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아픈 엄마를 관찰하다 - 2

망상적 관찰일기 ㅣ 최미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5 오후 2.18.58.png 직장인 명상가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목요일 오전 8시 반, 여느 때 같으면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그 날 아침에는 인천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보통의 출근길 흐름과는 반대인, 서울에서 인천 방향의 전철은 한가한 편이었다. 나는 신도림 역에서 급행 전철을 타자마자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김영하의 책 읽는 팟캐스트> 중 '허삼관 매혈기' 편을 듣고 있었다. 제목만 알고 있던 소설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소설의 내용이나 작가의 이력이 재미있어, 이따금 소리 내어 웃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그렇다. 그 날은 엄마가 19일 만에 퇴원하는 날이었다.


엄마가 입원해 있던 시간은 쉽게 흘러가 주진 않았다. 천안에서 올해 팔순이 되신 친할머니가 올라오셔서 평일에는 아버지와 교대로 병원에서 주무시며 엄마를 돌봐 주셨다. 금요일에 자고 가는 것은 오빠, 토요일 당번은 내가 되었다. 택시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어디에서 주무시건 간에 새벽 5시에는 출근을 하셨고, 오전에 주치의 회진 시간, 점심,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반드시 병원에 들르셨다. 그리고 그 날 그 날 엄마의 컨디션이나 검사하는 항목, 의사의 소견, 새로 투여되는 약 등에 대해 나와 오빠에게 알려 주셨다. 엄마는 응급실로 입원한 다음날 7인실로 옮겨간이후, 퇴원하는 날까지도 온갖 검사를 받으셨다. 입원한 지 이틀째에는 주치의가 원래 의심 소견이 있었던 류머티즘 관절염은 분명히 아니라고 못 박고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뼈핵 검사도 취소했다. 대신에 진행했던 검사는 골수 검사였다. 실제 엄마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서는 오빠가 있었던 토요일 오전에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골수 검사 결과는 외부기관을 통해 정확한 결과가 나와야 확진 판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한 만큼 병원에서 우선 분석하여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희귀 질환이 맞는 것으로 판단하고 치료를 시작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그다지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이 병에 대해 실제 임상 경험이 있는 의사도 많지 않으며, 환자의 사망 이후 부검 중에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초반에 잘 잡히면, 자가면역 질환에 대해 면역 억제 치료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하지만 운이 나쁜 경우 혈액암으로 발전할 수가 있는데, 엄마의 경우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있는 상태라 항암 치료를 이겨낼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스러운 상태였다. 아버지는 그이야기를 듣고는 엄마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바로일 하러 나가셨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던 토요일 오후, 면역력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져 있어 개인 병실로 이동하는 것이 권장되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일주일 사이에 분명히 조금 나아져 있었다. 저녁 식사 때 엄마는 밥은 반 정도를 국에 말아서 드시고 반찬으로 나온 것을 숟가락에 얹어 달라고 하셨다. 나는 부지런히 시금치 무침과 생선 조림, 무채 같은 반찬을 집어드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엄마는 조금 힘들어하시면서도 스스로 화장실에 서서 양치를 하셨다. 요구르트도 드시고, 할머니가 사다 놓으신 떡볶이용 가래떡도 하나 드셨다.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가끔 우스운 일이 생각나면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하셨다. 그중에 하나는 새언니 뱃속에 있는 조카, 호순이에 대한 것이었다. 그 날 오빠는 호순이와 가끔 두더지 잡기 놀이를 한다고 하면서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었다. 호순이가 태동을 하면 새언니나 오빠가 그 자리를 꾹 눌러주고, 호순이가 또 다른 곳을 발로 차면 또 그 자리를 눌러주는 게 바로 두더지 잡기 놀이였다. 그러면 아기가 재미있어한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방긋거리며 엄마 뱃속에서 이리저리 데굴거리고 있을 아기를 생각하자 절로 미소가지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웃으며 누웠어도 한밤 중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보호자용 간이 침상이 편하지도 않거니와, 엄마는 30분에 한 번씩은 깨어났다. 기침을 하시기도 하고, 그냥 일어나 앉아 계시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오시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도 일어나 앉아 휴지를 드리거나 물을 따라 드리고, 화장실에 따라갔다 왔다. 엄마가 주무시는 동안에는 엄마의 숨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엄마의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따뜻하고 밝은 빛이 엄마의 몸 안을 흐르면서 나쁜 병균이든 뭐든 간에 가만히 녹여 없애는 것을 상상했다. 손목에 염주를 한알 한 알 굴리면서 엄마의 병이 빨리 낫게 해 달라고 속으로 읊조리기도 했다. 까무룩 하고 잠들었다가 어느 순간 엄마의 숨소리가 낮아졌다 싶으면 잠에서 깨어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마다 엄마는 눈을 뜨고 있었고, 왜 그러냐고 물으면 꿈에서 귀신이 나왔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엄마는 나에게 앉아 있지 말고 좀 더 누워서 자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누워 이 따끔 옆 눈길로 엄마를 관찰했다. 엄마는 대체로 눈을 뜨고 계셨다.

