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최미애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8월 13일 새벽에는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내린다고 했다. 나는 그 시간 사무실에 있었다. 장애가 나서 전산 장비 쪽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실제 작업은 전산실에서 엔지니어와 다른 직원들이 진행하고, 나는 사무실에서 작업 전과 후에 서비스 점검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새벽 2시 무렵에 야참으로 식은 피자를 나눠 먹고, 다른 사람들이 전산실로 다시 돌아가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연이은 작업과 장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피자를 먹은 속이 영 더부룩했다. 편의점에서 활명수를 살 겸, 유성우가 내리는지 확인도 해볼 겸 사무실에서 내려왔다.
밖으로 나와 보니 달은 밝은 편이었지만, 밤하늘에는 구름이 그득히 끼어 있었다. 고층 빌딩 사이 어느 틈으로 별똥별을 볼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않았다. 옛날 사람들 같은 지혜가 없어, 어느 방향에 페르세우스자리가 있는지, 심지어 그게 어떻게 생긴 별자리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한동안 하늘을 올려 보다 단념하고 광장을 가로질렀다. 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편의점이 있다. 거기서 활명수를 살 생각이었다. 편의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그 앞 파라솔 아래에는 남자 두 사람이 뭔가를 먹고 있었다. 편의점 문은 열린 채였다. 그리고 문 앞에는 머리가 긴 여자가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시선을 좇아 보니 까맣고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고 있었다. 나도 고양이를 보고 싶었지만 일단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있던 여자가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하며 따라 들어왔다.
활명수를 계산하고 나와서 여자가 서 있던 곳으로 가 보았다. 편의점이 있는 빌딩과 그 옆 빌딩 사이의 골목으로, 폭은 2미터 정도 될까 싶었다. 그 골목입구에 나무 울타리 같은 걸 두르고 문을 하나 달아 놓았는데, 고양이는 그 열린 문턱에 있었다. 양 앞발을 다부지게 문턱에 얹은 채, 무섭기도 하고 호기심도 나는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여차하면 어디로든 뛰어 나갈 태세였다.
“고양이 아직 거기 있어요?”
편의점 점원 여자가 다가와서 물었다. 참치 캔을 하나 들고 있었다. 고양이가 도망가지 않고 있는 이유이리라. 여자는 이십 대 후반 정도로보였는데, 쌍꺼풀 수술을 한 듯한 진한 눈매는 조금 피곤한 듯했다. 여자는 참치 캔을 따다가 오른쪽 귓불을 만져보았다. 귀걸이가 빠진모양이었다. 나에게 참치 캔 좀 들어 달라며 내밀었다. 나는 반쯤 열린 캔을 받아 들었다. 여자는 링 모양의 귀걸이를 걸기 위해 쭈그리고 앉았다. 하지만 한참을 낑낑거리고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활명수를 마시며 여자와 고양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양이도 참치 캔과 여자를 번갈아 보는 듯했다.
“저, 혹시 제 귀걸이 좀 끼워 주실래요?”
여자는 자기가 말하고도 우스웠는지 민망스레 웃었다. 나도 당황스러워서 엥, 하고 웃었다. 여자는 고양이가 기다리니까 일단 젓가락을 좀 가져 오겠다고했다. 나는 활명수를 마저 마시고, 참치 캔 뚜껑을 전부 땄다. 여자가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들고나와서 참치를 조금 집고는, 웅크리고 앉아 젓가락을 고양이 쪽으로 향했다. 고양이는 조금 긴장한 듯 그 젓가락 끝을 가만히 응시했다. 여자가 자, 하고 젓가락으로 들고 있던 참치를 고양이 쪽으로 살짝던졌다. 고양이는 낚아채듯 참치를 물고 빠른 속도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래 봐야 막힌 골목이라 멀리 가지 못했다. 고양이는 입안의 것을 쩝쩝거리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거기로 들어가면 안 되는데, 문 잠가야 되는데…”
편의점에서 그 골목을 창고처럼 쓰는 모양으로, 잠그지 않으면 노숙자나 취객들이 멋대로 들어가서 소변도 보고 잠도 자고 한단다. 여자는 참치 캔을 문 언저리에 두었다. 고양이는 살금살금 참치 캔 쪽으로 다가 왔다. 여자는 고양이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문을 열어 두더니, 귀걸이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웃으며 귀걸이를 받아 들었다. 귀걸이는 완전히 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여자의 귓불 뒷 쪽 구멍으로 침이 잘 빠져나오지 않았다. 내 귀 같으면야 과감하게 헤집어가며 귀걸이를 걸었겠으나, 이건 남의 귀다. 가능한 한 아프지 않길 바라며 애쓴 끝에 마침내 귀걸이를 걸 수 있었다. 여자는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도 가볍게 묵례를 하고 다시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광장을 가로지르다 생각해 보니, 스마트폰에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이 있었다. 앱을 실행해서 일단 달의 위치를 맞추고, 제자리에서 빙글 빙글돌면서 페르세우스자리 위치를 찾았다. 저쪽이다. 하지만 거기서는 고층 건물 때문에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면페르세우스자리 방향으로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탁 트인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구름이 끼어 유성우가 제대로 보일 상황은아니었다. 하지만 이따금 그 구름 뒤편으로 뭔가 반짝이는 게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저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밤 하늘을 응시했다. 내가 집중해서 보고 있는 방향으로는 그저 붉은 밤하늘만 보였다. 뭔가 있다, 고 느끼는 건 언제나 초점에서 약간씩 벗어난 곳이었다. 긴 꼬리를 그리며떨어지는 유성우도 사람이 볼 수 있는 건 기껏해야 1초 내외다. 언제 어디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유성을 보며 소원을 빌려면, 그 소원은 그 사람의 마음에아주 강하게 배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새벽의 기상 상태로 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 1초는커녕 찰나나 다름없는 유성을 두고 빌기에 내 소원은참 허약하지 싶었다. 그럼에도 그 새벽에는 뭔가 봤다는 느낌이 마음 안에 남아 이따금 반짝였다. 작업이 잘 마무리 될 모양이다. 그저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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