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ONE PAGE ㅣ 곽정빈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한창 일은 손에 붙고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입사 3년 차 때였다.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시도된 적이 없는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상품기획부서에서는 출시만 된다면 상대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유럽시장에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그만큼 중요한 프로젝트가 내게 떨어진 것이었다. 필시 하늘이 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기한이었다. 그해 연말 공신력 있는 매거진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촉박한 일정으로 개발을 완료해야 했다.
프로젝트는 사실 이전에 어떤 선임이 전담했던 것이었고,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아 나한테 넘어온 것이었다. 우선 현황부터 파악했다. 전임자는 말미에 일을 손에서 털어버린 모양이었다. 프로젝트에 관련된 다른 유관부서의 진행 상황에 비해서 내가 맡게 된 개발만 상당히 뒤처져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나에게 불똥이 아니 우리 부서 전체에 떨어질 우려가 컸다. 따라잡아야 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랐다.
매일같이 자정을 넘기는 철야 근무를 시작했다. 그래도 여의치 않아 주말 양일을 모두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벅참을 느꼈지만 여느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결국엔 모두 지나갈 일이었다. 후일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나면 사업부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고, 연말 보너스와 특진은 불 보듯 뻔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힘든 시간은 다 그에 걸맞은 보상으로 되돌아올 것이었다. 모두의 축하 속에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그렇게 위로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라는 예상은 매번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의 양은 단순히 많다고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의 것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양을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매일같이 예상할 수 없는 이슈가 터졌고, 처음 시도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슈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전례 없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전 속을 허우적대며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며칠 밤을 새워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거짓말처럼 다른 이슈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보고했던 개발 일정을 계속해서 수정해야 했다. 그보다 큰 골칫거리는 일정이 지연된 만큼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서 보고해야 했던 것이었다. 어차피 그 일정도 일주일이 지나면 결국 거짓말이 될 것이었지만, 그 일주일 동안의 임시방편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또 할애해야 했다. 마치 대출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대출을 하는 꼴이었다.
유관부서 담당 상무는 내년에 전무로 진급을 하느냐의 여부가 달린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듯했다. 그 초조함은 아래 담당자에게 이어졌고 그 담당자는 나보다 선임이었다. 선임과의 업무 협의는 내게 유리할 수가 없었다. 일정 지연에 대한 모든 원인은 나였고, 그 책임을 전부 떠맡은 채로 공통의 업무조차 내게 몰리기 시작했다. 팀에서는 진작에 내가 한계치까지 이르렀음을 인지했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섣불리 휘말렸다간 자신들도 헤어나오지 못할 돌이킬 수 없을 급류였다. 팀장조차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고 결국은 모두 한 번씩은 겪는 일이라고, 그러면서 단단해지는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어쩌다가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이면 기숙사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그 하루만이라도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혼자이고 싶었다. 토요일 늦게 퇴근하면 방에서 홀로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셨고 다음 날은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눈만 깜빡거리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지독한 숙취와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몇 시간 후 다시 찾아온 밤에는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늦게 일어난 탓이라기보다는 월요일 아침부터 무섭게 몰아칠 업무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아도 어느덧 빨라진 맥박 소리가 온 전신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은 기어코 일요일 자정이 넘은 시각 회사로 출근하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임원진에서 이리저리 치고받으며 날아다닐 메일을 미리 예상하고, 하나둘 진행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미리 점검하고, 일정지연에 대한 변명거리를 새하얀 슬라이드 위로 채워 넣었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몸은 무거웠지만 그제야 회사 휴게실에 몸을 뉘어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정신을 좀처럼 다잡지 못했던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가동이 중지된 작업라인을 통과해서 멍하게 연구실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길게 깨진 강화유리를 작업공간 한 켠에 모아둔 것을 미처 보지 못했고, 시계를 보려 무심코 든 왼쪽 팔이 그것에 베였다. 근육이 보일 만큼 살이 벌어졌고 그 틈에서 뜨거운 것이 바닥으로 쉴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옆에서 같이 걷던 동기는 크게 놀라며 빠르게 의무실로 연락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전혀 아프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오른손으로 왼쪽 팔의 상처 부위를 틀어막았고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피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끝났다'
봉합 수술을 받고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상처는 컸지만 다행히도 신경과 근육은 피해갔다. 차례차례 회사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프로젝트와 무관한 사람들 그리고 프로젝트와 관련한 사람들 모두가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모두가 업무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회복하고 쉬는 데 집중하라고 말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입원하고 일주일간 파도 같은 병문안 행렬이 지나간 뒤로는 적막한 병실로 전화가 쉴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나를 대신한 다른 인원이 그간의 이력을 모른 채로 일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을 테고, 뻔히 그 고생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팔에 링거를 꽂고 한동안 업무 관련 통화를 하고 나면 피가 역류해서 링거를 붉게 물들였다. 역류한 피는 응고되어 호스를 막았고 간호사가 나무라면서 링거를 교체해주었다. 간호사가 자리로 돌아가고 나면 전화는 귀신같이 다시 울려왔다. 결국 그렇게 병실에서 한 달을 꼬박 채운 후에 팔에 깁스를 하고 회사로 복귀해 출근한 첫날. 나는 야근을 했다.
어느 날, 다시 발생한 이슈 소식을 들으며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연구실로 이동하던 길이었다. 버스는 공장 내 사이사이 길을 따라 이동했고 이따금씩 정차해가면서 사람들을 오르내렸다. 창밖으로 무심하게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얼떨결에 내다본 곳 플래카드 위로 시선이 멈춰 섰다.
'당신 건강을 헤쳐가면서까지 중요한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순간 뜨거운 것이 가슴 아래에서 차올랐다. 온 몸에 피가 도는 듯했다. 내려다 본 왼쪽 팔 흉터가 빨갛게 일어나 날카로운 것이 지나간 흔적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상처는 아물고 새살은 돋겠지만 흉터를 남기는 법이다. 내 이십 대의 마지막 자락, 이 모든 시간들을 뚫고 나온 후일의 내 삶에는 과연 무엇이 새겨지게 될까?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공장으로 들어서는 물류차의 행렬. 쉴새 없이 라인으로 투입되는 반제품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유압 프레스의 숨소리. 익숙한 기계의 마찰음. 버스를 내리는 사람들과 다시 버스에 올라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굴레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또 다른 것이 찾아올 것이고 그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반복될 것임을. 지옥이란 것이 별다른 게 아니었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와 결코 달라지지 않을 미래를 목도해야 하는 것. 기껏 발버둥 쳐봐야 아픈 딸 때문에 연차를 썼다가 밀린 업무로 주말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등이 굽은 옆자리 과장이 내 미래일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될 대로 되란 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제도 오늘도 자정이 넘도록 일했고, 그럼에도 일은 이 정도 까지 밖에 진행이 되지 않았는데, 아직까지도 이만큼이나 남았네요. 이제 아예 잠을 자지 말까요?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그런 나를 마주하는 파트리더는 곤혹이었을 테지만 내가 알 바 아니었다. 그쯤 되니 화도 나지 않았다. 무엇인가 바꾸고 싶고 개선할 것이 있어야지 화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뜨겁고 거센 화염일지라도 태울 것이 없다면 한낱 성냥개비보다 무력한 것처럼...
그때의 나에겐 어떠한 의미도, 목적도, 거짓 희망도, 열정도 모두 전소해 사라져버렸던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1년간을 지지부진하던 프로젝트는 어느덧 상품기획부에서 통지한 일정을 넘겨버렸고 무기한 연기되었다. 나는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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