋아요.
-남편, 아들 다 소용없어. 병시중은 아내, 딸이 하지.
그 말이 귀에 꽂혔다. 거슬렸다.
집안의 권력과 재산을 장남에게 물려주던 유교 가부장제의 나라, 장자 상속하던 봉건적인 나라, 무조건 아들이 최고라며 아들 선호 사상에 찌들어 있던 남존여비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90년대 태아 성감별을 해서 여아 낙태를 하던 사회가 불과 이 십여 년도 안 되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손을 뒤집다니. 그저 허허 웃음만 나왔다.
한국은 가족이 간병의 주체이며 간병은 가족이 책임지고 돌봄은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통념이 성별에 따라 기울어진 돌봄 부담을 유발하는 사회 아닌가. 금전적 부담 탓에 가족구성원 중에 한 명이 간병을 맡아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저소득 비율이 높은 여성이 간병을 전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 집이 그랬다. 돈 버는 동생은 병원비를 대고 돈 못 버는 나는 몸으로 때우는 간병인을. 억지로라기보다 자발적으로, 누가 하라 해서가 아니라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
사람은 결국 자신이 먼저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마찬가지다. 거칠게 말해서 며느리에게 봉양과 부양을 시킬 수 없는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제 딸이 최고다, 딸이 없으면 부양도, 간병도 못 받는다는 이기심의 발로는 아닐까 사회가 나서서 가족의 이름으로 딸들에게, 아니면 제삼자인 여성에게 간병이라는 돌봄 노동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가족이 간병의 주체이며 돌봄은 가족이 특히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이 사회. 씁쓸하다.
며느리가 사라진 간병의 빈자리를, 또 다른 여성들인, 딸들이, 여자 간병인들이 채웠다. 한 여성에게서 또 다른 여성에게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달라진 것 없다. 아내, 며느리에게서 딸로, 가족 내의 여성에게 전가되던 돌봄이 '간병인'이라는 직업으로 아웃소싱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돌봄에 있어서만큼은 남성은, 아들은, 남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 병동은 연로한 환자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태반이라 거의 24시간 간병인이 붙어있다. 병실에서 환자들은 간병인들과 밥과 음식을 함께 먹는다. 문병객이 놓고 간 음식도 먹어보라 서로 권한다. 나누고 주고받는 오고 가는 정 그게 사람 사는 도리라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붙임성 좋은 어머니 덕에 다른 환자들과 간병인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고 있다.
간병인 코스프레 하는 내가 얼마나 어설프고 서툴렀는지 이분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오줌통 비우기 대변 기저귀 갈기 등 하나부터 열까지. 거동 못하는 환자에게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똥을 받아내며 오밤중에도 일어나는 간병인들을 지켜보노라면 그만 숙연해진다. 이 일은 아무나 돈 준다고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간병을 제대로 하네 못하네 말도 많지만 실제로 이들과 24시간을 보내면 그런 소리 못한다. 간병인 하다가 정작 제 몸은 못 돌봐 여기저기 아프고 골병든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간병인들은 주로 중국 교포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50-60대. 간병인 교육을 받고 벌써 십 수년 이상 간병을 한 베테랑들이다. 간병해서 돈 벌어 육아 가사노동까지 자식교육에 결혼까지 시키고 집을 산 억척어멈들. 강인한 여성들. 게다가 대개 가모장이다. 남편이 아프면 아내는 돌보고 아내가 아프면 남편은 바람 단다더니. 이 세계에서 가부장은 있으나 마나 쓸모없다. 중국에 있거나 한국에 있는 남편들은 하나같이 아파 누워있거나 술주정뱅이거나 백수다. 운도 지지리 좋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원. 썩을. 갖다 버려도 시원찮을 놈팽이들.
내가 싱글이라는 걸 알고 나서 다들 왜 결혼 안 하냐며 이구동성. 어느 아주머니 환자가 돈 많고 착한데 노총각 사장님을 소개해 준단다. 푹! 뿜을 뻔했다. 미치겠다. 속으로 키득키득 웃는다. 물정 모르는 귀여우신 분. 아무리 내 얘기를 해봤자 이해 못 하겠지. 성가시고 귀찮지만 그때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다양한 답안지를 준비한다. "제가 남자를 안 좋아합니다" "남자가 성에 안 찹니다" "애 낳고 가정 꾸리는데 전혀 취미가 없습니다" "결혼이 적성에 안 맞습니다" 등등.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날 째려본다. 물론
대답 목록에는 "살아봤더니 별거 아니던데요" 도 있는데 그건 구닥다리 울 엄마가 입에 거품 물까 봐 말이 목구멍을 넘어오더라도 참아 준다.
아무리 내가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해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오지랖을 부리는 눈치 없는 사람이 꼭 있다. 결국 참다 참다 내가 반문한다.
"긴 병에 아내는 골병들고 남편은 바람난다'면서요?
여기와 보니 남편 간병하는 건 죄 아내들 뿐이던데요.
아내 간병하는 남편은 한 명도 없고.
다들 그 좋다는 결혼 하셨는데 남편 분 어디 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 간병인 아주머니가 날더러 시원스레 핵 사이다 한마디. 그 말이 맞아! 남자 없이 자유롭게 살란다. 자신이 젊었을 때 그래도 되는 걸 알았다면 결혼 따위는 애도 낳지 않았을 거라며. 순간 남편이 아니라 자식 때문에 산다던 여자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하하. 있거나 없거나 전 자유롭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자유롭게 살다 바람처럼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