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자살
Homo Meditatio
- 서문-
Homo Meditatio (호모 메디타티오) :수행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선
이 글은 '수행'을 주제로 한 에세이다.
이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은 왠 '수행?' 하며 황당할 것이고 글을 쓰는 나 역시도 당황스럽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글을 쓸 생각도 못했으니까.
모든 것은 인연이고 타이밍인가 보다.
어릴 적부터 수행에 관해 관심이 많았고 나름 다양한 수행을 해왔지만 솔직히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해서 수행보다 돈을 중요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삶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본의 아니게 다시 수행모드로 돌아서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돈에 대한 그리고 돈이 주는 이로움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여정이 있었고 1초1초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 지구라는 별의 무게에 깔려있는 느낌, 피가 다 말라버리는 느낌을 받으며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마침내 욕심을 버렸을 때 비로소 자유함을 느꼈고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돈이 중요하지 않은가? 노숙자로 살아가란 말인가?> 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환경은 아주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단지 삶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변했을 뿐이다. 이전에는 내가 상정하고 디자인하는 나만의 우주가 있었고 그 우주에서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미래로 도달해야만 했다. 나만의 은하철도 999라고 할까? 그 열차가 우연한 사고로 탈선하고 전복되었다. 난 다시 열차를 고치고 운행을 계속하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고 그 미친 고생을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내가 왜 이 열차를 타야만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그제야 들고있던 망치와 몽키스패너를 버리고 소풍이 시작된 것이다.
1부: 완벽한 자살
친구가 몇년 전에 자살을 했다.
친구는 내가 영화가 엎어지고 괴로워할 때마다 "기운내! 인생 뭐 있어? 믿으면 언젠가 이루어지는거야!"하고 힘을 실어줬던 녀석이다. 지방출신인 그는 콘크리트처럼 강한 마인드로 고단한 서울 생활을 버텨왔고 자신의 꿈에 서슴없이 도전을 해왔다. 넘어지면 바로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는 오뚜기와 같았다. 친구이지만 나의 멘토같은 녀석이었다. 우린 자주 그가 사는 집 근처 건대앞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이야기 하고 다시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잠결에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자신의 옥탑방집에서 줄넘기로 목을 메고 죽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악몽을 꿨다고 생각했지만 전화기에 찍혀진 통화기록을 보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몇번 이나 도전했던 일이 자꾸 실패하고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동안 친구에게 연락을 안 한 것이 죄책감으로 밀려왔다.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내게 연락했던 친구가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난 왜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지내왔는가...친구의 죽음이 너무나 실감이 안 나서 멍한 상태로 장례식장을 배회하다가 혼자 우리가 가던 건대 앞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수년전 일이지만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녀석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리 굳게 마음먹고 도전을 해도 자꾸 실패만 하면 삶의 희망이 없어진다는 것을...나도 이제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살을 인간의 마지막 권리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 자살을 정당화하는 의견을 펼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자살을 택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가족들과 내가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랜 수행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육체적 자살>보다 더 고통스러운 <완벽한 자살>을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자살이란 무엇일까?
우주가 빅뱅을 통해 탄생하면서 모든 시공간이 불규칙적으로 확장하면서 나름의 질서로 세계가 형성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 질서안에서 서로 상관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거대한 현상은 내가 마음에 들던 안들던 인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점은 <카오스적인 확장성>이다. 바닥에 떨어뜨린 컵이 깨져서 우연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듯이 내가 태어난 시기와 장소 부모도 그 카오스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나의 탄생과 죽음이 전우주적 해프닝이고 내가 굳이 자발적인 죽음을 택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죽는다는 것이다. 태어난 특별한 이유도 없고 죽는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건 오직 신만이 알 뿐이다)
나는 신이 아니기에 이 질서를 바꿀 수 없다.
물론 사는 동안 "아! 왜 태어났지?" "아! 왜 하필 우리 부모를 통해 태어났지?" "아! 왜 하필 이런 난세에 태어났지? " "아! 왜 하필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고뇌를 할 수는 있지만 실존은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 우주질서상 매순간이 변하기 때문에 변화를 기대할 뿐이고 그 변화의 시작은 바로 내 자신으로부터다.
내가 필사적으로 자살을 꿈꿀 때 생각의 접근법을 살펴보면 이상과 현실의 갭에 대한 스트레스가 무척 심하다.
난 반드시 이렇게 되야해...라는 강력한 목표를 가지고 강력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면서 모든 것을 다 걸었을 때, 도박으로 치면 올인을 했을 때...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다 잃는 순간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공허함. 희망이 모두 사라지고 절망의 늪에서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상황.
아마 누구나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게 가장 큰 위기는 한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년간 시나리오 공모전에 올인한 적이다. 상금이 1억원이다 보니 수상만 하면 지난 시절의 모든 고통을 보상받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 지금까지 난 뭐한건가? 이제 뭐하면서 살아가야하나? 좌절하고 자살을 꿈꾼적이 있었다. 그 캄캄한 동굴에 들어온 한 줄기 빛은 다름 아닌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어느 스님의 질문이었다.
카페에 갔다가 손님으로 온 어떤 스님이 내게 다가왔다. 스님은 라이터를 빌리고 싶은데 혹시 담배를 피시냐고 물었고 난 스님과 카페 밖에 나가 같이 담배를 피웠다. 스님은 갑자기 자신의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며 자기는 원래 라이터가 있었다고 이실직고를 했다. 그리고 말을 건 이유는 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여서 왜 그런지 궁금해서라고 했다. 난 홀린 듯 공모전에 떨어진 사실과 그것으로 인해 삶의 희망을 잃었다고 술술 고백을 했다. 담배를 피며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스님은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 자네는 왜 영화감독이 되려하는가? "
그야 뭐...전공을 그것으로 공부했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도 벌고 싶으니까요...
