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가는길- 2024 3.29 흐린날
눈을 뜬다. 간밤에 별일없이 아침을 맞는 게 감사하다. 비가 올 것이라던 지난밤 일기예보가 흐린 창밖 먼동에 기억된다.
커피 한잔을 내려 아직 찹다 싶은 방공기를 느끼며 창가에 앉는다. 비가오나보다. 저아래 깜깜한 검은 아스팔트 도로에 가로등 불빛들이 반사되어 퍼져늘어진걸 보니 잔비가 내리나보다.
지난밤에도 비가 왔었다. 압구정동에서 일을 보고 밤10시까지 지인들과 함께하는 동안 몹시 힘들었는데 그들중 하나가 안색이 별로라고 택시태워줘서 쑥쑥 기어들어가는 눈두덩이와 겹쳐지는 쌍꺼플을 느끼며 몸이 아직 우려할 만한 상태이구나 하고 느꼈고 택시 와이퍼가 계속 간헐적운동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난다.
며칠 아무생각없이 쉬어줘야 겠다 하며 잠을 청했던 우울한 기억. 몸의 상태가 이토록 묵직하게 우려되던 적은 없었는데..
내 삶의 동적 범위가 정말 줄어들거나 의도적으로 불안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건가? 아- 그거 아직 받아들일 준비 하나도 안되어 있는데..
뜨거운 커피 반 모금 쌉싸름하게 넘기며 뿌연 창밖,더럽게 흐린 새벽 공기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어제 새벽이었다.
간밤에 금,토,일 삼일은 진짜 환자 같이 쉬고있어야지, 하며 날 걱정했었는데 쓰지만 깊은 운명같은 커피를 삼키고는 마음이 바뀌고 말았다. 날 너무 확인하고픈 욕망이 컷나보다. 얼마전 어디선가 누군가가 완주 화암사 이야기를 해준 지인이 계셨다. 왜 그리 그 절이 쏙 들어와 박혔는지 잘 모른다. 사람때문이겠지..
그때 난 대통령도 걸어갈수 밖에 없다는 그 잘 알려지지않은 숨은 천년 고찰을 꼭 가보자 했었다.
그리고 이 삐딱한 오기서린 새벽마음이 그곳을 이미 마음에 정해 버렸다. 하나도 서두름없이 서서히 네시간 운전해 가보자고…
뿌연 황사비 내리는 꾸질구질한 날씨도 그리 맘먹고 내려가니 제법운치있다.
까를라 부르니의 묘한 허스키보이스
“The Winner Takes It All”
“Moon river”
“Stand By Your Man“
을 차례로 들어본다. 오늘 같은 날씨에 딱 맞는 선곡이다. 그리곤 유튜브 알고리즘이겠지.. 어쿠스틱 키타 이어듣기로 바꾸고 날 다 포기하려는 의도로 운적석 깊이
날 밀어붙친 채 구질구질한 봄비속으로 완주를 향해 네비만 의지한채 내려간다.
시술후 모든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이상징후가 제발 단지 시술후유증이고 다시 일정기간 지나면 원래로 돌아가길 바래보면서… 근데 뭔가 이전과는 다르다. 아—
완주는 좀 추운 지방인가? 고도가 제법있는 산악지형이라 그런가? 겨우 목련이 몇개 펴있다. 그것도 이런날 왜 하필 누런 한참 지는색 목련만 심어져 있을까? 안그래도 우중충한데… 참 이상한 논산 이네.
어떤 환경에서도 이쁘고 탐스러운 목련도 많은데.. 네시간 반을 다 채우고야 완주 화암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너른 주차장에 차 한대만 덩그마니 서있다. 아직은 겨울이 그대로 남은 커다란 잡목들은 아직 겨울인데 그안 어딘가에 봄이 군데군데 잔뜩 숨어 있다. 땅에도 나무에도 계곡에도 하늘에도…눈이 밤에 적응하면 수많은 별이 서서히 엄청나게 하늘 채우듯 봄기운이 가득하다. 땅에는 병아리새끼같은 새순과 할미꽃 매발톱꽃 같은 고개숙인 백합모양 꽃(찾아보니 얼레지란다)과 서양 파랑색 잔나비 같은 꽃들 뭔가 디즈니 만화같은 꼬마봄이 사방에 깔려있고, 계곡에는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봄소리로 변해있고 천년계곡답게 싱싱한 초록 이끼가 어떤 봄꽃보다 포근한 감촉을 눈으로 느끼게 한다. 기분좋은 벨벳.
