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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도서관 예찬

by 홍재희 Hong Jaehee

하나.


한 달 만에 도서관으로 향하다. 집 앞,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도서관을 두고도 가지 못했다. 제 발로 두 다리로 걸어 다시 찾은 도서관. 긴 세월 길 위를 떠돈 방랑자가 고향에 돌아와 누울 곳을 찾고 오매불망 그리던 님을 눈앞에 마주한 느낌.


도서관 문을 연다. 그러자 코 끝에 훅 끼치는 냄새. 책들이 맹렬하게 기운을 뿜어내는 냄새. 바로 내가 좋아하는 냄새다. 시간의 무게가 내려앉아 누렇게 늙어버린 책과 빳빳하게 책 등을 세우고 있는 이제 갓 태어난 책이 빛 속에 서로 얽기고 섞여 들어 커피보다 진한 향을 만들어낸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인적 없는 서가의 통로를 홀로 거닐 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다. 간혹 책장을 넘기는 소리,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마저도 음악처럼 들린다. 서가마다 빽빽이 꽂혀 있는 책을 둘러보면서 아직도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나고 신착도서 서가에서는 그새 또 이만큼 새로운 이야기가 도착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렌다.


책이 뿜어내는 향기에 취해 도서관에서 길을 잃는다. 책 속에서 내 안과 세상 밖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렬해 있는 책들 사이를 꿈길처럼 거닐어본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것은 애인과 만날 약속을 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집을 나서는 것과 같다. 청구기호가 찍힌 표를 들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것. 서고 모퉁이를 돌고 또 돌면서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손으로 눈으로 짚어가며 어느 책장 어딘가에 있을 그네를 찾아 주소를 훑어가는 여정에 보일랑 말랑 감질난 숨바꼭질.

서가를 거닐다가 눈길이 머문 곳에서 우연히 제목을 보고 또는 작가를 보고 또는 바닥으로 떨어져 집어든 책 한 권이 딱 그 순간 내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이야기임을 발견할 때의 경이로움이란. 영감은 바로 그렇게 내게 찾아온다. 나를 다른 삶으로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제각각 손을 내밀어 나를 선택해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것은 마치 사랑에 빠진 것과 같다. 그리고 나는 도서관과 사랑에 빠진 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고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 자를 상상한다.


작은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다니. 읽어도 읽어도 책은 끊임없이 새로 나온다. 게을러터 진 내가 유일하게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다. 세상엔 이렇게 읽을 책이 많은데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손도 대지 못한 책이 이다지도 많다는 사실. 바짝 조바심이 난다. 다른 것에는 대체로 욕심이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책 욕심은 많다. 굳이 죽는 방법을 선택하라면 책더미에 파묻혀 죽는 것도 괜찮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밖으로 난 창 아랫사람들이 고요히 책을 읽고 있는 풍경.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햇살마저 발끌을 들고 살금살금 걷는다. 그 풍경에 매료되어 잠시 바라본다. 책 읽는 삶. 책 있는 삶. 이 작은 일상이 감동이며 황홀이다.


과욕을 부렸다. 책 일곱 권을 빌렸다. 산에 왜 가느냐 물었더니 누군가 산이 거기 있어 간다고 말했다지. 도서관에는 책이 거기 있어 가는 것. 그건 어떤 운명 같은 것. 내게는 말로 담기지 않는 사랑 같은 것. 매일밤 책이 건네는 은근한 목소리에 귀를 세우는 것.


도서관 책상 앞. 의자를 당겨 앉고 노트북 전원을 켠다. 네 귀퉁이가 사각으로 단정히 접힌 하얀 보자기를 가지런히 펼치듯. 드디어 내가 있을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은 평온함이 깃든다. 잃어버렸던 일상을 그렇게 다시 찾았다.



둘.


어릴 적부터 언제 어디서나 틈만 나면 가방에서 책을 꺼내드는 날 보고 어머니는 신기한 듯 물었다.


