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온 국민의 뜨거운 이슈는 아니지만, 서울 시민에게 껄끄러운 이슈가 하나 있었다.
전장연 지하철 시위이다. 전장연은 시민들 출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켰다. 지하철이 한 시간 이상 지연될 때마다 시민들의 불편은 컸고, 온통 뉴스 기사의 댓글 창에는 원성과 원망을 쏟아 냈다. 특히나 원망의 대상은 전장연을 포함해 불특정 다수의 장애인에게로 향하는 분위기였다.
과연 시민들의 생각이 뉴스 기사의 댓글처럼 조롱과 비난만 있는지, 아니면 다른 시각이 있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던 차에, 꽤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견했다.
『한국리서치주간리포트(제187-3호) 2022. 07. 06. 여론 속의 여론 – 기획 :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인식』이라는 여론조사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리서치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곳에서 자체조사한 내용으로 대한민국 성인남녀 만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총 929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설문목록에서 보면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있다’》와 《장애인에게 도움이 필요해 보일 경우 ‘도울 것이다’》란 응답에 ‘인권에 관심이 있다’란 답변이 71%, ‘도울 것이다’란 답변이 73%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다.
또 《장애인을 직장동료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란 답변에도 70%가 넘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차별이 ‘심각하다’》란 답변이 53%, 《장애인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란 답변은 80%로 매우 높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는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있다》와 《 직장동료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란 답변의 결과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나는 30%의 미온적이며, 부정적인 답변자에게 오히려 많은 관심이 쏠린다. 앞서 장애인을 도와주겠느냐란 답변에 최소 73%, 최대 90% 이상의 매우 높은 지지가 돋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본성에 내재한 『측은지심』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맹자님 말씀처럼 인간은 누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직장동료 혹은 친구와 같은 나와 관련된 또는 나의 이해관계에 접촉된 문제가 야기된다면 토머스모어의 말처럼 인간의 착한 본성은 사라지고 점점 더 이해관계에 얽히고 설킨 문제로 인하여 측은지심은 배제되고 철저히 이성적 판단으로 대처하게 된다.
그러니 30%의 답변자는 단순히 ‘관심이 없다’이지만 나의 삶 속에서 이해관계가 충돌되면 항상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리서치 보고서에는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39%, [장애인 이동에 어려움이 없다]라는 답변이 20%라고는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 듯이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 즉 [나의 출근길을 방해하는 무리들]이라는 인식의 틀에 갇히게 되면 [장애인 인권이나 이동에 어려움 등에 관한 부정적 응답]은 40% 이상, 아니 그보다 높은 6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시민들과 직접으로 맞닿는 [출근길]을 담보로 시위가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점점 더 부정적 평가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전장연은 이동의 자유, 그중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어려운 곳이 분명 존재한다. 건물구조를 바꿔야 하는 일로 쉽게 처리할 수 없다. 저상버스의 도입도 기존 버스를 유지한 채 앞으로 도입되는 새로운 버스에 순차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해결하고자 하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전장연도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들 목소리를 그 누구도 귀담어 듣지 않으니, 궁여지책으로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매번 그들의 요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예산 탓, 인력 탓으로 돌리며, 지지부진한 진행과정에서 계속해서 겪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전장연 단체의 시위 보다 더 과격한 방법의 시위가 있었다. 버스에 앞을 가로막고 버스 운행을 멈추게 하였다. 이렇게 과격한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인식변화와 더불어 지원 덕분에 영국은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도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편의시설에 장애인이 사용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새롭게 시설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과연 이것이 과격한 시위 덕분에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다.
먼저 그전부터 축적된 인식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작은 인식의 변화를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 또는 각종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성과이다. 그러니 영국 장애인 뒤에는 영국 시민이 버티며 한 목소리를 낸 것이고, 서울 지하철 역에서는 장애인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먼저 인식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문제의 방향을 시위가 아닌 인식개선으로 선회를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과거와 달리 미디어가 혁명 시대이다. 과거 언론에 의지해 의사를 표현하던 시대는 구시대 산물이고, 이제는 개개인이 언론사가 되었고 방송국이 되었다.
얼마 전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이 각종 방송매체에서 직접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뉴스 댓글에서 보면 [장애가 무슨 벼슬이냐]라는 댓글이 참 많다.
장애가 벼슬은 아니지만 벼슬 길로 나갈 수 있는 등용문이 되기도 한다.
바로 [대표 관료제]이다. 공무원 채용에 장애인 전형이 따로 있는데, 이것이 바로 대표관료제인 것이다. 이 제도의 목적은 장애인 채용도 있겠지만 소수자의 입장을 대표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제도를 집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비록 미관말직의 9급 장애인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대부분이어서, 그들이 무슨 직권으로 업무를 집행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방형 직위를 통해 4급 서기관까지 대표관리제의 채용 범위는 넓다. 그렇기 때문에 9급~4급까지 그동안 대표관료제를 통해 채용된 축적된 인원은 꽤 상당할 것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맞다.
다른 한편으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필요한 정책을 입법 발의 할 수 있는 어찌 보면 가장 실효성이 큰 자원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목적은 소수자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회의원이라는 대표성을 주고, 본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의 목소리를 듣고 실효성 있는 입법안을 마련하라고 만든 자리이다. 그러니 지금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립 구도는 충분히 완충시켜야 한다.
물론 그들은 소속 정당의 중앙지도부와 멀찍이 떨어져 있어 해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비례대표라는 막중한 책무가 있다면 전장연의 입장이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지하철 시위가 지하철 공간이 아닌 국회나 서울시와 같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시위를 재개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 주어야 한다.
시민들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시민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시위 방법과 시위 장소]가 문제이지 이동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며, 장애인에 대한 도를 넘은 혐오와 폭력적 댓글을 대하는 혹독한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지 나로선 이해 불가이다.
만약 시민들이 이동권에 대한 문제의식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 없이 전장연의 시위를 통해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전국에 저상버스가 100% 도입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인식의 변화 없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내 세금으로 이런데 쏟아부었나’ 하는 차가운 시선과 냉대만 가득할 수 있다.
단지 [삐익— 삐익---] 거리는 차가운 기계에 의존해 저상버스에 휠체어를 밀어 넣고, 그것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만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보다 먼저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저상버스가 도착해서 버스 안으로 휠체어에 진입하는데 반드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고, 또 버스에 승차하더라도 안전장치로 고정하는데 또 시간이 걸리게 된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자마자 곧바로 출발하는 게 우리나라의 일반적 버스의 모습인데, 1분 이상 걸리는 승하차를 사람들의 장애인식개선의 변화 없이 일방적으로 호의적으로 바라봐 주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의 장애인식에 대한 변화 없이 제도가 먼저 도입되면 승하차에 걸리는 시간에 대한 불만과 냉대, 민원발생이 또 다른 문제로 발생하게 된다.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컴퓨터 하드웨어 = 사회제도가 아무리 잘 구축되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 = 장애인식개선이 지원되지 않으면 컴퓨터는 고철 덩어리에 불가하게 된다.
사람들의 장애인식이 개선되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탄 사람 중 누군가가 “제가 내릴 테니 먼저 타고 가세요”라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 장애인식에 대한 변화가 정말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사람의 본성인 [측은지심]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사람들의 장애인식개선에 대한 노력이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