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표관료제

지원이 아니라 투자라는 발상의 전환 필요.

by 우철UP


‘장애는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는 끈이다’.


혓바닥 격투기란 프로그램에서 유튜버 박위가 마지막에 던진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글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또는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현실적으로 바라본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들 각자 처해진 입장이 있고, 각자 생각도 다르니 내 생각이 잘못된 것 일수도 있고, 박위의 생각이 건전하고 올바른 것 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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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가 ‘장애’라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글쎄’라고 생각한 것은 장애가 가족을 하나로 묶는 끈 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의 전체의 족쇄 또는 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한 집안의 가장이 갑자기 사고를 당했을 경우 장애는 가족에겐 족쇄가 될 환경적 요인과 함께 ‘장애는 곧 노동력 상실’로 이어져 금전적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물론 돈 걱정 없이 살 수는 가정이라면, 장애는 그다지 문제가 되질 않겠지만 그런 집이 어디 흔한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현실로 바라본 장애는 가족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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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장애로 인해 내가 생활고에 시달려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장애 이후, 긴 재활을 거치면서 직장도 관두게 되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 어려움이 결코 없었다고 할 순 없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힘든 과정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이겨내고 다시 직장을 갖게 되었다. 장애란 타이틀과 4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로 취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만큼은 이런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이도 젊지 않은 내가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공무원시험은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떨어지는 순간 그동안 공부한 것이 다른 취업시장에 써먹을 수 없는 과목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큰 시험이다. 그런데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사기업시장에 취업할 나이도 아니었기에 필기시험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공무원시험밖엔 답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월급은 적지만 정년이 보장되고 일반 기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처우와 복지가 탄탄하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이 내겐 최적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공무원시험이라는 것에 도전하기 전, 시험 난이도에 내 실력을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동안 출제된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 그동안 출제된 공무원 기출문제 중 행정학 행정법은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두 과목을 제외한 국어, 영어, 한국사 세 과목만 풀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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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안 한 상태에서 꽤 높은 점수가 나왔다. 두 과목만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공무원 수험생활을 시작했지만 앞서 3과목 이외에 행정학, 행정법은 만만치 않은 암기과목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암기과목을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외우고 외워도 까먹기 일쑤였다. 이러니 하루에 10시간 이상의 학습량이 없다면 공무원 시험은 일찌감치 때려치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하루 10시간 이상, 매일매일 공부만 하면서 시험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왔다. 짧은 수험기간에 운 좋게 합격했다. 합격과 동시에 한 달도 안 되어 곧바로 임용되어 지금은 열심히 공직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와 같이 상황이 마냥 좋게 돌아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 같은 경우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좋아해서 가방끈이 꽤 길다. 원래 책상에 오래 앉아 책을 보는 스타일인 나에게도 공무원 시험은 정말 어려웠다.

공부하는 자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다. 최소 1년 이상 버티면서 공부만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필요하다. 맞벌이 가정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아니면 퇴직금을 깰 수밖에 없다. 나는 과감히 퇴직금을 깼다. 사업할 그릇은 안되고 시험준비가 사업준비라고 생각하고 9개월간 퇴직금을 까먹으면서 버텨서 이뤄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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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국종 교수가 어떤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터뷰한 말이 떠오른다.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자면 ‘비싼 진료비를 내는 고관대작 한 명을 치료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갑자기 사고를 당한 근로자 가족을 성심껏 치료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래야 그 가정의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사고를 당한 그 가정이 안정적으로 자립하게 되며, 그 자녀들은 건전한 사회인으로 자라게 될 겁니다. 그러면 결국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서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게 되면 그것이 미래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우리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라는 내용의 요지였다. 복지정책의 핵심이 바로 이 말에 모두 응축된 것 같다. 복지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취약계층의 자녀가 자립할 수 있게 지원정책을 펴는 것을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의 가치투자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바로 이점에 주목해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구할 때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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