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공통주제 <호흡> ㅣ 루크 훈
작가 프로필 ㅣ 루크 훈
개인적으로 칸트를 좋아하는데(사실 칸트의 철학은 잘 모릅니다)
1. 경험과 이성을 종합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이 절대 명제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고
2. 매우 규칙적이고 철저한 스케쥴링의 방법론이 마음에 들고(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3. 늙을수록 학문적 성취가 더 높아지는 유일한 예라고 마음에 듭니다.
호흡에 관련된 시 소개합니다.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