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월 아기의 봉합수술에 대한 소회(feat. 하이엔소아청소년과)
2025년 5월, 어느 날과 같은 평범한 저녁시간
사실 육아와 일로 조금 지쳐있던 날. 저녁식사 메뉴로 굽네치킨을 시킨 후(마지막 남은 양심으로) 샐러드를 준비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쿵! 으악-
아이가 어딘가에 부딪힌 뒤에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와 같이 놀던 아빠가 급히 상태를 확인했고,
아이의 눈가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며
나는 바로 약통을 열어재꼈는데ㅡ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그런지
약통에 쓰여있는 글씨가 하나도 안 보여 당황스러움이
+3 추가되었고 횡설수설하며 이 약 저 약을 손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손수건으로 대충 지혈을 한 뒤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출발했다.
이 대학병원은 (과를 불문하고) 직원들의 불친절한 태도 때문에 웬만해서는 잘 가지 않던 곳인데 아이가 아프다 보니 그런 거 따질 겨를도 없던 것 같다.
단순히 찢어진 거라면
간단한 봉합으로 처치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기에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어서 다행이다, 감사하다-라고 생각했고 서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
응급실 도착
응급실에는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기에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는 대기실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들어간 지 5분도 안돼서
아이를 안고 나오는 게 아닌가....?
"깊이 찢어져서 봉합을 하긴 해야 되는데,
여기선 해줄 수가 없대"
"왜?"
"너무 어려서 할 수가 없대.
여기선 소독 정도만 가능한가 봐"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더 묻고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눈가의 상처가 크게 벌어져있는 상황이라
말을 길게 할 여유가 없었다.
119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였고
봉합수술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의
리스트를 받았다.
- 자차로 이동이 가능한 경우
사고 즉시, 119 통합콜센터를 통해 소아 봉합이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물어본다.
* 일반 성형외과, 상급병원 응급실 등 대부분의 병원이 (특히 저녁) 소아 봉합시술을 하지 않음
- 119 콜센터에서 사고발생 위치를 확인한 후, 문자로 병원 리스트 보내준다.
- 신고자가 직접 병원에 전화해서 봉합이 가능한지 확인한다.
나는 서울 동부권에 거주하고 있는데,
밤 9시경에 찾아갈 수 있는 5개 병원 리스트를 받았고
리스트에는 종합병원, 일반 성형외과, 소아과 골고루 있었지만
위치는 위례신도시 쪽으로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
다행히 밤 11시까지 진료를 본다기에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풀 악셀을 밟았다.
세명 다 저녁부터 쫄쫄 굶은 탓에
정신이 더욱 혼미한 상태였는데
애 피 철철 흘리는 정신없는 와중에
손 덜덜 떨면서 굽네 순살 챙겨 온 나...ㅎㅎ
(순살로 시킨 거 올해의 잘한 일 best 3에 넣어주고 싶다ㅋㅋㅋ)
아이도 어느새 울음이 많이 그치고
배도 고파하는 것 같기에,
차에서 순살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는 사이
우린 어느새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신도시에
뭔가 주변이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으슥한 곳에 자리한 큰 건물 하나ㅡ
순간적으로
“여.. 여긴 도대체 뭐지…?” 싶었다.
만약 오늘 밤에 봉합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상처가 벌어진 상태로 하룻밤을 더 보내야 했는데
- 이 병원이 없었으면 오늘 밤 진짜 우쨌을까
- 어떻게 그 많은 병원 중에 여기 한 곳만 봉합이 가능한지
- 우리나라 아동의료 진짜 심각허다..
이러저러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입구부터 절을 하며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병원에 도착을 했는데?
소아과 도착
<<< 진료를 기다리며. 25개월의 수난
새로 개원을 했기에 시설이 좋은 것도 있지만
환자가 몇십 명이 쳐들어와도(?) 너끈히 접수할 수 있는 6~7개의 데스크, 친절한 직원들, 그리고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이곳저곳에 신경 쓴듯한 병원의 구조 및 디테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거부를 당하고 와서 그런가
세상에 뭐 이런데가 있나 싶었다 ㅋㅋㅋㅋ
(그 당시엔 거의 구원서사까지 가버림ㅋㅋㅋ)
[아기고래방] 진료실에서 잠시 상태를 확인한 후에
처치실로 옮겨 봉합을 시작했다.
아빠와 간호사들이 아이를 앞에서, 옆에서,
위에서 붙잡고 아기는 얼굴에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목청이 터져라 우는 게 들리고… 으 너무 괴로워
나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밖에서 끅끅 거리면서 울기를 약 20여분ㅡ
*지금은 n년차 아들엄마로서 훗- 찢어진 것 정도야~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당시는 처음 겪는 일이라 정말 충격적이고 힘들었다..ㅎㅎ
이내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선생님이 처치실에서 나와 슉-하고 지나가셨다.
그리고 아이는 비타민 한 개와 빙구웃음을 지으며
아빠의 손을 잡고 나왔다.
