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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 대한 명상 1

by 홍재희 Hong Jaehee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남자들이 깨지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배팅하는 지점은 주식과 선물과 옵션과 로또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경매가 있겠지.



어제 우연히 경매에 빠진 서른 하나 남자를 사랑하는 서른 살 여자를 만났다. 여자의 인감과 카드를 빌려 대출을 받은 남자는 오늘도 경매판을 기웃거리며 여자에게 정리만 되면 너에게 가게 하나 차려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남자의 카드빚을 대신 갚으며 월급도 없이 남자가 어쩌다가 쥐어주는 현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는 '오빠'라는 남자의 말을 믿고 그가 말한, 경매 집이 팔리기만 하면 된다는, 내년 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돈과 마음을 갈취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게 아니야. 정신 차려.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남자를 하루빨리 떠나는 게 좋겠어.



똑같은 속임수가 눈앞에서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성공 신화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실패의 내리막길을 가파르게 내딛는 남자들. 고점에서 비싼 값을 치르며 인생을 사고 저점에서 황급히 인생을 떨이하는 남자들. 바닥을 쳤다고 믿어보지만 여전히 더 끔찍한 밑바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생은 시작점과 정점이 있는 일직선이 아니라 끝 모를 나선형 계단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 남자들.


내 아비도 그러했다. 아버지의 서랍장에는 수십 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사 모은 주택복권이 그득했었다.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당신의 인생에 더 이상의 반전이 없다는 것을 무참히 깨달은 아버지가 유일하게 몰두했던 허무한 반전쇼. 매주 일요일 TV를 틀어놓고 주택복권 추점을 뚫어져라 지켜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이런 남자가 셀 수 없이 많다.


지금도 난 그런 남자 중 한 명과 빚과 생활이 얽혀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문득 난 우연히 가게 앞에서 마주쳤던 여자의 남자가 생각났다. 손님 하나 없이 파리 날리는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 남자. 예측불가능한 삶에 대해 무기력과 절망감을 끌어안고 사는 듯했던 남자의 공허하면서도 집요한 그 표정. 남자는 가족도 여친도 안중에 없어 보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은 비혼주의자라고 했다 한다. 여자는 자기도 이 남자와 결혼 생각이 없으니 차라리 그게 나은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도 아닌 애인도 아닌, 고작 '오빠' 따위로 불리는 아무런 남에게 너는 네 이름과 신용카드와 인감을 양도했구나. 그가 말하는 보호와 책임감에 기대어 인정과 애착이라는 이름으로 어쩌다가 섹스도 해주며 넌 그렇게 너 자신을 속이고 살고 있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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