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현상곡 ㅣ 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 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요즘 여유가 생겨 책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중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즘은 비판적 사유를 통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불평등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언급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지만, 문제점에 대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껍데기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허세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덕분에 사람들의 눈이 바둑으로 쏠렸다. 대국이 끝나면 이세돌은 자리에 남아 복기를 했다. 복기란 수를 처음부터 다시 두며 비평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바둑은 일자무식이지만 생각의 복기를 통해 이제껏 당연시했던 불평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유교사상 아래 이어온 한국의 가부장제는 여성에 몇 가지 역할을 만들고 지침을 제시했다. 1. 집안일은 여자가 2. 바깥일은 남자가 3. 여성은 남편에게 순종 4.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본질. 큰 개념부터 보겠다. 선구자가 나와 기존 가치를 부수고 새로운 가치의 깃발을 꽂는다. 거센 반발은 점차 수그러들고 새로운 지평이 탄생한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겠지만, 평등을 외치는 21세기의 시민으로서 올바른 가치관이라면 존재한다. 전통적 사고는 우리의 무의식에서 성차별과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위 언급한 모든 사항에 관해 동등한 분담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경제활동을, 다른 하나가 집안일을 하는 경우 탄력적, 민주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심화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며, 내가 돈 벌어 왔으니 요리나 청소는 네가 좀 하라는 식의 언사는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 수입의 비율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내가 더 많이 벌었으니 네가 하는 게 맞다는 식의 논리는 잘못됐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히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노동의 가치가 돈이라는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급여의 많고 적음을 떠나 경제 활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시점에서 보는 것이 더 건강한 자세이다.
바깥일이란 단어는 거슬린다. 이 또한 남자 여자 역할 구분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에 있는 사람(여자)이 할 일과 바깥에 있는 사람(남자)을 구분 짓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 활동이라는 단어가 좀 더 적합하다. 이런 사소한 단어 하나로 얼마큼 일상 전반에 불평등함이 퍼져있는지 알 수 있다. 여성이 출산을 앞두면 회사를 피치 못하게 쉬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행히 출산 휴가가 제도화되어, 출산 후에도 경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제도에 대한 담론은 무수히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출산 후에 육아의 필요성을 느꼈을 경우이다. 부부 상호가 한쪽에 남아 육아에 전념할 필요를 느꼈을 때, 우리는 대부분 여성이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 생각한다. 육아 = 여성의 일이란 개념이 자리 잡기 때문이다. 동일한 조건의 직장이라 가정했을 때 역시 여성의 희생을 강요한다. 세심한 여자가 더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이 정서 발전에 좋다는 이유를 드는데, 이 또한 고쳐야 할 통념이다. 육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바른 가치관을 교육하는 것이다. 더불어 요리나 가사, 남자이기 때문에 못 하는 일이 아니다. 선택은 두 사람의 이해와 대화를 통해 나와야 하며, 편향된 판단 기준은 배제해야 한다.
순종이란 말은 약자와 강자 사이에 존재하는 말이다. 우린 알게 모르게 남성을 강자의 위치에, 여성을 약자의 위치에 배치했다. 대개 남성이 물리적으로 더 강한 힘을 갖고, 체격이 크다. 그렇다고 순종이란 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육체의 힘의 강함 여부로 강자 약자를 정한다면, 우리는 폭력이란 수단을 은연중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순종이란 말은 폭력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나올 말이다. 물리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상황에서도 쓰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 부부 사이에 순종이란 말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순종은 미덕이라는 식의 그릇된 사고방식은 아직 건재하다. 이는 육체의 힘이 부모보다 강해졌을 때도 쓰인다. 이 경우에는 상대보다 인생 경험, 혹은 배움이 많으므로 순종을 요구할 수 있다는 태도인데, 이 또한 닫힌 사고로 폭력적이다. 지식이나 경험 면에서는 위에 있으므로 순종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또한 상대를 약자로 규정하며, 약자에겐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사고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없는 어떤 것을 담보로 불평등을 강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경제력이 포함되어 있다. 정리하면 강자 약자를 규정짓는 단어를 지양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서도 폭력은 정당화해선 안 된다. 그래야만 평등함의 토대가 완성된다.
여성의 본질은 출산, 즉 종족 번식이다.라는 사고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의 존엄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이며, 인간을 부품, 도구로 보는 이 시대의 병폐이기도 하다. 여성의 역할을 규정짓는 것은 이 때문에 문제가 있다. 출산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를 숭고한 행위로 비추며 아름다움의 정수라고 말하는 여러 미디어는 유교적, 가부장적인 여성상을 지속해서 상기시킨다. 남성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하나의 장치로 볼 수 있다. 출산에 숭고라는 프레임을 씌워, 여성이 다수의 남성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갖는 것에 있어 거부감을 심어주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미혼이고 싱글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 숭고한 행위를 더럽힌다 인식한다. 그렇기에 이중잣대를 들이민다. 많은 여자관계를 가진 남자는 인기인, 여자는 걸레. 여성은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남성과 관계를 맺을 선택권이 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우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알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견이 갈리고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을 다뤄볼까 한다. 여성은 낙태할 권리가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이는 논외의 사항이라 말하는 이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 경우에 판단의 기준으로 잡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권리이다. 만약 낙태를 못 하게 강제한다면 이는 여성의 본질을 규정짓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존재하는 이유가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므로 이 부분에선 당신은 선택권이 없다고 한다면 이 또한 존엄을 해치는 상황이다. 물론 낙태에 부정적인 인상을 받고 있고, 안 했으면 한다. 하지만 선택권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 바르다고 본다. 그 고통을 평생 끌어안고 갈 사람은 그녀들 자신인 이유에서이다.
페미니스트 유니폼 뒤에 시꺼멓게 때가 껴 있다. 사회권 기득권층이 되기 위해, 직장에서 고액 연봉을 얻기 위해, 지식인 옷을 뒤집어쓰기 위해, 경쟁에서 이득을 보기 위해 등 본질을 놓치고 수단으로써의 페미니즘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페미니즘은 헌신짝처럼 버렸다. 꼴페미란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반남성주의자들이 페미니즘을 들먹이며 또 다른 사회 불평등과 체제를 만들려고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행동은 페미니스트를 욕보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성한다.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선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서로 간의 이해는 필수 전제이다. 초보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촉구하라 소리를 낸다. 자신의 고해성사이자 작은 한걸음이다. 페미니즘의 이번 대국이 불계패가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