"넌 그 책이 눈에 들어오니?"


나이 들어서도 똑같다. 어머니댁에 방문하면 내 집에는 없는 TV를 보느라 일단 전원부터 켠다. 그러다 흥미를 잃으면 이내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TV를 보던 노모는 책에 집중해 있는 내게 예전과 똑같은 질문을 또 던진다.


"넌 그 책이 눈에 들어오니?"


어머니는 알고 있을까.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던 집에서 어린 내가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었던 순간이 오직 책을 읽을 때뿐이었다는 걸 어머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펴고 책 속의 세계로 빠져든 다음에는 아버지가 고함치는 소리도 어머니의 울음소리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책 속에서는 묘석이 쓰러져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무덤 같던 집 안의 공기마저도 벚꽃 날리는 봄바람으로 바꿀 수 있었다. 밤새 그치지 않는 부부싸움에 다음날 아침 전화가 휩쓸고 간 참혹한 폐허 같았던 집안에서조차 책 한 권이 있다면 나는 버틸 수 있었다.


책만 있다면 나는 현실을 잊고 상상 속으로 다른 세계로 도피할 수 있었다. 그 긴 시간과 오랜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버틴 이유는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 손에서 책을 빼앗아갔다면 나는 아마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책만이 아니라 영화와 음악도 위태로운 삶을 지탱해 준 정신적 지주였다. 그러나 그 시작이 책이었음은 분명하다.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즐거움에 속한다.”
ㅡ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는 브레히트의 말에 동의한다. 산책을 하거나 책상에 앉은 채로 또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에 집중해서 사색하고 상상하는 일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 준다. 몹시 기분 좋게 해 준다. 무언가에 집중에서 나 자신을 잊고 주위를 잊고 생각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 생각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거침없다.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가 우주의 블랙홀이 되었다가 한 마리 새가 되기도 한다. 사고의 세계 속에서는 부부싸움도, 지뢰밭도, 그 어떤 장애물도 없다. 나는 끝없이 펼쳐진 너른 들판을 향해 달리는 자유다.


삶은 때때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우리를 같은 곳에 데려다 놓는 경우가 있다. 도서관에 앉아 있다 문득 학창 시절 방과 후 도서관에 숨어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 울고 있었던 나를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 선생에게 들켜 쫓겨나기 전까지 도서관 서가 귀퉁이에 숨어 있던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던가.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책과 더불어 도서관이 내게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삶을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것을 무엇으로든 표현하는 삶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갈구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삶을 오늘 살 수 있게 해 준 운명에게 감사한다.


하루 종일 홀로 생각할 시간이 있고 글을 쓰면서 종일 도서관에 처박혀 있을 수 있는 삶이라면 이 정도면 참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벌이도 없지만 역시나 다음 달 그다음 달에도 무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나 라는 밥벌이의 고단함을 제외하고는 나는 오늘을 이렇게 보내는 삶에 만족한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여유로운 자의 자족하는 일상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그 밖에 바라는 것이 없다.


몇 해 전 누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요즘 글을 쓰느라 만날 수가 없겠어라고 했더니 대뜸 소설 쓰는 거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소설? 그는 왜 내가 쓰는 글이 소설이라고 생각했을까. 소설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나서는 곰곰이 그 말을 되새겼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뜻 없이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말에서 뜻밖에 무언가를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 나 혼자 의미를 부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나 이야기가 있고 모든 이의 삶은 모두 자신만의 소설이다. 내 안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들이 말이 되어 밖으로 꺼내달라고 문을 두드린다. 언젠가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손을 타고 자판으로 활자로 변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읽어왔던 수많은 책과 내가 살아온 과거와 지금 여기 도서관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가 만나는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가 싹틀지도. 그 이야기가 시나리오가 될지 소설이 될지 영화가 될지 또 다른 그 무엇이 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거라는 걸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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