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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그 새끼 아버지 아빠 안녕

아버지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던 날

by 홍재희 Hong Jaehee



납골당에 모신 아버지 유골을 찾아 당신이 온 그곳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날이다. 어머니가 차창을 보며 읊조렸다. 딱 십 년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한지 그새 십년이 흘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아득하다 세월. 어머니는 당신이 세상을 뜨기 전에 납골당을 치우자 했다. 내 죽으면 다 끝이다. 너희들이 매년 아비를 찾으러 갈 것도 아니고. 부질없다. 나도 죽으면 화장해서 어디든 뿌려라. 그게 오늘이었다.


납골당에서 인수 절차를 받고 유골함을 되찾았다. 제단에 유골함을 모시고 마지막으로 절을 올렸다.


아버지 이제 이 곳을 떠나시는 거에요. 납골당과 작별 인사를 하는 거에요.


동생이 보자기엔 싼 유골함을 고이 가슴에 안았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 뒤를 따른다. 나는 왜 이 모든 걸 찍고 있는 것일까. 프레임 안과 밖을 오고가며 생각한다. 부질없음. 그런데도 왜 녹화 버튼을 누르고 있을까. 어이없음. 그러면서도 계속 뷰파인더를 바라본다. 의미없음. 헛되다 헛되다를 주문처럼 외면서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덧없슴. 결국 살아있는 자의 욕망일 뿐인데. 종국에는 나조차 이따위 영상조차 무위로 돌아갈 것들 존재들인데. 어리석다. 아무것도 아닌 것. 무심. 그게 나다.


유골함을 실고 경기도 고양을 지나 행주산성을 지나 한강을 따라 멀리멀리 간다 간다.


강너머 산자락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바람결에 먼지처럼 날아갔다.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흐르는 강물에 뼛가루가 둥둥 떠내려간다. 수천 수만개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버지가 태어난 이북 고향을 향해 흘러가는 저 강이 당신을 인도하리라.



꽃잎처럼 점점히 강따라 물결따라 아버지는 떠내려갔다. 바람이 훅 불어왔다. 그 바람에 뼛가루를 흠뻑 뒤집어썼다. 검은 외투가 희뿌옇게 얼룩덜룩 해졌다. 옷을 툭툭 털어내다 멈칫한다. 한 줄기 바람이 온몸을 꿰뚫고 지나간다. 한 때 인간이었던 아버지라고 불린 존재가 내게 DNA 반을 물려준 사내가 내 외투에 분필가루처럼 내려앉았다. 털어내고 털어내도 남아있다.



갯벌 바닥에 내려 앉은 뼛가루를 바라본다. 마치 산호가 꽃처럼 피어나는 것만 같다. 물 위를 동동 흘러가는 아버지. 공중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아버지. 옷깃에 어깨 위에 바지단에 신발코에 아버지. 날아오르고 날아가고 떠내려가고 가라앉는 아버지 아버지. 나는 아버지 한 줌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이 한 줌은 날려버리지 않기로 했다.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먼훗날이 될지 모르는 언젠가 북녁땅 당신의 고향에 내 발로 갈 수 있는 날. 나는 내 주머니 안의 아버지 한 줌과 당신의 고향땅을 밟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는 이제 물고기밥이 되고 새들의 먹이가 되고 지렁이밥이 되고 흙이 되고 나무의 양분이 되리라. 문득 나는 죽어서 무엇의 밥이 될까 상상한다. 물고기 새 지렁이 나무 무엇이든 뭐가 되었든 이생에 왔다는 흔적없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소망한다.





노을이 피처럼 붉다. 단풍이 산이 활활 불타오른다.


동생이 울고 있다. 나는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하지만 난 울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위해 온전히 혼자 있는 순간을 위해 그 눈물을 남겨둘 것이다. 홀로 깨어있는 밤. 아버지를 떠올리며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욕하고 슬퍼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둘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다. 밤이 말없이 묵묵히 우리 뒤를 따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 지푸라기처럼 풀썩 쓰러졌다. 꺼이꺼이 통곡하는 어머니. 심장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는 울음소리.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든다. 떨리는 어머니의 백발머리를 응시한다. 미움과 회한 증오와 사랑 서러움과 슬픔 저주와 고통이 오욕의 세월이 갈려나가는 소리. 당신의 일생이 당신에게 지아비라 불린 한 사내의 한 줌 재와 같이 사라져가는 소리. 나는 뷰파인더 너머 어머니의 삶을 지켜본다. 가엾다. 삶이란 슬픔이 촘촘히 실을 잦는 일. 그리고 죽음은 엉키고 설킨 슬픔을 올올히 풀어내리는 일.


이런 날 밤은 반드시 술을 마셔야한다. 술을 들이붓고 슬픔을 마시고 슬픔에 빠져 나는 슬픔 속에 잠겨 익사할 것이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두 다리 뻗고 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밤 나는 사랑하는 아버지 그 개새끼 씹새끼를 머리맡에 두고 잘 것이다. 아빠 잘 자. 잘 가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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