새벽 4시 40분, 그 날의 첫 번째 피검사 시간이 되었다. 간호사는 조용히 병실에 들어와서 피검사를 해야 하는 병상마다 취침등을 켜고 피를 뽑았다. 엄마의 피를 뽑고 나서 간호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어젯밤 피검사 결과 보니까 어머니 면역 수치가 정상 범주로 많이 올라갔어요. 그래서 개인병실로 옮기지는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이번 피검사 결과 한 번 더 확인하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나는 간호사에게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간호사들은 교대로 들어와서 혈압과 체온을 재고, 체중도 쟀다. 6시가 좀 지나자 환자들은 대부분 잠에서 깨어 밤새 조용했던 TV를 켰다. 이제 밤 11시 정도까지 저 TV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병실에 반 정도 불이 켜졌다. 해가 뜨고, 아침 식사에 반찬으로는 잡채가 나왔다. 엄마는 오랜만에 먹는 잡채가 맛있다며 당면을 모두 드셨다. 밥은 3분의 2 정도를 국에 말아서 국물까지 전부 드셨다. 아직 젊은 의사가 회진을 돌며 다시 한 번 면역 수치가 정상 범주가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일요일이라 주치의는 출근을 안 하는 모양이었다. 병상 주변을 둘렀던 커튼을 좀 더 젖히고, 나도 마스크를 벗었다. 정오쯤에 송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병실 가득 너울대고, 엄마와 다른 환자들은 안심한 듯 낮잠을 잤다. 오후 2시 정도에 할머니와 아버지가 오셔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깊이 잠들었다.


다음 화요일 저녁과 목요일 저녁, 그리고 다시 토요일에 엄마를 찾아갔다. 갈 때마다 엄마의 눈빛은 점점 더 검고 또렷해졌다. 화요일 저녁에는 퇴직금 문제와 병원비 중간 납부 때문에 약간 언짢아하셨고, 목요일 저녁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일어선 채로 먹는 약을 드시고 계셨다. 지난 토요일 까지만 해도 3개 정도 달려 있던 링거는 1개로 줄어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온갖 검사는 진행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근육조직 검사가 포함되어 있어 뭐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토요일이 되자 오빠는 바쁘다는 주치의를 붙잡고 엄마의 정확한 현재 상태가 어떤 것인지, 왜 검사는 그렇게 많이 하는지를 물었다. 의사는 엄마의 초반 치료가 다행히 적절하게 이루어져 명백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받고 있는 검사들은 그 병 확진 이후 실시하도록 규정된 검사들로, 암이나 다른 질병 이합 병증으로 나타나지 않았는지 점검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진행받았던 검사 결과 엄마는 다른 합병증이 없이 깨끗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의사의 의견이었다. 오빠는 그 이야기를 엄마와 나에게 들려준 후에도 바깥 날씨가 춥다며 한참을 더 미적거리다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 시간 동안 엄마는 주무시지 않고 나와 두서없이 대화를 했다. 대부분은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 이야기였다. 엄마가 있는 7인실 병실에는 당뇨 환자가 세명이나 있었는데, 혈당 수치가 올라가니까 식사 간식을 제한하고 있어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 이야기 만나 누고 있다고 했다. 옆 침대의 할머니는 이제 거의 다 나아서 퇴원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집에 가면 영감님 밥을 차려줘야 돼서 가기 싫어한다고 했다. 이제 엄마는 보호자 없이 혼자서 화장실에 가실 수 있었고, 당연한 듯이 식사 후에는 양치를 하셨다. 밥은 여전히 다 드시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젓가락질을 하실 수 있었다. 식사를 다 못하시는 건 오렌지 주스라던가 귤, 요구르트 같은 간식을 계속 드셔서인 듯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신 후 엄마는 내일 아침에 비싼 커피 -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엄마는 비싼 커피라고 불렀다- 를 사 와서 엄마 친구 분이 사가지고 온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랑 먹자고 했다. 그 날밤은 지난주보다 좀 더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엄마는 밤 사이 두 번 정도 깨어서 화장실에 다녀오셨지만 내가 따라가려고 하자됐다며 말리셨다.

