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연애란 무엇인가?

인생진화론 ㅣ Vincent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3-07 오후 5.19.35.png 작가


글을 쓴다. 하나의 글귀는 주제가 되어 설명과 예시를 부른다. 예시는 인물과 배경을 등장시켜 사연을 만들고 사연은 플롯의 옷을 입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부르고 재미와 감동으로 현혹한다. 거짓말에 진실을 담아, 진실을 그럴듯한 거짓말로 위장시켜 현실의 감옥에 갇힌 이들을 상상 속의 우주로 탈출시킨다.


작가 프로필 ㅣ Vincent


아이들은 황홀한 피리 소리만 따라갈 뿐 남자의 정체 따윈 관심 없었다.내가 누구인지는 글이 결정할 것이다. 안타깝고 슬픈 로맨스든, 우주의 장대한 모험담이든, 인생에 대한 미천한 깨달음이든 인정욕구에 중독된 자아를 외면하고 순정의 진실만 담아 당신에게 글을 쓴다.

내 이름은 Vincent.
한 줄을 써도 부끄럽지 않은 글로
당신과 마주할 수 있기를...





어느 날 청소년 중 하나가 이성에 눈을 뜬다. 친구들과 다른 그들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이전에 신경 쓴 적 없었던 차이에 관심을 갖는다.
몸의 선과 움직임, 목소리, 표정, 걷거나 뛸 때, 집중하거나 멍하니 있는 그 모습, 그, 또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사이에서 나와 다른 그만의 특징이 삐져나올 때마다 본능적인 호기심이 일어나 자꾸 바라본다. 결국 참지 못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용기를 내 말을 거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이벤트, 연애가 시작된다.

작은 쪽지나 이슬이 맺힌 캔 음료, 수줍은 표정과 휴대폰 번호로 시작된 연애는 스스로 성장한다. 미래에 대한 압박과 불안 속에서도 둘만의 공간을 용케 찾아내 꾸민 무대 주위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호기심과 걱정, 질투와 응원으로 가득 찬 객석을 마주한 연인은 매일매일 극적인 사건들을 공연한다.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 그, 또는 그녀는 블랙홀처럼 서로를 향해 맹렬히 흡수된다.

온갖 화려한 언어와 수줍고 대담한 몸짓으로 영원할 것처럼 타오르던 그들의 연애는, 그러나 생각지 못한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모든 연애는 결국 여자의 임신과 새로운 가정을 향한다. 아직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두 사람은 자신이 개구리 왕자도 잠자는 공주도 아님을 깨닫는다.
어느 아침 바쁘게 출근하는 어른들 속에서 소년, 또는 소녀가 다른 이에게 전화를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진다.

혼자가 된 개인은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 대학이든 갈 수 있지만 좋은 대학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연애도 다를 바 없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연애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연애는 꿈을 가장한 현실이다. 시간이 흐르고 미숙했던 유년을 잊은 그, 또는 그녀는 어른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새는 하늘에서, 물고기는 물에서, 땅벌레는 땅에서만 짝을 만난다. 인간도 결국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자신의 대상을 물색한다. 연애는 자신과 타인의 기대에 대한 능력과 책임을 갖춘 이들에게 딱 그만큼의 쾌감을 허락한다. 연애는 어느새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암컷, 또는 수컷을 찾는 짝짓기가 된다.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적인 연애는 상투적으로 변한다.
천만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고 블로그가 추천하는 맛 집을 순례하고 누구나 메는 가방을 선물 받고 누구나 가는 그곳에 가는 것으로 백화점의 진열대처럼 연애는 적당히 구색을 맞춘다.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언어와 접촉을 허락한다. 동화되기보다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계를 거듭한다.
연애가 각자에게 유리한 결혼을 위한 탐색전이 되는 것을 보며 스스로 한심해질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연애를 겨우 이 정도로밖에 못 만들어 주는 그에게 책임을 돌린다.

