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결합

어유진 작가의 <탄생 신화>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01.jpg 북카페 <문학다방 봄봄>에서 열린 어유진 작가의 '탄생 신화' 개인전



서울 서대문구는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과 함께 신촌에서 도시재생 예술프로젝트 ‘신아트촌 (新art村)을 열었다. 신촌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이화여대길52와 이화여대2가길 서점과 카페, 미용실, 공실 점포를 활용해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중국과 국내 작가들이 한중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서로다른 시선으로 신촌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공간을 탐색했다.

도시와 예술이 융합하는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많았지만 영업하고있는 가게의 공간을예술가에게 내어준 사례는 극히 드물다. 주민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의지가 없다면불가능했을 이번 프로젝트는 제목 그대로 ‘새로운 예술 마을’을 탄생시킨 혁신이라 할수 있다.


개인적으로 주목 했던 전시는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대학원생인 어유진 작가의 ‘탄생 신화’ 였다.

전시장소인 북카페 ‘문학다방 봄봄’은 필자의 단골 카페이다. 이곳은 책을 중심으로 낭독회와 북콘서트가 열리며 살롱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갤러리 형태의 미술작품 전시를 한 적이 없었기에 봄봄은 매우 낯선 풍경이 되었다.

처음 전시 소식을 접한 경로는 지인이 메세지로 보낸 전시장 사진이었다. 원래 책이 가득 쌓여있어야 할 유리 테이블 속에 붉은 색의 물체가 진열되어 있었다. 난 그것이‘생 소고기’인 줄로만 알고 “카페에서 싸게 소고기를 판매하나봐?” 물었다. 이내 지인의 문자가 왔다. “ 너 배고픈가 보구나? 지금 봄봄에 난리났다. 어서 와봐~”



03.jpg 작품명: 탄생 신화, 파라핀 작업


내가 작품을 보러 간 날은 마침 어유진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가 예정된 날이었다. 좀 있으면 작품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여유롭게 전시를 즐겨보자 마음 먹었다. 카페 유리문에 적혀있는‘탄생 신화’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거시적이고...본질적인...타이틀

과연 작가가 이 타이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아니 바쁜 일정을 미루고 왔는데 실망하고 후회할지도 모르는내 마음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다.

카페 문을 들어섰을 때 매니저가 언제나처럼 “어서 와~” 하며 반겨주셨다. 난 휘둥그레진 눈으로 “ 누님, 이게뭔 일이래요?” 물었다. 난 영락없는 봄봄의 주민이다. 내가 이곳을 내 집처럼 방문한지 벌써 2년이 지났고 어떤책이 어디에 꽂혀있는지는 눈감고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고향’같은 공간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주민으로서 약간의 반감은 당연히 존재했다.


02.jpg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낯섬과 반감은 이내 사그라 들었다. 카페 안을 가득 채운 몽롱한 음악, 벽면 스크린에 흐르는 물빛 이미지 영상, 유리관에 전시된 파라핀 제작물, 부드러운 털실로 짜여진 그물망.

난 그것들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매우 직.관.적으로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랜 만에 방문한 진짜 고향집에 온 것처럼 나른하고 졸리기까지 했다. ‘웅크린 씨’란 고치형태의 울털실로 제작된 작품은 직접 만져볼 수도 있어서 촉감 체험이 가능했다. 그 부드러운 질감은 내가 ‘웅크린 씨’를 어루만지는 것인지 ‘웅크린 씨’가나를어루만지는것인지모를정도로 어느새내몸과하나가된기분이들었다.벽에걸린그물망으로된작품‘자궁’은 그 안에 들어가 눕고 싶을 정도로 안락해보였다. 공간이 좁아 벽에 바싹 붙어있었지만 아예 천장에 넓게 걸어 밑에서 올려다봐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궁’도 ‘웅크린 씨’와 똑같은 부드러운 울털실로 제작되었다.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내가 소고기라고 착각했던 ‘탄생신화’이다. 붉은 파라핀이 겹겹이 쌓인 모양이 동굴의 종유석과도 무척 닮았는데 여성의 자궁을 형상화한 느낌이 바로 들어 보는내내 부끄러우면서도 경이롭고 숭고한느낌마저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궁은 여성의 몸에 있는 동굴 아니던가?’