나무는 주로 잡목들. 잘모르지만 참나무 과 거목들이 많은데 밤하늘 잔별같이 가지마다 연초록 새순들이 삐쭉삐쭉 몽글몽글 맺혀있다. 마치 자라는게 보이는듯 하다. 흐린하늘에서조차 봄이 코로 들어온다. 사전에 세뇌된 알려지지않은 천년고찰 가는길, 대통령도 걸어가는길. 이라는 카피 덕에 더 연륜이 느껴지는 봄길.
“화암사 가는길”
이정표나 입간판이 참 낡고 제멋대로 부실해서 다른산 같으면 궁시렁 댓을 텐데 이길에 허접한 이 이정표나 안내판은 낡은 그대로가 왜이리 잘 어울리던지..
화암사 까지는 700미터 란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을 끼고 걷는다. 봄을 품은 물소리가 왜 이리 꼬들꼬들한 육각수같은지.. 중간쯤부터는 아예 물길을 딪고 건너고 .. 계곡의 깊이를 더한다.
가슴이 좀 빨리 콩닥콩닥 뛴다. 몹시 심장에 민감해져 있는것치곤 더 빠르고 강한 비트로 느껴져 예민이 우려를 더하길래 잠시 물길을 가랭이 사이로 보내며 좀 쉬어본다. 참 좋은 기운의 산이다.
보통 이리 물과 이끼가 많은 대충 북동향 산이면 습하다. 습하거나 음하다. 그런데 이 산길은 습한데도 음하지않고 양기는 아니더라도 엄니 양수 안같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봄이라 그런가? 이런 기운 느껴지는 계곡길이 흔하지 않은데..
홀로 작대기 하나 집고 오르는 화암사 가는길 7백리(7백미터) 가 참 좋다.
참좋다. 얼레지라는 할미꽃같은 꽃이 귀여운 벌레같이 좋고 귀를 관통해 머리까지 들어가 잡념까지 씻어주는 물소리가 좋고 백일애기 궁둥이같은 새순들이 삐죽삐죽 좋고 오르는 내내 다른 모습들로 다가온다. 긴 2단 폭포를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급경사 철계단이 나오는 걸보니 어느새 다달아 가나보다. 화암사 가는길.
아래서 본 폭포수줄기와 다올라와보는 폭포수줄기가 같은 물인데도 다르게 다가온다. 화암사가 보인다.
내내 이어졌던 물길의 시작점같던 계곡 다리 건너에 자그만한 부석사 무량수전같은 내소사 대웅전같은 천년의 세월이 베인 목조 기와 건축물이 보인다.
“불명산 화암사” 현판이 사천왕상같은 필체다. 산벚꽃 한그루와 온통 이끼 돌담에 올라선 수수한 목조 건물 몇채. 아무도 없다. 오는길 내내 그랬다. 목조 건물 네동이 우화루와 대웅전을 마주하며 입구字 형태로 자리잡은 경내.
대웅전이 굳게 닫혀 들어가도 되나 싶지만 걸고리로 열수있게 잠긴 문고리를 열고 컴컴한 법당에 들어선다. 향 하나올리고 양초 두개에 어렵사리 불을 붙이고 천년나무냄새가 은은한 싸늘한 법당에서 목례하고 합장하고 한동안 서 본다. 뭘 생각하며 삼배할까? 아마 삼십이전에 년전에 받은 “평생 명심문”이 떠오른다. 운명인가보다. 그냥 저절로 그 명심문을 읊조리며 삼배. 또 부처님 불상 세개만 가녀린 촛불속에 윤곽드러내는 그곳 응시하며 생각해본다. 부처님께 기복을 바라는 기도는 하지말라 했는데 .. 다짐을 다지는게 나은데.. 한번만 삼배하고 가기에 너무 아쉬운 화암사 대웅전. 다시 삼배한다.
