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공통주제 <호흡> ㅣ 곽정빈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핸드폰의 스톱워치를 키고 숨을 쉰다.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숨을 들이쉬었다가 뱉는다. 그 횟수를 센다.
10초에 3번.
60초에 18번.
3,600초에 1,048번.
하루는 24시간이니까 약 25,000번.
대략 내가 하루에 들이 마시고 뱉어내는 숨의 횟수일 것이다. 이 이만오천여 번의 숨 중에서 내가 의식하고 쉬는 숨은 과연 몇 번이나 될까?
나는 엔지니어다. 제조회사에서 전자제품을 개발하고 그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크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투정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세상에 몇 없는 유형의 가치를 생산해 내는 일이라 여기며 근근이 일을 해나가고 있다.
제조회사의 경쟁력은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싸다는 것은 경쟁사보다 제조원가가 낮아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제품은 무엇일까? 나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다지만 나름대로 경영원론이나 마케팅 등의 경영수업도 들었다. 작정을 하고 1년을 휴학하고 각종 마케팅 공모전에 도전해서 관련 입상경력도 있다. 한때는 진로를 마케팅으로 정해 실무자들과 주말마다 스터디도 했었고 관련 회사 인턴 경험도 있다. 그래서 좋은 제품을 규정하는 수많은 이론과 관점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대량생산을 논외로 한 채 가격도 싸면서 품질도 좋은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결단코 없다는 것은 더 잘 알고 있다.
대량생산. 끊임없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열을 지어 밀려오는 미완의 제품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 앞 인부들에 의한 노동은 불량품이 발생할 잠재인자를 가지고 있다. 민감한 전자부품들을 떨어뜨리고, 대칭 모양의 부품을 거꾸로 끼우는가 하면, 느닷없이 생리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고, 10년 차의 노동자와 1년 차 노동자의 작업 속도는 현저히 다르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이른바 공장자동화이다. 공장 자동화는 인부들의 노동을 자동화 기계로 대치한다.
공장 자동화를 하게 되면 불량률이 줄어들고 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다. 점차로 손실액이 줄어들 것이고 초기투자비의 분기점을 넘으면 비로소 경영실적으로 이어진다. 불량에 따른 실패비용이 줄어들며 쌓인 여유자금은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비로 재투자되거나 연구원을 독려하고 의욕을 고취하는 성과금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조치는 또다시 더 좋고 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장려할 것이다. 이른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2년 전. 내가 이전 직장에서 일할 때였다. 가끔씩 제조라인에 들릴 때마다 항상 '연구원님'이라 부르며 환하게 웃어 주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매번 이번 모델은 왜 이렇게 작업이 힘들어졌냐고 습관적으로 볼멘소리를 하셨다. 하지만 기껏해야 아들뻘 밖에 안 되는 어린 연구원이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 이내 젊은 총각 안마도 다 받아 본다면서 주위 아주머니들과 농을 주고받으시는 유쾌한 분이셨다. 왜 이렇게 자주 찾아오냐고 팔이 빠지겠다면서 투정을 부리시면서도 연구원의 불편한 부탁을 기어코 들어주시던 나의 이모님. 비도 오는데 언제 막걸리나 한잔 하러 가자고 얘기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반장님. XX 이모 어디 가셨어요?"
"안 나오신 지 좀 됐어요"
"네? 왜요?"
"연구원님. 아시다시피 우리도 인건비도 줄여야 하고 이미 자동화도 이렇게 많이 됐고..."
머리가 멍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했다. 나는 이 일이 있기 직전까지는 자동화를 하지 않을 그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었다. 매번 새로운 개발을 할 때마다 점점 많은 부속품이 자동화 생산이 가능해졌고 자연스레 나는 자동화 공정을 반영한 설계를 했다. 회사의 이윤을 창출했을 것이고 이것은 나의 성과가 되었다. 내가 반영한 자동화 공정을 통해 제품의 불량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공장 인부들의 일자리도 떨어져 나갔을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동일한 부품을 찍어내는 자동화 기계처럼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광고기획사에서 신규 수주를 따낸다면 다른 기획사는 손가락을 빨아야 할 것이다. 허기가 진 야밤에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시킨 치킨으로 인해 치킨집 사장의 판매마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들어간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제 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시간을 부추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이 땅 위의 불특정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로 인해 그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란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단순 경제활동이 아니더라도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내가 속한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이야기들 속에서, 또 그렇게 쌓여가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그렇게 내가 이곳에서 의식하지 않은 채 들이 마시고 내뱉는 수많은 숨. 그 숨에는 내 욕망과 세상을 향한 편견이 실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숨은 이 땅 위 누군가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라는 모습으로 들이 마셔질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이 도로 내뱉는 한숨. 그 숨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내가 지금 쉬고 있는 이 숨. 단지 이 땅 위에 숨 쉬고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무심히 뱉을 수 있는 숨일까.
3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1년간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일을 이것저것 하면서 내가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했다. 아주 그럴듯한 핑계였다. 주말도 불사하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야근과 하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는 성과와 그와 동시에 한없이 떨어져 버린 내 자존심을 덮기에는 말이다. 호기롭게 떠났지만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 옳다고 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모두가 옳다고 할 수 있는 일을 결코 나는 찾아낼 수 없었다. 1년이 지나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다른 제조회사에 들어왔고 전자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 회사는 목전의 생산량을 쳐내는데 급급한 작은 회사라서 당장은 자동화 공정을 할 여유도 여건도 안 된다는 소심한 자기 위안을 하면서 말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고 하면 이전보다는 숨쉬기가 다소 벅차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하며 쉬는 숨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그리고 몇 번은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또다시 의식하지 않은 숨으로 쌓인 하루하루가 지나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숨이 벅참을 느끼게 될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렇게 무거운 숨을 쉬어내면서 그 숨이 내 견고한 의지가 되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급급한 일상을 계속해서 살게 되겠지만 가끔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내 이웃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따뜻한 숨을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는 숨쉬기가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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