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창덕궁

ONE DAY ONE PAGE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 제자여, 제발 나와 함께 이번 주 토요일 출사 가자~”


내게 서예를 가르쳐주시는 활천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어린 시절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신 당신은 서예와 캘리그라피 장인이시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기에 나도 잘 못하는 스타크래프트나 모바일 온라인 게임을즐겨 하신다. 그런 그가 요즈음 ‘사진촬영’ ’에 맛 들이셨다. 사부님은 유명 사진작가 조세형씨에게 사사 받았고 30명의 아카데미 동기들 중 6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엄청난 습득력을 가지셨다. 한번은 ‘누드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하며 내게 보여주었는데 누드모델의 뒷모습이 도자기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곡선미가 잘 살려져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마음은 정말다른지 난 그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그래서 평생 업으로 삼아온 나의 촬영 노하우를 가르쳐주지 않기로 마음 먹었는데 함께출사를 가자고 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의 첫번째 답장은 “글쎄요. 제가 토요일에 일이 자주 생겨서…”였다. 일종의 은근한 거절이다. 하지만 사부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발’이란 말까지 하며 조르시니 제자로서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되었다.

토요일 우리가 만난 곳은 ‘창덕궁’. 서울에 살지만 좀처럼 궁에 가지 않던 나는 사부님 덕에 무척이나 낯선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마침 전날 비가 온 덕에 하늘은 청명했다. 사부님의 웃는 얼굴도 어찌나 푸른지 그의 흰 눈썹과 흰 머리가 구름과 같아보였다. 우린 덕수궁에 들어서자 마자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딱히 마음이 내켜 온 출사가 아니기에 난 좀처럼 셔터를 누르지않았다. 나의 촬영 스승인 故유영길 촬영감독님(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은 언제나 강조하셨다. “촬영은 이야기야. 너가 찍은컷이 보는 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면 실패한 촬영이지.” 그럼 도대체 어떻게 촬영을 해야 이야기를 담을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 촬영은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란다.” 그 말은 온 맘 다해 촬영을 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마음 가지 않는 풍경을 애써 카메라에 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뒷짐을 지고 사진을 찍는 사부님을 졸졸 쫓아다녔다. 사부님은 내게 “거기 서 봐라. 내가 찍어 줄게.”하며 날 자주 세우셨다.급하게 나오느라 머리도 감지않았는데… 불편한 마음의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 ‘혹시 모델이 필요해 부르신 거? 아 괜히왔다’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과 나는 왕이 놀았다는 궁 뒤편의 후원을 거닐었다. 사부님은 “내가 그때 태어났어야 하는데…그랬다면 학자가 되어왕을 가르치러 이 궁에 자주 왔겠지…”하시며 안타까워 하셨다. 그래서 난 “사부님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는데 사실전 이성계의 46대 자손입니다.” 말했다. 그러자 사부님은 “잠깐 거기 서 봐라. .” 하시며 또 나를 세우셨다. 정성스럽게 구도를 잡고 몇번이나 셔터를 누르는 당신의 모습이 어찌나 천진난만해 보이는지 나도 갑자기 사부님이 찍고 싶어졌다. 그날 궁의풍경은 거의 찍지 않았지만 사부님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붉은해가 어느새 늬엇늬엇 넘어가고 흰 달이 눈에 띌 때 우린 시린 손을 비비며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피곤하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탔다. 나란히 앉아 멍하니 아무 말 없는 두 사람. 건너편 유리창에 비친 우리 모습이 눈에 띄자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이 똑같이 가방을 꼭 끌어안은 모습이 마치 엄청난 보물이라도 품고있는 모습처럼 보였다.사부님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제자야 열심히 배워라. 나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내가 아는 것을 빨리 네게 다 전수하고 싶구나.”

유난히 그의 손이 마른가지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다가 왈칵 울음을 쏟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예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목이 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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