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때, 나는 먹었다.

음식중독자의 일기

by 시카


음식중독과 『어린 왕자』



지금도 밤마다 잠들기 전, 배달앱을 몇 번이고 켰다 끄곤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냥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말았지만, 이제는 그 욕구를 내일로 미룰 수 있게 되었다. 분명, 커다란 발전이다.


사실 배가 고픈 게 아니다. 어딘가 구멍 난 듯 물이 새는 빈 공간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을 뿐.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쾌감을 주는 먹는 행위를 나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음식을 향한 욕구를 제어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에너지가 바닥난 몸은 먹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먹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에 휩싸여, 어떤 때에는 음식 생각 때문에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조차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먹는 순간이 마냥 행복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먹고 또 먹어도, 쾌감은 일정 선을 넘지 못했고,

턱끝까지 음식물이 찼는데도 괜한 헛헛함에 냉장고 문을 계속 열고 닫았다. 그렇게 덮어놓고 먹다 보면 불쾌한 소화불량이 찾아왔고, 건강에 대한 염려까지 밀려들곤 했다. 정말이지, 괴상하고도 완강한 악순환이다.


집에서만 그랬으면 다행일 텐데, 일터에서도 비슷했다. 바쁜 와중에도 속에서 일렁이는 허기를 참지 못해, 짬이 나면 회사 앞 파리바게뜨에 들렀다. 의지로 이 식욕을 눌러낼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뿐이었다. 그 외에는 빵과 과자를 먹어야 한다는 몸의 신호 -간질거리는 손끝과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를 이기지 못해 근무 중에도 간식을 뜯어먹었다. 어느 날은 길가에서 과자를 씹다가 상사와 마주쳤는데, 내 블라우스에 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본 부장님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저 확실한 건, 나는 그를 보는 순간, 그냥 죽고 싶었다. 내가 내 몸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구나, 하고 자각하면서 내가 어떤 시궁창에 빠져 있는지 알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음식 중독 (정확히 말하면 설탕 중독)에 빠져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 중독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야식을 먹고 잠들고, 퀭한 눈으로 아침 출근길에 나서고, 늦잠을 겨우 면하고 도착한 회사에서는 화장도 하지 못한 얼굴과 손질되지 않은 머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거울 속 나는, 이십 대 후반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2년간, 눈꽃이 피고 녹고, 봄꽃이 피었다 지고, 녹음이 푸르렀다 붉게 물드는 그 사이, 나는 계절을 느낄 틈 없이 방 안에 있었다. 불어난 몸뚱이에 맞는 옷이 없었고, 못생겨진 내 모습에 질려서 바깥에 나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거울 속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얼굴을 어떻게든 마주해야 했기에, 역설적으로 나는 먹어야 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먹고, 또 먹고, 머치 자해라도 하듯이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유튜브를 보다가 식곤증에 휩싸여 잠이 들었는데, 그때 찾아오는 몽롱한 쾌감이 내게 마치 한줄기 빛과 같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술꾼 아저씨와 나 사이에, 과연 차이가 있을까. 왜 술을 마시느냐는 어린 왕자의 질문에, 그는 술 마시는 자신을 잊기 위해 마신다고 답한다. 어린 왕자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악순환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그에게 술을 마시는 행위란, 뼛속 깊은 자기혐오를 잠시나마 눌러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란 사실을. 그 술꾼은 제게 주어진 삶이 너무나도 소중했기 때문에, 무너져가는 자기 자신을 맨 정신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시궁창 속 자기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그 자기 모멸감은 스스로를 나락으로, 더 깊은 나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밀어버린다. 그리하여, 무한한 굴레가 만들어진다. 자신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갉아먹는 이 굴레에는 도무지 끝이 없다.


『어린 왕자』는 종종 ‘프랑스 작가가 미국 사회를 풍자한 작품’으로 읽힌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동시에 가장 많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센터가 있는 나라. GDP는 높고, 자유는 넘치지만, 마약, 총기, 빈곤이 뒤엉켜 있는 '겉이 번지르르한 허기진 나라.' 생텍쥐페리가 이 책을 출간한 1943년에는 미국이 대표 격이었을 테지만, 2025년 현재에는 대한민국 사회가 어린왕자가 풍자하는 사회에 좀 더 면밀히 맞닿아 있어 보인다. 돈을 숭배하고, 남들과 끝없이 비교하고, 옳고 그름보다는 명분과 효율에 집착하는 사회. 시간에 쫓기며 의미 없는 숫자를 세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왕 노릇을 하고,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으라면, 손에 꼽고도 남는다.


우리는 어느 순간, 편안하게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 껍데기만 남은 삶에 매달려 진짜 ‘나’를 조금씩 잃고, 원인을 모를 불면증에 시달린다. 나도 그 가운데서, 매일같이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모 프로그램에서 가수 박진영은 말했다. 삶에서 중요한 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매일같이 해내는 것"이라고.

무대 위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춤을 추는 자유를 위해, 무대 뒤에서 수개월간의 연습, 식단 조절, 수면 관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눈앞의 마시멜로가 아니라, 내일의 마시멜로를 위해 절제하는 일. 건강하게 먹고, 제시간에 자고, 적당하게 움직이는 일, 이 기본적인 것만 지켜도 삶이 자유하다는 진리는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외면하고 싶기까지 하다.


순수한 어린 왕자의 눈은, 삶의 본질을 잊은 이들을 쉽게 찾아낸다. 삶에 찌든 나의 눈은, 그 본질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흐려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어린 왕자의 눈으로 나를 보기로 했다.

아직도 잠들기 전 배달앱을 스크롤하는 습관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야식을 당장 주문하지 않고 내일 아침을 기다릴 수 있는 건 내 속의 어린 왕자가 아직은 제 기능을 하는 덕분일 테다.


그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기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