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을수록 친구가 최고다

슬기로운 간병생활 3

by 홍재희 Hong Jaehee



께느르한 토요일 오후.


병원 근처에서 사신다는 어머니의 오랜 벗이 찾아왔다. 코로나 방역 탓에 외래가 마감하는 오후 1시 이후부터 1층 로비를 전면 통제하는 줄 모르고 오후에 방문하신 것. 전화 통화에서 어머니가 오지 말라 극구 말렸지만 기어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셨다. 수술한 어머니처럼 친구분 역시 몇 해 전 양쪽 무릎 수술을 하신 터라 거동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친구 얼굴을 보겠다고 발걸음을 한 것이다.



국민학교 중학교 사범고 그리고 교사까지 함께 동고동락했다는 어머니의 반 평생 절친, 말 그대로 가까울 친 오래될 구, 친구다. 한 달에 한 번 어머니 댁에서 동창모임을 해왔는데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하셨다.


김경순과 손기자.


쪄 죽을 듯한 땡볕 아래 병원 입구 그늘막에서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우리.

휠체어 탄 두 백발 여성이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둘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기류의 이름은 바로 '우정'.





어머니가 친구 상봉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자 병실의 노인 환자들이 이구동성 한 마디씩 던진다. 간병인들이 돌보고 있는 할머니 환자들은 내심 밖에서 친구 만나고 온 어머니를 몹시 부러워하는 눈치다.


친구 봐서 좋겠어유. 이런 데 병문안도 오는 친구라니 정말 좋은 친구인가 봐유.


그 바람에 어머니의 어깨가 5cm는 봉곳 솟아오른 거 같다. 기분 좋아 미소 짓는 어머니. 휘파람이라도 불 기세다.


병실 환자 중에서 항상 점잖은 어른인 80세 양여사가 내게 넌지시 말했다.


어머니는 늘그막에 복도 많으셔. 딸이 옆에서 간병도 하고 친구까지 보러 오잖아. 있잖아. 남편 자식 다 필요 없어. 늙으니까 친구가 최고야.


네. 저도 압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암요!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인생의 전반부에는 결혼이나 배우자와 맺은 관계가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삶을 장거리 마라톤에 비유할 때 나이 들수록 인생의 후반부에는 우정이 즉 친구의 존재가 배우자 유무보다 더 중요해진다.

젊은 시절 끗발을 날리고 살았던 아버지는 인생이 바닥르로 곤두박질치자 자존심과 열등감에 스스로 친구를 내친 결과 노년을 말벗할 친구 한 명 없이 보냈고 결국 단 한 명의 친구도 장례식에 찾아오지 않는 죽음을 맞았다. 그나마 가족이라도 있어서 고독사를 면했다며 가족 친족이 없었다면 너무도 고독한 죽음이라고 말들이 많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 당신 스스로 선택하고 자초한 마지막이다. 가족 이외에 아무도 찾지 않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난 결심했다. 미련한 수컷들처럼 바보처럼 기를 세우다 홀로 외롭게 늙지 않겠노라고.


반면 어머니가 팔순을 넘어서도 여전히 명징한 정신을 소유하고 계신 이유는 한 달에 한 번 친구들 모임을 유지하고 만나지 못할 때면 꼬박꼬박 통화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벗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보다 십 수년 젊은 동네 이웃도 벗 삼으며 아파트 미화원을 집으로 불러 다정하게 차를 나누고 경비원과 오고 가며 덕담을 나누는 사람이다. 자식도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데 말벗이 되고 마음을 터놓는 친구들과 이웃들이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가.


부와 명예로도 우정은 살 수 없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보다 인생을 같이 걸어갈 길동무 좋은 친구 한 명을 둔 것이 더 큰 행운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열정도 식고 사랑도 배우자도 자식도 떠나간다. 상대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 서로의 거리를 지나치게 좁히지 않으며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멀게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관계는 바로 우정이다.

'친구는 또 다른 나 자신이다'

ㅡ 아리스토텔레스


병실에서 할머니들 사이에 있다 보니 환자든 간병인들이 바뀔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결혼은? 남편은? 애는?

둘 다 NO 하면 왜?라는 질문이 곧바로 따라붙는다.

그러고는 가족 없이 혼자서 나이 들어 늙으면 어쩌려고? 자식 없음 외로울 텐데 꼭 토를 붙인다.


결혼과 자식 말고는 또 다른 동반자 관계를, 의무와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꿈꿔보지 못한 80대 할머니들과 60대 간병사 분들에게 대답해드리고 싶다.


전 생물학적 가족 핏줄로 이어진 가족을 만드는 건 1도 관심 없습니다.

대신 제가 선택한 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입니다.


당신은 지위와 명예 경제력 모든 것을 잃어도

당신의 안부를 물어주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웃어줄 벗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늙어갈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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