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30대에 취미를 시작하다.
- 여행편 2. 걷기 시작

좋아서 하는 글과 그림 ㅣ 이승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0 오후 5.32.06.png 종무원
독립출판도 3권 출판 했고, 지인들과 그림 전시회도 했습니다. 요즘엔 꾸준히 1주일에 한장씩 드로잉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모두 취미로...


작가 프로필 ㅣ 이승철

넓고 얕은, 호기심 많은 유부남

모토는 "일단하자!"





첫 번째 여행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이듬해 두 번째 여행을 또 다시 제주도로 정했다.


이번 여행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혼자 준비하였다. 지난해와는 다른 것은 제주도에서 동선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목적지만 정해놓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지도만 보고 목적지를 정해 다녔다. 미리 짜여진 동선에 따라 다니는 것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의도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밖에 보물을 찾는 느낌은 정말 좋았다.


지난 여행에 비해 나에게 충실한 여행이 되었고 더 풍부해진 여행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도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카메라였다. DSLR에 막 입문하여 한창 사진을 찍을 때라서 여행에 카메라와 렌즈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어딜 가더라도 꼭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며, 나의 눈은 늘 카메라 파인더에 붙어있었다.멋진 풍경이 나오면 바로바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그때 사진을 보면 그다지 잘 찍은 사진이 아닌데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모르다.) 그러다 보니 멋진 풍경도 넓은 바다도 나의 시선과 감정이 아닌 좁은 파인더로 보고 판단하며 다녔다. 차츰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사진을 위한 여행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다 일생일대의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창밖으로 멋진 풍경이 보여 사진을 찍으려고 차를 세웠는데, 어째선지 차가 바로 서지를 않아서 펜스 쪽으로 밀려가다 추락 방지언덕에 걸려 멈췄다. 다행히 차 범퍼만 망가지는 사고였지만, 놀란 마음에 운전대를 잡을 수 없어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걸어 다녔다. 차가 없으니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숙소에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한 핸드폰이 아니었기에 지도와 이정표만 보고 걸어 다녔다.


덕분에 작은 카메라 한대만 들고 제주도 어느 마을 골목을 걸어 다녔다. 전에는 큰 카메라의 파인더가 우선이었지만 작은 카메라만 들고 다닐 때는 나의 눈이 즐거운 게 우선이었다. 아무래도 좋은 사진을 찍자는 욕심보다 그냥 스케치 하듯 사진을 찍게 되면서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나에겐 큰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내가 얼마나 부주의한지 알게 되어 그 이후로 운전을 안 하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을 하면서 좀 불편해졌지만 그와는 반대로 터미널에 대해 알게 되었다. 터미널이 가지고 있는 풍경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각 지역별 다른 터미널의 분위기를 알게 되었고, 터미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시장과 길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터미널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며 나의 여행은 좀 더 풍요로워졌다. 또 하나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작은 골목길이 더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느리게 걸으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고로 인하여 죽을 뻔했지만 두 번째 여행의 경험은 나의 여행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었고, 나중에 시작할 여행모임의 큰 모티브가 되었다.


Na1463405090664.jpg?type=w740 그림: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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