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미식회 ㅣ 박정현
에릭 사티 Erik, Satie (1866~1924) _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온 음악가
1866년 5월 17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 항구도시 옹프루르 출생
아버지는 프랑스인,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인.
어머님은 어릴때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재혼을 하셨는데 어릴때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다시 할머니한테 와서 어린 시절을 보냄.
1879년 13살때 파리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하지만 교수들이 사티에게 재능이 없다고 음악 그만두라고 권유함. 본인 스스로도 많이 실망하여 휴학과 복학을 반복함.
1886년 군대에 입대함. 후에 이 경험으로 1차대전 당시 예비역으로 종군하게 됨.
1887년 군 제대후 몽마르트 로 이주하여 '르샤누아 (검은고양이)' 라는 캬바레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게 됨.
이곳에서 음악적인 실력배양과 사람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음악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됨
그리고 이곳에서 드뷔시 등 수많은 음악가, 문인들과 교류하게 됨
이 시기에 만든 음악중 한곡 소개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티의 음악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
사티가 22살때 쓴 "3개의 짐노페디(1888년)"
짐노페디는 고대그리스의 앙포라 라는 항아리를 보고 만든 음악. 짐노페디 축제를 그려놓은 고대 항아리 이다.
그리스 말로는 귑노스(벌거벗다) 파이스(젊은소년들). 벌거벗은 소년들이 나체로 춤을 추면서 디오니소스 (예술과 쾌락의 신) 를 찬양하는 모습을 짐노페디 라 한다.
이곡은 상당히 고요한 편인데 실제로 축제를 묘사한 음악이 아니라 축제를 묘사한 그림을 그림을 그려넣은 앙포라 (항아리)를 보고 만든 조용하고 사색적인 심상으로 만든 음악.
후에 드뷔시가 이 곡을 편곡을 하는데 1번과 3번만 편곡한다. 그 이유는 2번까지 하면 너무 지루해서 라는 이유였다.
사티 음악은 근본적으로 경청하라고 듣는 음악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에 사티가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음악평론가, 무용평론가로 일세를 풍미한 김영태 선생님 (2007년 사망)의 역할이 컸다. 국내최고의 사티 전문가, 전도사 가 말한다.
"사티의 피아노곡은 기교가 현란하지 않다. 그의 피아노곡들은 덤덤하지만 그러나 모자르는 듯한 예리함. 그러면서도 가슴을 후비는 짧은 멜로디가 나는 좋다."
1880년대 90년대에는 전 유럽의 거의 모든 음악가들이 바그너 풍의 음악을 지향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사티는 바그너풍의 음악을 심각한 음악, 지나치게 진지한 음악, 지나친 아카데미즘, 청중들을 고려하지 않는 음악 이라 생각하고 바그너 스타일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함. 반바그너주의 오페라를 만들었다고 광고도 하였으나 사실 오페라같은 기교 넘치는 음악은 관심이 없었다. 공공연히 반바그너주의를 말하고 다닌다.
1893년, 화가이면서 많은 화가들 (드가, 르누아르, 로트레크 등)의 모델로도 활동하였던 "쉬잔 발라동" 과 6개월 정도의 사랑에 빠진다.
헤어진 후에도 발라동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동안 부치지 않았던 300여편의 편지가 사티 사후에 발견된다.
이별하는 과정에서 만들었던 음악 '벡사시옹' (짜증, 성가심) 있는데 이곡은 발견된 당시에는 연주되지 못한다.
짧은 2개의 변주만으로 되어있는 3줄짜리 악보를 840번을 반복하여 연주 하여야함. 실제 연주하면 15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다.
쉬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1867년 ~ 1938년
1893년 작품 그노시엔 은 크노소스 크레타섬의 축전을 상징한 음악이다.
사티의 음악은 크게 3개의 시대로 나눌수 있음
첫번째 1886년~ 1905년
두번째 1905년 쯤 20세기 초반 ~ 1917년
세번째 1917년(1차대전종전)~1924년
두번째 시기라고 할수 있는 20세기 초반부터 음악계에서 사티가 조롱과 왕따를 당하는 시기. 그래서 반항을 하던 시기인데, 기괴하고 괴짜로서의 본모습을 보이기 시작함. 하지만 사티는 세기의 전환기에서 음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예술가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제목부터 기괴한 음악을 만듬. 관료적인 소나티네,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 등
바짝마른 태아 (어뷔옹데세쉬) (생물도감에 나오는 무척추동물의 표본배아) 건조배아 (1913년) 짧지만 3악장으로 구성
1악장 https://youtu.be/FA642dWwLkI
2악장 https://youtu.be/xfixNLjn3Tw
3악장 https://youtu.be/f_mSam4pBdE
이 곡을 들으면 개인적으로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 떠오른다.
1917년 사뜨레 극장에서 장 콕토가 대본을 쓰고, 피카소가 무대 장치와 의상을 맡고, 마시느의 안무에 의해서 디아길레프 무용단이 상연했는데, 라이터소리, 기관총소리, 호루라기 소리,를 넣어서 만든 충격적인 작품 이었다.
관객들의 항의로 인해 당시에 벌금형을 받기도 함.
ex) 6분 45초 총소리
그 이후에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관료주의 음악 한번 들어봐라 라는 심정으로 신고전주의 적인 관료적인 소나티에 (클리멘티엔 소나티네 를 패러디) 를 발표함
1917년작 소나틴 뵤로티나티끄 (관료적인 소나티네)https://www.youtube.com/watch?v=4S7YEu99D4A
1920대에 접어들며 가구음악, "뮤직 아매불망" 음악을 만든다. 연극중심의 음악에서 중간에 연주가 됐었는데 이 연주의 프로그램에 "절대 이 곡이 연주될때 연주에 집중하지 말고 걸어다니고 이야기 하면서 음료를 드실것. 절대 집중하지 마라 이것은 그냥 배경음악이다." 라고 사티가 말한다.
사티는 음악의 현대적인 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제시한다.
(김영태 시인왈 "그저 거기에 놓여있는 음악")
오늘날, BGM, 엠비언트 음악, 로고 음악, 배경음악 등은 사티에게 영향을 받음.
사티는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왔다." 라고 스스로 말함.
말년에는 술을 즐겨마심.
1924년에 59세의 나이로 성 조세프 병원에서 타계 한다. 사인은 간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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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과 함께 들어보고 느껴보고 싶은 사티의 음악은
사티의 로맨틱한 음악 "그대를 원해" (Je Te Veux)
1903년작. 입니다.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8회 에서 홍설과 백인호 가 피아노에 앉아 잠깐 연주 했었다고 하는데 저는 치즈인더트랩을 보지 못했네요^^;
함께 들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