처치 결과에 대해서는 남편이 전해 들었고
약을 처방받은 뒤 집에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봉합하는걸 직접 보는 아빠 마음도 쉽진 않았을 것 같아서 위로의 말과 함께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는데ㅡ
"생각보다 선생님이 너무 프로페셔널하셔서, 봉합과정을 지켜보는 게 더 안심이 됐고 오히려 밖에서 소리만 듣는 내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라고..
애가 울고불고 움직이며 난리 치는 와중에
눈가에 난 상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꿰매 주셨고
꿰맨 후에는 상당히 흡족해하시면서 "예쁘게 잘 꿰매졌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특. 히.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ㅋㅋㅋ 뭔가 포인트가 웃겨서 기억에 남음)
>>> 봉합 후 2개월 후 (아주 잘 아물고 있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알 것이다.
아이가 다쳤을 때 자책과 당혹스러움 사이에서
찾아오는 혼돈의 카오스 상태.
믿었던 상급 병원에서 거절당하고
절처봉생(絶處逢生)의 심정으로 만나게 된
솔직히 병원 근처까지 왔을 때는
주변이 너무 시커멓고 아무것도 없는데
달랑 병원 하나만 있어서
약간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있었는데
- 입장하자마자 너무나도 밝은 병원 분위기
- 아늑한 시설과 환자를 배려한 듯한 디테일들.
- 이걸 밤 10시에 누릴 수 있다…?
오늘 저녁 내내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던 우리 두 사람에게는
이 병원을 방문하게 된 것이 참 감사하고
충분한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 기억이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글로 한번 정리를 해두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사람은 아플 때 정서적으로 취약해지곤 한다.
이런저런 사정들로 병원을 다녀보니
몸이 아파서 갔는데 시스템의 불친절함에 마음이
상처를 입는 경우가 꽤 허다하다.
나는 때때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낀다.
아픈 몸을 고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채로 낯선 곳에 와서
누군가에게 내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환자는 병원 측으로부터
어떤 정보와 정서를 제공받느냐에 따라
단순히 환자의 모든 말을 다 공감하고
무한한 친절을 베풀며 사근히 대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결이 아주 많이 다르다.)
결국 그게 병원 정책이 되었든,
의료진의 친절이 되었든
환자 입장에서 생각한 흔적들이
의료경험의 질을 엄청나게 높여준다는 것이다.
- 이 병원은 365일 빠짐없이 운영한다. 밤 11시까지.
- 병원 서비스의 안정성을 느끼게 해주는 넓고 탁 트인 데스크
-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진료방 이름(아기고래방, 토끼방 등)
- 진료를 기다리며 아이랑 뛰놀 수 있는 넓은 테라스
- 부족함이 없는 주차공간과 1층 약국의 친절함까지
나는 의료진과 직원들이 립서비스와 웃음이 아닌
그리고 이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관계자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매력으로
나는 집 앞 5분 거리의 소아과를 마다하고
30분이나 걸려 그곳을 가게 되나 보다ㅎㅎ
소아과 가는 일은 원래 스트레스
사실, 이 병원을 알기 전까지는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게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아이 등. 하원시간에 동네 소아과를 가려면
기본 1시간 대기에 주차도 보통 쉽지가 않고
늘 일과 집안일로 쫓기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를 시간을 내야 하니
병원 가는 일 자체가 썩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소아과 한번 다녀오면 내가 아픔..)
저녁 8~9시는 남편이 퇴근하고
병원을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이기에
나 혼자 힘들게 아이를 케어하지 않아도 된다.
차로 30분 거리이지만,
이상하게 병원을 가는 날이면 기분이 좋다.
모두가 퇴근한 저녁시간 청담대교를 건너서
고속도로를 통해 쭉 달려가면 마치 짧은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직은 아이가 크게 아픈 적은 없지만,
설사 많이 아프더라도 일단 이곳으로 오게 되면
입원치료도 가능하고
동네 병원 이상의 케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가 아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다.
(뭔가믿을맨 생긴 기분)
엄마 아빠가 병원을 갈 때 즐거워하니
아이도 병원을 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아프지만 즐거워, 아프지만 갈만해-"
몸이 불편해서 환경에 제약이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을 인지시켜주고 싶은
우리의 바람과 소망이 이곳 병원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결론.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계속 다녀야 하는 소아과,
마음이 뭉클하고 위로받았던
단 한 번의 의료경험이
우리 가족이 앞으로 병원 갈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꽤나 의미 있는 사건이 되었다고 본다.
브런치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사실 병원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얼마 전에도 아이가 콧물이 나길래
아주 즐겁게(?) 병원에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즐거운 기억들이 겹겹이 쌓이곤 한다.
어느 날엔,
병원 근처에 우연히 가본 들기름 막국수가
맛있어서 좋았고ㅡ
어느 날엔,
무더웠던 더위가 꺾이고 선선해지는 날씨를 느끼며
병원으로 드라이브하는 길이 좋았으며
어느 날엔,
아이가 주사를 씩씩하게 맞고 나오는 걸 보며
괜히 다 큰 것 같아서 코가 시큰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오른쪽 눈 윗부분, 흉터가 많이 희미해졌다.)
(쉿!) 나만 알고 싶은 병원이지만..
공익을 위해 공유합니다ㅎㅎ
병원정보
서울 송파구 거여동 639 /
365일 진료, 야간진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