다음날 아침 식사가 나오기 전, 엄마와 마실 '비싼 커피'를 사러 갔다 왔다. 엄마는 치즈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엄마가 어렸을 때의 일이라던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의 일, 그리고 친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돌아가셨고, 엄마의 친어머니는 훨씬 더 옛날에 엄마의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다. 이후 들어온 새어머니와 엄마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 새 어머니가 낳은 남동생과 십여 년 전에 크게 싸우는 바람에 그 이후 친정과는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엄마는 옛날에 혼수 이불을 해주셨던 작은 엄마만큼은 보고 싶은데, 지금은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고 쓸쓸하게 이야기했다. 친정 얘기가 끝나자 나를 낳으셨을 때의 이야기도 하셨다. 엄마는 나를 집에서 낳았는데, 그때가 대한 즈음이라 방 안에 있는 걸레가 얼마큼 추웠다고 했다. 근처에 사시던 막내 이모할머니 - 친할머니의 막냇동생을 우리 가족은 그렇게 불렀다 - 가 친구를 불러오셨고, 그분이 나를 받아 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나중에 막내 이모할머니 장례식에서 그분을 뵜는데, 인사도 못했다며 속상해하시기도 했다. 나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여기 2주 있었을 뿐인데 한 10년 정도 있었던 거 같은 기분이라던가, 날씨도 그렇고 뉴스 나오는 것도 그렇고 세상이 완전히 이상해진 거 같다는 이야기도 두서없이 하셨다. 나는 대통령을 잘 못 뽑아서 그렇다고 농담 삼아 얘기했고, 엄마는 웃으면서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월요일에는 주치의가 이번 주에 퇴원이 가능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화요일에 맞고 있던 링거도 모두 뺐고 먹는 약만 드시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일요일 밤까지만 병원에서 주무시 고월 요일부터는 엄마 혼자 계시도록해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굉장히 불안해하셨다. 엄마가 부인과 검사를 마친 수요일 저녁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전화하셨다. 내일 엄마가 퇴원을 할 거니까 오전에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목요일 아침에 반차를 내고 엄마 퇴원 절차를 밟으러 갔던 것이다. 9시쯤 도착을 했더니 할머니께서 이미 짐은다 꾸려 놓고 계셨다. 도착해서 1시간 정도는 퇴원 절차에 따라 주치의 의회진을 기다리며 삶은 계란을 먹었다. 엄마는 퇴원을 해도 일주일 정도 후에 외래 진료가 있고, 한 달에 한 번 면역치료제를 맞을 때는 2박 3일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 입을 옷을 가지고 오신 아버지께서는 믹스 커피 한 잔을 드시며 좀 더 주치의를 기다려 보다가 간호사에게 그냥 빨리 수납하게 해 달라고 이야기하셨다. 간호사는 그러려면 입퇴원 확인서는 다른 날 받으셔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수납을 넘기는 처리도 40분 정도 더 걸렸다. 그 사이에 엄마가 병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마침내 수납하러 가시면 된다는 전화가 왔고, 나는 듯이 내려가 수납을 마무리했다. 영수증을 가지고 약 처방이 있는지 물으러 간호사에게 갔다. 간호사는 8일치의 먹는 약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고, 다음 외래 진료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간호사가 챙겨주는 약과 복약지도서, 외래진료 안내서 등을 봉투에 넣고 병실에 가보니 다른 가족들은 이미 1층으로 내려간 후였다.


병원에서 나와 제일 먼저 집 근처에 있는 설렁탕 집에 갔다. 아버지께서는 이따금 할머니에게 국물이 진득하니 맛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드시다가 고기 두서너 점은 배부르다며 아버지 그릇에 옮겨 주었다. 우리는 아주 배고팠던 사람들처럼 대화도 거의 없이 먹는데 집중했다. 엄마는 밥을 반 정도 설렁탕에 말아드셨다. 그 설렁탕집의 김치는 달콤한 편이어서 자꾸 손이 갔다. 엄마는 병원에서 계속 김치를 못 드시길래 거기서도 안 드실 줄 알았더니, 아주 잘 드셔서 몇 번이나 추가로 김치를 잘라놔야 했다. 엄마는 엄마가 남긴 밥을 밥을 나에게 더 먹으라고 했다. 내가 배부르다고 하자 엄마는 남겼던 밥에서 또 3분의 2 정도를 더 국물에 말아서 후루룩 후루룩 잘 드셨다. 아버지는 밥을 두 공기나 드셨다. 나도 오랜만에 설렁탕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다 먹고 나니 등 뒤에서 얼큰한 땀이 흘러내렸다.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이다 같이 식사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인 것 같았다.


설렁탕 바로 옆에 지하철역이 있어서, 나는 오후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바로 가기로 했다. 엄마는 웃는 얼굴로 다음에 오면 감자찌개를 끓여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손을 흔들었다. 타닥타닥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가며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가는 동안 아침에 듣던 팟캐스트를 마저 들어야겠다. 이제 출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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