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효녀가 아닙니다

슬기로운 간병생활 2

by 홍재희 Hong Jaehee



병상에 누워서도 어머니는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한다. 내가 못 더워서든 당신이 하나라도 더 단속을 하고 싶어서든 어머니의 잔소리는 그칠 날이 없다. 잔소리의 내용은 지극히 사소하고 사소하다 못해 넘겨버려도 아무 상관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비누곽을 닫지 말고 열어놔라

빤 수건을 한 번 더 꽉 짜라

오늘은 수건을 거기다 걸어라

(똑같은 수건인데) 내일은 이미 걸어 놓은 거기 걸지 말고 여기다 걸어라

비닐봉지를 접을 때 이렇게 해라

물건을 거기다 올려놓지 마라


내가 뭘 하고 있을 때 딱 그 타이밍에 마치 그 일을 안 했을까 봐 또는 안 하고 있다는 식으로 간섭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보기엔 내가 하는 식이 맘에 안 들어서 날 제대로 가르쳐 준다는 뜻이다. 정말 그럴 때마다 욱……..! 머리뚜껑이 열린다.


보통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고 네네 대답한다. 그러려니 하며 참을 인 자를 가슴에 새기고 웃어

넘기지만 열 번 중 한 번은 도저히 못 참을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이 병실인 줄 뻔히 알면서도 버럭 한다. 으아아악! 가슴속에서 1000도로 부글대던 용암이 지면을 뚫고 폭발하여 솟구쳐 나오는 바로 그때.


엄마! 같은 소리 좀 세 번까지 하지 마!! 한 번만 더 하면 세 번이야. 삼진 아웃. 세 번 이면 간병이고 뭐고 다 때려치울 거야!!!


그러자 병실 환자들과 간병인들이 ‘엄마니까 그러지 딸이니까 그러지, 엄마와 딸 사이가 다 그렇지’라며 한 마디씩 거들며 추임새를 넣는다. 엄마와 딸 사이는 다 그렇지라는 소리에 어이없었다.(그런 엄마 딸 사이 개나 줘버렷!) 기가 차서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뭔 소리예요? 엄마 딸이라서 그렇다고요? 딸이 가장만만해서 그런 거 아니고요? 며느리면 더 만만하겠죠? 안 그래요? 제가 그래서 며느리 같은 걸 안 해요. 안 한다고요. 원한 적 없는데 가르쳐주겠다? 잔소리고요. 계속한다? 잔소리예요. 수건을 이렇게 걸던 저렇게 걸던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예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에요? 잔소리 좀 그만하시라고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화딱지가 났다. 한 번 봉인 해제된 내 입은 닫힐 줄 모른다. 급기야 내뱉은 말. 우이쒸 유독 한국 엄마들이 더 그래요. 백 번을 시켜도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딸년을 원하면 A.I. 로봇을 사던지.


그랬더니 일순간 병실이...... 쥐 죽은 듯이.....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병들고 아픈 환자인 어머니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한 걸까. 자괴심이 몰려왔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누구든지 내게 잔소리하는 걸 못 참는다. 잔소리를 듣는 순간 하던 일을 중단한다. 상대가 애정의 표현이라고 도와주려 그랬다 오지랖을 떨수록 나는 행동을 통제당한다 침해당한다고 느낀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공부 좀 해!라고 잔소리하면 읽던 책을 덮어버리고 책상에서 일어나는 아이가 나였다.


어머니는 딸들에게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가 심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상다반사 일거수일투족 뭐 하나 맘에 들지 않으면 뭐 하나 걱정이 되면 뭐 하나 더 가르쳐준다고. 어머니의 레퍼토리는 '저거 저거 시집가면 시어머니에게 책 잡히겠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살림 못한다고 친정에서 가르친 거 없다고 시댁에서 욕먹겠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짜증이 나서 대들었다.


엄마. 난 빨래 청소 설거지 다림질 잘하려고 밥 하려고 태어난 거 아니야!!!


나름 어머니 맘에 들어보겠다고 시키지도 않은 집안일을 한 적도 많았지만 어머니 맘에 들게 완벽하게 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칭찬받으려고 노력한다는 건 끝이 없다는 걸 어릴 적부터 깨우쳤다. 그래서 일찌감치 때려치웠다. 내가 '시댁' '시집'이라는 두 글자에 두드러기를 일으키고 며느라기 예방 백신을 맞을 수 있었던 건 9할이 엄마 덕분이다.



병실에서 24시간 간병을 하다 보니 환자든 간병인이든 주변 친구 지인들까지 날더러 착한 딸, '효녀'라고 한다.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말이다. 얼마나 싫은 말인지 마음에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다. 난 효녀인 적이 없다. 효녀가 될 마음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효녀라는 말을 들어도 하나도 기쁘지 않다. 효녀 코스프레 사절이다.


사실 내가 어머니 간병을 도맡은 이유는 할 수 있는 여력이 되어서다. 할 수 없었다면 도저히 하기 힘들다 판단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프리랜서이기에 직장과 제 가족에 매여 있는 다른 형제보다 간병을 할 만큼 시간이 자유로웠기 때문이고 엄청난 병원비를 낼 정도 경제력이 없기에 돈을 대는 형제들과 달리 막말로 몸빵. 시간과 몸으로 때운 것이다.


그런 것이다. 착하거나 효심이 지극해서가 아니라 할 만하니까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애초에 하기 싫었다면 아예 안 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집중해서 끝까지 할 수 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고비가 와도 그나마 덜 힘들고 덜 고통스럽다고 느낀다. 반면 죽어도 하기 싫은 건 때려죽인다 해도 안 한다. 억지로 하면 티가 나고 곧바로 싫증을 낸다. 그게 내 성격이다.


사람은 저마다 처한 상황과 처지와 조건이 다르다. 그러므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본심은 하기 싫은데, 원치 않는데, 남들 눈치 보느라 억지로, 잘 보이고 싶어서, 의무라서, 도리라서, 책임감 때문에 하는 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짓이고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오래 못 간다. 자신을 기만하고 억압하면서까지 참고 견디면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화병에 걸린다.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이 당연히 자식 된 도리이자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병실 생활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당신이 어린 나를 살리고 간병했듯이 내가 수술받고 힘겨울 때 나를 먹이고 재우고 돌보았듯이. 이제 내가 보답할 차례인 것. 어머니가 수십 년 세월 동안 나에게 베푼 사랑과 돌봄에 비하면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좋아서 했다.


ㅡ 이따금 병실 생활 간병 생활이 슬기롭지 못한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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