난 어느새 전시공간을 자궁속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온몸을 감싸는 따듯한 에너지. 나른한 편안함. 세포 하나 하나가 풀려버린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의자에 털썩주저앉아 엎드려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다른 사람들도 나와같이 착석을 하고 드디어 어유진 작가의 아티스트 talk가 시작되었다.


08.jpg
09.jpg



어유진 작가의 작품설명


여성의 몸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뜨고 지는 해, 달과 같이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제 나이 때에 저를 낳으신 엄마가 써두셨던 육아일기를 보며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고, 자궁과 모성에 대한 사유를 계속하게 되며 여성의 몸과 대자연의 주기의 일맥상통하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탄생신화’라는 작업을시작하게 된 사적인 계기는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보는 형이상학적 개념과 만나면서 비로소 작품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대지는 화산폭발과 함께 탄생하였습니다. 이를 저는 대자연으로 상징화되는 가이아 여신과 생명을 창조해낸 중국 여와여신의 탄생신화와 접목하여 텍스트작업으로 나타냈습니다. 텍스트작업은 대자연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을 동일선상에 놓고 최대한 시처럼 은유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스토리텔링은 저의 자전적 이야기일수도 , 아닐 수도, 혹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과거를 서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유진 작가의 인터뷰


한공기: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어유진: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뭔가 해소할 것이 필요했어요. 딱히 어떤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관심있던 작업을 시작했죠.


한공기: 관심있는 작업이란 어떤 것이죠?


어유진: 전 재질에 관심이 많아요. 조각이나 금속공예처럼 단단한 재질의 작품 활동보다 부드럽고 유기적인 재질의 작품활동을 선호해요. 두 작업의 차이를 보면 전자는 설계를 먼저하고 그 설계도에 맞추어 작업을 하는데후자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설계를 하게 되는 것이죠. 작업과정 자체가 유기적입니다.


한공기: 정말 작업과정이 너무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죠? 각 작품의 작업 기간은?


어유진: ‘웅크린 씨’나 ‘자궁’은 털실을 짜서 만든 것입니다. 가장 부드러운 털실을 찾기 위해 2주동안 시장을 뒤졌어요. 결국 지금 재질의 실을 찾았고 집에서 틈틈이 짰어요. 작업실에서 짜면 먼지가 많이 묻기 때문에 집에서작업을 했는데 작품 크기가 크다보니까 침대에 앉아 짜다가 덥고 자기도 했어요. 작업기간은 각 작품당 두 달정도 걸린 것 같아요. ‘탄생신화’는 파라핀을 떨어뜨린 후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떨어뜨리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마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힘들었어요. 잠깐 졸기라도 하면 타이밍을 놓치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봐야만 했죠. 작업기간은 3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한공기: 얘기를 듣고 있으니 정말 장인정신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신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합니다.


어유진: 장인 정신까지는 아니고 그냥 명상하는 마음으로 작업한 것 뿐입니다.


한공기: 전 그게 대단하다고 봐요. 일반적으로 콘텐츠 제작자나 예술가들은 뭔가를 만들 때 제작 기획 - 설계 과정을 먼저 거치잖아요. 작업 기간도 미리 예상하고. 그런데 작가님은 그런 것 없이 그냥 바로 꾸준히 작업을 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럼 ‘탄생신화’라는 컨셉은 작업이 끝난 후 결정된 것인가요?


어유진: 작업을 하면서 윤곽을 잡아갔어요. 무의식적으로 시작한 작업이지만 결과물이 완성되면서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싶은지가 발견이 되더군요. 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출산과정을 접하면서 여성의생식주기와 출산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죠. 심지어 언니의 아이는 제가 직접 받기도 했어요.


한공기: 과정중심적인 작업이라는 게 정말 독특한 것 같아요. 이런 작업형태가 갈수록 많이 행해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예전부터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때도 무의식 기술법으로 그냥 뭔가를 적어나가면서 작품 전체의형태를 만드는 사례가 있었거든요. 시인이나 작곡가들도 그렇고 ...그런데 문학쪽은 언어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비교적과정중심적작업이쉬운편이니가능했던것같아요.그런데회화나조형에서도 그런과정을할수있는 시기가 이제 도래했군요. 현대미술의 시대라서 그런거겠죠?