부탁하고 싶었다. 좀 간절했다.
어느 시간동안 제발 활동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 건강을 주라고 부탁드렸다.
내가 나를 통제할수 없는 시간이 너무 빨리 오는 건 좀 가혹하다고… 비교적 마음의 준비는 잘해가고 있는줄 알았는데 아직은 내가 좀 무서운거 같다고…
잠시 108배 올리는 두꺼운 멧방석에 앉아 절하면서 머리가 핑~돈 내 컨디션에 울적함을 확인하고 부처님께 기도아닌 바램을 기도했나보다. 향을 분향 모래에 거꾸로 박아 끈다. 양초 불도 재단에 놓인 놋쇠 주걱으로 눌러 끈다. 까만 법당에 촛불의 잔영이 하얗게 연기되어 사라진다.
법당을 나와 대웅전 뒷뜰로 가본다. 대나무숲이 바람에 마구 흔들이며 뭐라뭐라 한다. 찬찬히 이곳 저곳을 살핀다
사각의 마당위 흐린 잿빛하늘이 금방이라도 또 비를 뿌릴듯 하지만 오늘은 모든게 내마음색과 하나되어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다시 연꽃 연등 문을 나와 경내밖 담벼락을 끼고 돌아본다. 이절엔 아직 그옛날 해우소가 그대로 남아있다. 아마 여기 분들은 저 해우소를 쓰다보다. 그 바로옆에 근대식 화장실도 있긴하지만 왠지 나도 일을 보게되면 예날식 해우소를 사용하게 될것같다. 정겹다.
어느새 저녁 여섯시가 다 되어간다
꽤 오래 있었네. 문간 요사채 같은데서 거사님 한분이 허리굽혀 나오신다.
모처럼 인기척에 반가웠을까? 어디서 오셨어요? 묻길래 서울서 왔습니다 했더니 어? 오늘은 서울 손님이 많으시네 ..하며 서로 반가운 합장인사로 마무리한다.
뒷뜰 해우소 옆에 주차장과 차가있어 어?여기 대통령도 걸어올라오는 절이라던데.. 여쭸더니 빙그레웃으시며 산불 대비용 임도가 나있다고 차로올라오시지 그러셨어요. 하신다. 알았어도 일부러 걸어올라 올 길이었는데…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라 다 내려가 차로 임도길을 다시올라갔다 내려오긴 했다. 꽤 길고 세다. 2km 가 넘는 미니 한계령같은 길이었으니 그길로 걸어 내려갔으면 깜깜하고 힘들뻔 했다.
내려가면서 내내 생각든다.
내몸도 내인생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는
알면서도 아닌척
알면서도 모르는듯
알면서도 아는게 뭔지 몰라 ..
그렇게 안다고하면서도 잘 못 아는 시간을 보내왔다. 이제 그 진실이 알아질것 같으니새로운 두려움과 걱정과 서글픔과 간절함이 화암사 가는길 봄기운같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다시 공부해야 하나보다. 시건방 떨지말고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나쁜 새순을 들여다보며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의 현상을 담담하게 맞이할 용기와 인내를 가져야 함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나보다.
오늘난 긴 시간을 아직 부실한 몸 이끌고 완주 화암사 내려오길 잘했다. 무모함 덕분에 세상과 내 몸과 내 마음의 봄을 찬찬히 조심스레 들여다 보았다.
또 긴시간 운전해 원래 내자리로 돌아가야지. 약간의 우울속에 수고한 나에게 건강한 식사대접해본다. 완주의 맛집은
어디일까?? 오늘도 네이버로 찾아 마지막 손님으로간 집이 성공이었다.
또 하나도 급하지않은 마음으로
영국 가수 아델의 노래 몇곡을 들으며
나의 원래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