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ngtake Sep 06. 2023

인생은 숙제가 아니라는 그 뻔한 말

곽미성 작가 :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도서관 서가 앞에 선다. 그 앞에서 내가 고르는 책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보조식품 같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다정함’에 관한 책을, 작정하고 떠나고 싶을 때는 ‘여행’에 관한 책을, 노동자로서 내 정체성이 고민될 때는 ‘노동 르포’에 관한 책을 통해 좋은 기운을 넣는다.     

 

요즘의 나는 영어라는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깊은데, 그러면서도 제일 읽기 싫고, 꺼려지는 책이 ‘외국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잘하게 되면서’ 쓴 이야기다. 외국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외국어를 잘하고 싶지만 1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 그 이율배반의 마음을 안고 고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리 있나? 외국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국 도달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이라는, 나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종착지에 다다른 그 사람이 부러워서, 나는 그 글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 책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다 ‘대체 영어도 하면서 다른 언어까지 배우는 이 작가는 뭐냐’라는 마음으로 결국은 책을 들었다. 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인데, 20살에 프랑스로 가서 공부했고, 프랑스 남자와 연애하고 결혼했고, 이탈리아를 좋아해서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일을 하던 중 1주일간 이탈리아로 어학연수에 갔고, 이어서 1주일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그 마지막 날 공항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탈리아어를 알아듣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영어를 잘하고, 프랑스어를 잘하는 사람도, 바로 이탈리아어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구나...’

‘영어를 잘하고, 프랑스어를 잘하는 사람도, 이탈리아어 앞에서 조급한 마음이 생기는구나...’

누가 보면 코로 웃을 얘기지만 나에겐 너무나 큰 발견이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배움에 대한 자세를 생각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서 프랑스로 간 사람,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탈리아로 간 사람. 온전히 경험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도 많은 사람이 어학연수를 떠나고, 살고 싶은 나라로 떠난다. 배움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쓴다. 세계시민임은 고사하고, 지역공동체의 시민임도 자각하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은 나에게 앞으로 내가 원한다면 경험할 ‘세계’가 무궁하게 있다는 것을 가까이 느꼈고, 설렌다.     


작가님, 이런 책을 써주어 고맙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숙제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옆에 똑똑한 사람이 젊은 시절 용기 있게 다녀온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세계 일주 이런 걸 저는 소망조차 해보지 않았거든요. 저는 요즘 그 ‘소망’조차 하지 않은 저에 대해 실망스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남들 멋있게 외국 다닐 때 너는 술만 마셨냐!!!). 그냥 그때 나는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죠(억지로 이렇게라도 생각하려고해요...).


언어는 유창함을 뽐내는 도구가 아니라(그럼에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여기서 너와 말하고 느낌을 나누게 하는 도구임을 조금은(실은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제게도 제가 바라는 그 언젠가가 오겠지요. 그 언젠가의 시기를 정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인생도, 언어도 숙제가 아니니까요. 그 중간중간마다 작가님의 책을 다시 펼쳐보겠습니다. 그리고 떠올려야죠 ‘언어천재 곽미성 작가도 힘들었단다...’하고요 ^^

작가의 이전글 완전 멋진 '여자' 형사 반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