어유진: 모든 현대미술 작가가 과정 중심적으로 작업하지는 않아요. 그냥 저는 유기적인 재질에 관심이 많았고그런 재질은 과정중심적인 작업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작업 자체도 유기적인 과정이었던 것이죠.


IMG_0021.jpg
05.jpeg

작품명: 자궁, 울 털실 직조 작업




한공기: 전 그런 작업의 형태가 굉장히 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그동안 수직적인 방향으로, 남성적으로 흘러왔잖아요.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고...굉장히 아버지를 닮은 설계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문명이 발달해도 전쟁이나 자본주의의 폐단, 환경파괴, 기계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와 인간에 대한 가치 상실 등의 문제에 도달했고 이성의 한계를 느끼고 있죠. 이제는 수평적인 시선이 필요하고 여성적인, 감성적인, 어머니를 닮은 설계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봅니다.


어유진: 그래서 그런지 어떤 분은 저를 ‘에코페미니즘’ 작가라고 부르더군요.



에코페미니즘
자연생태계와 인간을 하나로 보고, 생명의 가치, 평등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상. 지금까지 남성중심, 서구중심, 이성중심의 가치와삶의 방식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뒤바꾸려는 실천지침.이것은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위기가 동알한 억압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남성이 곧 문명이고,여성이 자연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남성과 인간문명을 타도 대상이 아닌 남성과 여성, 자연과 인간문명은 처음부터 하나였다고 보고 이들의어울림과 균형을 통해 모든 생명체의 통합을 강조한다.


한공기: 정말 작가님이랑 잘 어울리는데요! 저도 에코페미니즘 작가가 되고싶네요. 신기하게도 작가님은 과정중심적으로 작업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목과 컨셉에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마치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이동하는 생명창조의 과정과 흡사해요.


어유진: 카오스와 코스모스 결합. 저도 신화를 공부하며 그 점에 집중했어요. 정말 생명은 카오스와 코스모스, 정반대되는 것이 결합되어 있어 신기해요. 파라핀 작업이나 털실 직조 작업도 처음엔 불규칙하고 무정형으로 시작되었지만 작업물이 스스로 자신의 형태를 잡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놀랐어요. 마치 수정된 생명이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형태를 만들어가듯이...


한공기: 그러고보니 작품들이 작가님도의 아이같이 느껴지네요.


어유진: 제 아이라기보다 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낸 총체적인 결과물이니까.


한공기: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저도 공감이 되네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이 저를 드러내거든요. 글을 쓰기 전까지는 저도 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몰라요. 저의 모든 것을 담겨있는 글은 마치 저의 거울같기도 합니다.작품이 바로 작가이다. 멋진 말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진실된 창작활동을 추구하나봅니다.


어유진: 네 저도 이 작업을 통해 인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자에 관해. 저도 여자니까요. 제가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저도 언젠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신기해요. 그런 생각을 하니 제 몸이 마치 대지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한공기: 그래서 신화의 원형에서는 대지를 어머니에 비유하잖아요. 하늘은 아버지에 비유하고...하늘과 땅은 공존하는 것이지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양에서도 양과 음을 평등하게 보고 그것이 순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남녀의 차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이 저도 무척 신기해요. 모든 남성이 여성의 몸에서나왔음에도 불구하고요.


어유진: 저도 남녀의 성차별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성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은없습니다. 그냥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자연은 원래 순응의 과정을 통해 탄생하고 사멸하니까요.


한공기: 작가님의 그런 태도가 멋지네요. 조바심을 가지기 보다 계속 꾸준히 진실된 작업하시면 분명 유명해지실것 같아요. 작품이 너무 좋아서 전 이미 팬이 됐거든요.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어유진: 감사합니다.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힘이 되네요.


IMG_0020.jpg

작품: 탄생 신화, 파라핀 작업




한공기 작가의 다른 글이 보고싶다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動話-움직이는 이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