나의 그런 대답에 스님은 또 질문을 했다.
" 그럼 자네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
그때 말문이 막혀 머뭇거렸다. 솔직히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단지 투자자들이 좋아할만한, 한국에서 관객이 들만한 소재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을 뿐이다.
스님은 내가 주화입마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난 필사적으로 주화입마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있는 돈을 다 주며 시주도 할 참이었다. 하지만 스님은 돈을 받지 않고 순순히 주화입마에서 벗어나는 비밀의 열쇠를 내게 쥐어 주었다.
"직심이다"
직심直心: 마음이 왜곡되거나 편협하지 않아서 진여를 바로 본다. 이것이 진여삼매이다. 진여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행의 근본이다. 진여는 무루의 청정한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사전)
이후 난 내가 왜 영화를 하려고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아 놔 그냥 안할래~" 하고 그냥 포기를 했다. 그리고 마음에 귀 기울이면서 영화를 하고싶었던 열정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내가 처음 영화에 반한 시기는 고2 때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하나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 패왕별희 비디오 포스터-
아는 배우는 장국영 뿐이었고 영화의 내용도 전혀 몰랐다. 단지 포스터 이미지에 사로잡혀서 혼자 뤼미에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수려한 이미지와 심금을 울리는 내용.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 긴장해서 중간에 세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날의 경험은 영화라는 매체의 영향력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순간이었고 난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가고 있었다. 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공대를 다녔고 대학 영화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다가 결국 2학년 때 중퇴를 하고 다시 입시를 해서 영화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내가 영화를 포기한다면 그 시절의 나에게 매우 미안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그 날부터 도미노가 넘어가듯이 난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고싶었다. 그런데 다음 도미노 블럭까지 여백이 생겨버렸다. 난 멈춰있었고 다시 도미노를 무너뜨릴 자발적 열정이 필요했다.
한동안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 자주 만나던 영화판 지인들도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친한 영화과 동기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나의 마음을 지켜보았다. 다양한 영상제작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그것을 본업으로는 삼지 않았다. 나이도 들고 시간도 빨리 가고 미래에 대한 걱정, 결혼에 대한 걱정 등도 들었지만...우산없이 소나기를 맞듯이 그냥 난 묵묵히 기다려봤다. 그 시기는 나를 한없이 비우는 과정이었다. 내 안에 요동치는 수많은 사심들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애써 설계했던 나의 탑이 철저히 무너지고 황량한 공터만이 남게 되었다. 자존심도 한없이 무너져 거의 바닥이 되고 내게 기대하던 지인들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그동안 왜 자살을 하고싶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과잉된 자의식>과 <밀폐된 에고> 때문이었다.
난 당연히 흥행영화를 만들 것이고 천만관객이 들 것이라는 혼자만의 견고한 믿음과 경험도 없이 무턱대고 가능할 것이라는 망상...그것이 과잉된 자의식이었다.
또 어떻게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철저히 이기주의적 사고...그것이 밀폐된 에고였다.
그 <과잉된 자의식>과 <밀폐된 에고>를 버리는 과정은 자살을 생각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웠고 난 이 과정을 <완벽한 자살>이라 불렀다. 내가 강력하게 믿고있었던 내 삶의 환상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제야 그 황량한 공터에 하나의 싹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싹의 이름은 <인간>이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즉 타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난 타자를 이용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살았다.
그들과 상대해서 교감하지 않고 내 목적에 끼워맞추며 판단하고 선택해왔다.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철저히 나누며 경계를 지었고 쓸모있다고 판단되어지는 사람과 거짓으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버리니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나와 같이 '나의식'을 가지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날 때 눈을 뜰 때마다
이 세상에 60억이 넘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하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무척 놀랄만한 신비임이 분명하다.
사실 '너'나 '그'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타인을 상대적으로 분류하기 위한 언어일뿐
실제로는 오직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을 깨닫기 시작한 후 나는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만나는 것이었다.
배려하고 교감하고 공감하고 동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나는 무척 많이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걸 내게 묻는것일까?" 의아해 했고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때 난 나의 이야기를 먼저 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패왕별희 영화를 혼자 봤을 때 였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1년동안 매진했던 공모전에서 떨어졌던 순간이라고...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매우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게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그들의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난 점점 밝아졌다.
보통 사람의 보통의 이야기만큼,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가면을 벗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얼굴은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 사진과 이야기가 많이 모이면 전시회를 열어도 되는지 물어봤고 모두가 흔쾌히 허락을 했다.
대학때나 졸업 후 광고일을 할 때 내가 찍던 사진들은 화려하고 이쁜 것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영상과 사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쁘고 섹시한 여자, 멋지게 생긴 남자, 화려한 풍경들...
한 때는 그런 이미지들을 열심히 쫓고 나 또한 열심히 찍었는데
신기하게도 이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최근 영화 두 편을 보았는데 <스파이더맨:홈커밍>과 <심야식당2>였다.
두 편다 재미있게 보았지만 <심야식당2>는 정말 눈물을 펑펑 흘리며 봤다.
스토리가 슬퍼서가 아니라 보통사람의 보통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참고로 <심야식당> <심야식당2> 영화의 촬영은 기가 막힐정도로 보통의 앵글을 잘 찍었다.
두서없이 적은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육체적 자살을 절대 하지 말고 <완벽한 자살>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