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 마마 통증보다 무서운 것

슬기로운 병실 생활 9

by 홍재희 Hong Jaehee



수술받은 날 있었던 일. 척추 마취가 생각보다 훨씬, 평균적인 다른 환자들 경우보다 너무 빨리 풀린 데다가 엿같은 무통주사가 효과가 전혀 없어 수술 후 한 시간 후부터 통증과 고열에 시달리던 때.


실비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아서 병원비가 몇 백만 원이 나올지 모르는데 앞으로 얼마나 돈이 깨질지…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게 머리가 지근지근했다. 딱히 고정적으로 돈이 나올 데도 없는 프리랜서라 모아놓은 돈을 다 까먹을 판이었다. 기약 없는 불안정한 수입을 생각하면 단 돈 몇 푼이라도 뭐라도 아껴야 된다는 불안함.


병원에서 새 걸 사면 25만 원이나 하는 무릎 보조기를, 친구가 제 사촌 언니가 쓰던 게 있다며, 그것도 다친 다리도 오른쪽에, 내 치수에 딱 맞는 보조기를(이런 행운이 내게!), 흔쾌히 준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사촌 오빠가 친히 병원까지 가져다 주기로. 배달비 겸 감사 표시로 오만 원을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분이 하필 이 순간 병실에 도착했지 뭔가! 발끝부터 곧바로 지구핵을 향해 추락하는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이 림보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중에. 내 사나운 몰골을 보더니 이 분, 깜짝 놀랐는지 손사래를 치며 돈을 안 받겠단다. 이렇게 아픈 사람한테 말 거는 거 조차 미안하다며 그냥 가보겠다고. 나는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면서 달달달 떠는 손가락으로 배낭을 가리켰다.


- 안 돼요! 거기 지... 갑 있어요. 거기서 꼭 꼭 가져가세요.


울상을 지으며 머뭇머뭇 배낭을 열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친구 사촌 오라버니. 이 분이 미적거리며 지갑을 못 찾자 옆 병상에 누운 오지랖 겁나 넓은 오십 대 아주머니 환자가 발딱 일어났다. 자기가 더 답답했던 모양. 그러더니 대신 내 가방 속을 재빨리 뒤져주었다. 그런데 지갑을 꺼내 안을 살피던 아주머니가 말하길,..... 돈이.. 어디... 없네?


뭐? 돈, 이, 없, 다, 고?


분명 십만 원이 넘는 배춧잎을 넣어두었는데 없, 다, 고!!!!!!!!


그 소리에 머릿속에 섬광이! 정신이 번쩍! 그 순간 벽을 뚫고 날아가서 산에 정면 충돌하는 줄 알았다.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고개를 들었다. 무릎뼈를 뚫어놓은 고통이 주는 충격보다 돈이 없어졌다는 소리가 더 충격이었다. 찰나 모든 고통이 통증이 정말 씻은 듯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후다닥 지갑을 낚아채 뒤졌더니.... 그럼 그렇지! 천만 다행히도 돈이 거기, 있었다. 십 년 감수했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자마자, 주변 환자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소리쳤다. 어어어! 머리 들면 안 돼욧!! (척추 마취 후에는 여섯 시간 동안 누워서 고개를 들면 절대 안 된다. 척수액이 역류해 두통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건네고 인사치레를 하고 나니 다시 미친듯한 통증이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런데 세상에, 돈이 없어졌다는 말에 머리를 든 지도 몰랐다. 아픈지도 몰랐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게 최강 진통제라니! 죽을 만큼 아픈데 동시에 너무 웃겨서 혼자 비실비실 울다 웃었다. 옆자리 환자에게 내가 너무 아파하면 돈 얘기 좀 해달라고 그럼 안 아플 거 같다고 했더니 다들 낄낄낄 하하하 웃었다.


이 날 깨달은 것.

'돈'은 통증보다 무섭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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