첫 번째 그들을 좌절시켰던 것이 벽이라면 이번에는 갈림길이다. 결혼 또는 이별, 오직 둘 중 하나만 허락하는 선택지 앞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결혼이 최상일 것이다. 결혼이 모든 연애의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은 자유연애가 보편화된 이후로 당연해졌다. 모두 그렇게 여겼고 두 사람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만 남은 지금 생각과 환경이 달라진다.
그렇잖아도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단단하지 못 했던 두 사람 위로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가족들이 기어 올라온다. 모두 새 식구라는 미명 아래 대접받기만 원하고 온갖 낯설고 피곤한 절차들을 강요한다. 결혼의 환상은 알코올처럼 날아가고 거친 목소리와 어두운 표정만 남는다.
주위에선 원래 그렇다고, 애만 낳으면 달라질 거라고 하지만 파릇하고 설레기만 했던 청춘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 역시 양육과 밥벌이의 책임 앞에서 별 대단할 게 없이 느껴진다.

둘 중 한 명이 이별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지금까지 하지도 않았던 ‘이게 전부인가’ 따위의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또다시 현실적으로 변한다.
이미 먹어버린 나이와 육체의 상태, 각자의 경제력과 사회적 신분, 가족들의 의견까지 다양하게 고려한다. 고민은 상대와 자신에 대한 계산이 된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자산과 상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예상 수익을 비교하다가 어느 순간 결혼이든 이별이든 큰 차이가 없어지는 걸 깨닫는다. 현실적인 연애는 그렇게 조종을 울린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본다. 누구든 곁에 있으면, 곁에 있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뜬금없이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전혀 생각지 못 했던, 자신과 닮은 점도 없고 평소 생각한 조건에도 맞지 않은 그 사람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멍하니 쳐다보다 황급히 눈을 피한다.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다 자꾸 늦잠을 잔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잠을 자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그 어떤 것도 방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좋으면 그만이다. 함께 있으면 그것이 전부라 해도 좋다. 누구도 이해 못 할 고민에 전전긍긍하다 어느 날 용기를 내 말을 걸어본다. 진정한 연애가 시작된다.

그 사람과 나를 반씩 닮은 애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지 모르고 집 앞에서 헤어질 땐 그게 그렇게 아쉬워서 부르고 또 붙잡는다. 문자를 하면 목소리가 듣고 싶고 목소리를 들으면 얼굴이 보고 싶어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간 남자가 새벽에 다시 집 앞에서 부은 얼굴로 꾸부정히 기다린다. 그 모습에 여자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이미 설레어 버린 가슴을 이기지 못해 그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쉬는 날이 여행이고 출근길이 이별이 되는, 하루에도 희로애락이 열두 번씩 뒤바뀌는 감정의 파고 속에서도 마약에 취한 것처럼 지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순간을 기념하는 온갖 아이콘들이 쌓인다. 메시지와 카톡이, 쪽지와 편지가, 일기가, 음악과 영화가, 책과 이야기, 숨소리와 몸짓, 체온과 땀방울이 쌓이고 또 쌓인다.

나의 삶은 이 사람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뉜다. 나보다 이 사람이 먼저 죽을까 봐 슬프면서 이 사람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걸 들키면 어쩌나 조마조마해하는...
왜 이제야 만났는지 속상하고, 그나마 이렇게 용케 찾아내서 다행이고, 그럼에도 언젠가 떠날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억울해 잠도 못 이룬다.
이별을 미룰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남이 영원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것이다. 그때야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누구도 축복해 주지 않아도, 가족이 나를 외면해도, 세상이 우리를 버려도 우리는 함께 할 것이다. 그 방법이 결혼이든 무엇이든 상관 없어지는 그 순간 이렇게 변한 자신에 놀라서 피식 웃는다.

연애는 결혼의 준비과정도 번식의 전단계도 아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를 수 있는 지점에 연애가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사회적 차이를 넘어 전혀 생각지 못한 그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인간에 대한 존중에 연애의 위대함이 있다. 연애의 불측성은 사회 곳곳에서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희망과 역동성을 불어 넣는다.
누군가에게 누군가가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강력하다. 고정관념과 선입견, 차별과 편견을 무너뜨리며 별 볼 일 없던 존재가 비범한 삶으로 변해간다.
연애는 연인들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가치에 눈을 뜨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약자에 대한 자비와 예술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복지와 인권을 위해 행동하도록 한다. 삶은 점점 지평을 넓혀간다. 함께 쌓이는 시간이 늘수록, 열정은 존경으로,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모두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진화한다.

연애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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