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바르셀로나를 떠나며

2025년 바르셀로나 두 달 살기

by ungatogris

등에 짐을 업고 다녔을 때는 몸이 고돼도 머리가 쉬어갈 수 있었고, 내 방 얻어 짐을 풀었을 때는 몸은 편한데 머리가 쉼 없이 돌아갔다. 짧고 굵은 휴가와 가늘고긴 한달살이의 차이? 점점 빈털터리가 되어갔다는 점에서 내 한달살이는 세미-현생에 가까웠지만, 덕분인지 때문인지 여행 뽐뿌에 쭉 젖어있기보다는 사는 배경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고집불통인 내 웃픈 사고패턴들을 더 분명하게 바라보는 기회를 얻게 됐다.


친구들과 나란히 에어비앤비로 가득 찬 다운타운을 걸으며 중장년이 되어서도 월세 걱정 할 미래가 암울하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기도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가늘고긴 시간을 홀로 값비싼 에어비앤비를 누비며 보내지 않고, 난방도 안 되는 작은 집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때때로 서로가 서로의 꼴사나운 본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며 지냈다는 사실이 고맙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같이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사소하고 하찮은 행복들에 대해 기뻐하면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쉬코드라로 넘어오니 괜히 집 떠나온 기분이 든다. 두꺼워진 옷 위에 다시 무거운 짐을 얹고 다닐 생각 하니 급 피곤해지지만.. 고된 이동에 지쳐 꿀잠 잘 밤들을 고대하며 남은 여행 새로운 마음으로 움직여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