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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May 31. 2024

시작하면, 시작할 수 있다.

나에게 영국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유일한 나라였다. 너무 멀리 있어 내 발은 닿을 수 없이 느껴지던 그곳을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고, 마음먹은 이후 비싼 항공료와 경비는 더 이상 고민되지 않았다. 영국 여행을 위해 적금을 깨고, 대출을 해서라도 나는 ‘지금’ 가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걸 보면 사실 나는 그동안 지금만큼의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에서 영국으로 가는 내 자리가 생긴 이후 나는 이미 영국에 발이 닿은 듯했다.      


나의 발이 영국에 닿았으므로 이제 이후의 준비가 필요했다. 영국에 발이 닿았는데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서 잘 것인지, 어떻게 옮겨 다닐 것인지 등의 준비가 필요했지만 티켓팅 이후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해 처음의 설렘 이후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쉽게 할 수 있다며 올려준 블로그 내용을 봐도 나는 쉽지만은 않았다. 환전하는 카드의 혜택을 모아놓은 것을 보아도 이해 불가였다. 그래서 뭘 만들라는 것인지? 뭔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니 확신이 서지 않고 점점 처리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이 기분이 적잖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가 그토록 바라던 영국을 가는데 마음은 다가오는 마감일에도 써지지 않는 조사보고서를 들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알았다. 지금의 이 기분은 내가 꼭 처리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일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영국의 풍경을 그려보리라 다짐했다. 그날 새벽 2시까지 내가 들고 있었던 일은 런던에서 벨기에로,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 유로스타 예매였다.       


나는 유로스타 공홈과 오미오라는 곳 중에서 어디서 표를 끊을 것인지 정했고, 예정된 일정이 없는 날 중 제일 싼 날을 정했다. 파운드와 유로 중 어느 것으로 결재할지 정했고, 내가 가진 카드 3개 중 어느 것으로 결재할지도 정했다. 한글과 영어를 오가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고, 마지막엔 유로와 파운드 단위 표시를 헷갈려 결재만 열 번은 했다. 그렇게 눈을 비벼가며 유로스타에서 최초로 외화 결재를 했다. 나는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기뻤다. 내가 원하는 ‘영어로 적힌 공홈에서’ 유로스타 티켓을 얻었다.      


표를 끊은 이후 생각했다. 이게 뭐라고, 이걸 하는 데 나는 3시간이 걸린 것인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그랬다. 그 밤 나는 다시 영국의 설렘에 빠졌다. 나는 다시 영국 가는 비행기를 탔고, 거기서 벨기에로 가는 기차를 탔다. 다만, 그렇게 어렵게 싸게 최적의 조건을 걸어 예매한 나의 유로스타 티켓은 탑승 당일 여권을 가지고 가지 않아 40만 원 가까이를 더 내고 내가 예정하지 않은 시간에 타게 되었다.      


벨기에로 가는 유로스타 안에서 나는 그 밤이 생각났다. 내가 그 새벽 나름 싼값으로, 값지게 얻어낸 그 티켓이 생각났다. 지금 비록 제값보다 비싼 돈을 내고 앉아있지만, 그 밤의 기쁨과 희열이 생각났다. 내가 무척이나 뿌듯했던 그 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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