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코퍼필드」 책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세상살이에 관해 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세 가지를 당부하는데 당부라는 것이 누구나 다 아는 훈계쯤 되는 것이다.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별 새롭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에 남는 한 문장, ‘치사한 사람이 되지 말아라.’이다.
나는 ‘치사’라고 하는 단어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치사’ 너무나 오랜만에 보게 된 단어였다. 그래! 이거였다! 내 처지와 상황과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책에서 발견하는 행운과 기쁨은 감사함으로 이어진다. 뭔가 대단히 부당한 일을 겪은 것에 대한 화와 짜증으로 얼룩지던 내 마음에서, 너도 그들과 다를 것 없다고, 도긴개긴이라고, 치사하게 구는 나와 그런 내가 못마땅한 나로 인해 대단한 사건을 경험한 것처럼 흘러가던 내 감정이 우습게 되었다. 우습게 되니 좀 민망하게 부끄러웠다. 역시 나는 치사했던 것이다.
치사라고 정리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부서 행사가 일요일에 있었다. 나의 역할은 전혀 없는 일이었지만 부서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로 토요일은 얼굴 비추기 액션, 일요일은 본식으로 출근하기로 했고, 이틀 대휴가 주어진다. 나는 주말에 아이들을 보러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이번 주는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쉬웠지만 그만큼의 대휴가 이틀 있으니 다른 날 좀 더 길게 만나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정리된 상황에서 금요일 오후, 갑자기 나에게 일이 없으니, 토요일은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토요일에 나오나 나오지 않으나 나는 아이들을 보러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요일 아침 첫 차를 타더라도 행사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주었다면 그전에 하루 휴가를 써서라도 아이들을 만나고 오거나 방법을 찾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속상함은 하루 전 갑자기 일정을 통보한 관리자에 대한 화가 되었다. 콧구멍만 한 부서라 이랬다 저랬다 바뀔 수 있고, 누구 하나 일부러 나를 엿 먹이려고 일정을 일부러 바꾸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각자 사정이고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반나절 정도 나는 온갖 손해를 입은 사람처럼 치사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주말에 아이들을 보지 못하면 열흘을 보지 못한다. 그 열흘을 생각하니 슬펐다.
치사한 마음 다잡고 집 근처 스벅에서 꼬질하게 일하는 나에게 언니들과 엄마가 찾아와 주었다. 언니는 맛있는 솥 밥에 코다리찜, 내가 좋아하지만, 평소에 못 먹는 스벅 커피와 빵, 그리고 저녁에는 밤마다 먹고 싶었던 다코야끼를 사주었다. 아이들 생각에 넘어갈 것 같지 않았던 호사스러운 음식들은 맛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맛있었다. 나의 허기를 채워주었고 어느새 치사한 마음 오간 데 없이 푸짐하고 배부른 하루가 되었다.
별일 아닌 일이 별일 되는 내 치사한 마음이라니, 그래도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아 다행이라 위로하며 꽉 찬 하루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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