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 카페의 커피 맛이 좋아 장 보거나 한의원 갈 때마다 들리곤 하는데 읍내 구경 장 서는 날 구경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시장 안에는 작은 재즈바가 있어 매주 두 번 재즈 뮤지션들이 찾아와 라이브 공연을 펼친다. 혼자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바도 두 어 곳 있다.
장바구니를 들고 운동복 후디 차림으로 카페 입구 긴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그림 감상을 한다. 커피 한 잔으로 돈 한 푼 안 내고 갤러리 감상이다.
이 카페 쥔장님은 그림이 전공인 듯 화장실이 있는 위층에는 작업실이 있고 카페 곳곳에 일러스트와 회화가 진열되어 있다. 시장 건너편 청과물 가게 아드님인데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하다. 초식남. 식물을 연상시키는 외모답게 카페 역시 그를 무척 닮았다.
이 카페를 그리 많이 오갔지만 아직도 통성명 한 번 한 적이 없다. 시시콜콜 물어보지 않고 굳이 아는 척하지 않으며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태도가 더 맘에 든다. 부모덕에 번듯한 카페 차린 운이 부럽기보다 이런 카페를 옛 시장거리에 열어줘서 고맙다.
주머니가 가벼워서 액자는 못 사고 엽서를 몇 장 샀다. 이 동네 예술가 화가들의 작품이란다. 카페 공간에서 전시 겸 판매 대행인 셈. 그림엽서 사면서 주인장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림을 그린 작가들에 대해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도서관이 있고 시장이 있고 장 보고 한숨 돌려 쉬어갈 수 있는 길모퉁이 카페가 바가 있는 곳.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문화와 예술이 일상 속 내 곁에 있는 곳. 대문을 열고 나서면 은행나무가 열 지어 서 있어 온통 황금빛이다. 갑갑하다 싶음 훌쩍 뒷산에 들어가면 된다. 사계절이 그 안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원룸이나 고시원,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집을 보금자리가 아니라 돈벌이로 간주하는 동네였다면 누릴 수 없는 사치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 소외가 아니라 여유이며 고립이 아니라 한적함이다.
어디서 어떤 집에서 어떤 이들을 이웃하며 사는가. 삶의 조건이 생의 의미를 만든다. 혼자인 것이' 희망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난해도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나만의 속도로 사는 것이 '낙오'가 아니라 '느리게 사는 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이곳에서 배웠다."
-[비혼 1세대의 탄생] 207쪽
-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 꿈꾸던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만하면 됐다. 더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