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인생연습 ㅣ 김은지
저는 스토리 중독자예요. 어렸을 때는 만화랑 소설에(주로 만화에) 빠져서 살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영화에 빠져 살고 있어요. 스스로 이야기에 중독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음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작가 프로필 ㅣ 김은지
그냥 평범한 대학원생이에요. 회사에 다니다가 학교로 돌아간 거라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만학도예요. 처음엔 회사생활이 싫어서 도망치다시피 학교에 들어왔는데 다니다 보니 어느새 좋아져서 계속 학계에 남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국제정치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꼰대 같은 면이 있어요. 위트 있고 매력 넘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좀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 영화 얘기를 몇 가지 해보고자 합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 맞다.
짧게는 50분에서 길게는 250분 이상 되는 하나의 장편 영화를 만드는 데에 투입되는 인력은 최소 30여 명. 대부분의 상업영화에서는 1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를 접목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끝을 모르고 올라오는 엔딩 크래디딜 봐야 하는 이유이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개입하는 사람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경우가 허다한데, 어떤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인물은 소수에 그칠 때가 많다. 대부분은 영화감독이나 배우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 바로 나다.’ 라고 외치는 사립학교의 이사장들 만큼이나 어리석게 보이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처음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트래시(Trash, 2014)』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브라질에서 쓰레기를 주워 근근이 생활하는 소년들이 겪게 되는 모험담에 대한 영화이다. 당시 나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보고 나서 누군가의 ‘브라질 사람이 만들었나?’ 라는 질문에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만들었으니 미국 영화일 거야.’ 라고 자신 있게 헛발질을 하고 나서 영화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빌리 엘리엇』, 『디 아워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등을 연출한 나름 거장으로 으레 할리우드에서 활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국이라고 대답해 주었던 것이다. 찜찜한 마음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트래시』는 영국 영화로 표시되었고, 달드리 감독도 영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디 아워스』나『더 리더』의 경우는 미국 영화로 표시되었다.
이때부터 영화의 국적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영국 감독이 만들면 영국 영화이고, 미국 감독이 만들면 미국 영화인가 했는데 위의 경우를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영화는 문화이자 산업이기 때문에 처음엔 영화의 국적을 결정하는 게 큰 문제인 것 같아 찾아 보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의 국적은 제작자나 제작사 그리고 국적별 투자비율(한국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찾기 쉬운 생활법령 정보: 영화관람의 개요 http://oneclick.law.go.kr/CSP/CnpClsMain.laf? csmSeq=628&ccfNo=1&cciNo=1&cnpClsNo=1). 스크린 쿼터나 세금 등 법적 문제가 얽힌 부분에서 위와 같은 기준을 사용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 소개 사이트에서는 제작사, 감독, 주연 배우들의 국적을 표시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IMDB 기준). 결국 일반 관객에게 영화의 국적이란 사실 큰 문제도 아닐뿐더러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영화의 주인에 대한 문제도 비슷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냈으니 누구의 영화라고 말하기 어렵고 결국 관객이 받아들이기 나름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을 보다 보니 소유권의 개념은 아닐지라도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누군가가 생겨나게 됐고, 그들이 영화의 주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나름의 기준으로 영화의 주인을 구분해 보았다.
▶감독이 주인인 영화
감독을 주인으로 볼 수 있는 영화들은 주로 명작에 가까운 작품들로, 대가라 불리는 감독의 정수가 녹아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나의 프랜차이즈를 이루어 브랜드를 창출해낸 감독은 당연히 시리즈의 주인으로 볼 수 있으며, 꼭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주인인 영화
영화를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시 세분화하기가 어려워 모두 작가로 통칭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뛰어난 원작으로 좋은 영화가 나오게 한 원작의 작가들도 있고,소설을 바탕으로 했으나 이를 극화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 극작가도 있다. 작가를 주인으로 볼 수 있는 영화들은 독특한 이야기로 사람들은 매료시킨 경우이다.
▶배우가 주인인 영화
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영화를 본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시나리오에 주어진 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연기자가 호평을 받았다면, 요즘에는 단출한 시나리오를 배우가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 높이 평가받는다. 연출이나 스토리 면에서 평범했음에도 배우의 연기가 오래 지속되는 영화가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이 주인인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중박은 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 경우 흥행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실존 인물이 너무 강렬하거나 실제 사건의 인상이 강한 영화는 영화에서 오히려 실존이 남는 경우가 있다.
▶제작자가 주인인 영화
제작자는 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한 투자자와 영화를 실제로 만드는 인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상업영화에서는 투자자의 의견을 강하게 반영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결국 영화의 상품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인데, 몇몇 영화들에서는 상품성을 희생시켜서라도 영화의 작품성을 강화하고자 한 시도들이 있다. 이럴 경우 제작자의 어느 정도 희생이 있다고 보고 제작자가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위의 영화들은 모두 내 맘에 드는 작품들인데 본인 취향의 카테고리에 안 본 영화가 있다면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고 내 맘대로 나눈 기준이니 본인 생각과 다르다고 핀잔을 주진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