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ONE PAGE <열>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본명 (이장욱)때문인지 나는 욱하는 성질이 있다. 한 세기동안 드러나지 않은 휴화산처럼, 매우 상냥하고 온화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내 안의 ‘뭔가’가 건들여지면 나도 모르게 ‘빵’하고 터져버린다. 최근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특강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이 워낙 집중을 안 해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초등학교 선생인 여동생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니 동생은 “오빠 그냥 미숙한 아가들이야, 뭘 그리 심각하게 굴어?”말하며 그냥 냅두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 나이 때 애들은 병아리처럼 소란스럽게 구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수업 내내 아이들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최근 봤던 전쟁영화 ‘덩케르크’가 내가 겪는 ‘초딩과의 전쟁’에 비해 너무나 평온해서 영화보는 내내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나의 고질적인 ‘욱병’은 단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소통에 미숙하신 분이었고 어머니는 아들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공포는 유치원 때이다. 퇴근하시던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아이스크림을 사가려는데 초콜렛 맛 먹고 싶어? 딸기맛 먹고 싶어?” 물었고 난 제일 좋아하는 초콜렛맛을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온 아이스크림은 딸기맛이었다. 당황한 나는 왜 초코맛을 안 사왔냐고 물었다. 그때 아버지가 하신 말은 무척 충격이었다.
“너 딸기맛 먹고싶대메...”
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3초간 얼어붙어 있다가 아이스크림을 아버지에게 집어 던졌다. 어머니에 대한 최초의 공포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내가 다녔던 대치동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토요일 ‘주말정리’라는 시험을 봤다. 틀린 개수대로 어머니에게 맞았던 나는 금요일만 되면 몹시도 몸이 아팠다. 소변을 보고나서도 계속 마렵고 머리가 어지러워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어느 금요일날 방과 후 집에 돌아온 나는 몸이 너무 안 좋다며 잠깐 잠 좀 자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럼 딱 1시간만 자고 일어나 시험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1시간 후 어머니가 내 몸을 흔들어 깨웠는데 나는 그냥 기절한 척 했다. 즉 일어났지만 눈을 계속 감고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포기한 체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런데 왠일인가? 몹시도 불안해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던 나는 살짝 눈을 떠 보았다. 그 때 문틈으로 방안을 훔쳐보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의 그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어떤 공포영화의 장면보다도 무섭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철제 옷걸이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시험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던 나는 교과서를 모조리 북북 찢어서 산산조각을 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 하다보니 ‘욱병’이 비단 나만의 증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때 만났던 여자친구는 술자리에서 나와 싸우다 알탕을 엎었고 한 때 치킨집을 경영할 때, 배달간 어느 집 아저씨는 아이들이 허락없이 치킨을 주문했다고 애들 보는 앞에서 치킨을 바닥에 내동댕에 치고 발로 마구 짓밟았다. 그러고는 어차피 못 먹을 치킨 값,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한 때 다녔던 회사에서는 상사의 중압감을 못견디던 어느 직원이 사무용 컴퓨터를 포맷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괴물이 된 이유는 무엇이며 치유되는 법이 뭘까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대한민국은 급진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희생되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가치있는 경험을 무시한 체, 무조건 목표한 결과에 도달하려는 인식으로 온 국민이 들쑤셔 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은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사회에 폭력이 만연하면서 대다수 사람들이 엄청난 스트레스와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기에 환경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보니 개인에게 특히 민감한 어느 타이밍에서 자기도 모르게 펑 터지게 되는 것이다. 층간소음으로 이웃간에 살인이 벌어지는 것도 한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의사는 <분노조절 장애>라는 병명으로 내가 왜 화가 나는지 꼼꼼히 따져 물어봐주었다. 분노의 원인들은 어린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여진 거부당한 것들이었다. 거부당한 억눌림과 마음에 난 상처들. 그것이 치유되지 않은 체 성장하면 자기도 모르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어버린다. 상담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욱병의 원인은 밝혀냈지만... 의사는 딱히 그 응어리를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난 자가치료를 해야만 했다.
일단 첫째로 나의 문제를 인정했다. 이전까지는 분노 원인을 외부적인 요소(환경과 타인)에 두었는데 모든 원인의 초점을 INSIDE(내부)로 두니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물론 처음부터 이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분노는 일시적인 기분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했다. 인간은 똑같은 현상을 기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예로 집에 손님이 오기로 약속했을 경우 준비를 많이 했을 때 손님이 약속취소를 하면 서운한 마음이나 분노가 일어난다. 반면 몸이 안 좋아 쉬고싶을 경우 약속이 취소되면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현상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손님이 약속을 취소한 것은 영락없는 팩트지만 그에 대한 반응 기분은 천차만별인 것이다. 그래서 삶에 벌어진 모든 현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복'이 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긍정 마인드>는 한번에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10년 전부터 연습을 해왔지만 여전히 시시때때로 감정이 요동 친다. 때론 너무 분노하면 장이 꼬이고 뒤꼴이 땡긴다. 그런 날은 하루를 거의 날리다시피 기진맥진해서 보낸다. 잠이 들어 의식이 리셋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긍정 마인드를 키우는 1단계 스텝이 뭘까 고민해보았는데 경험상 '수용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했다. 수용능력이란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주여! 왜 하필 제게 이런 시련이!"라고 외치기 보다 "살다보니 별일이 다 생기는 군~"하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나무를 보는 '근시안적 시선'을 숲을 보는 '원시안적 시선'으로 전환시켜 준다. 실제로 부정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잘 대처하면 긍정적인 상황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워낙에 에고(Ego)가 강해서 자신의 알(Egg)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알(Egg)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같은 의미에서 긍정적 상황에 대해서도 너무 좋아해서만은 안된다. 그것이 언젠가 부정적인 상황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예로 아는 지인이 경제적인 도움을 준 적이 있는데 추후 그것을 빌미로 내게 사기를 쳐서 난처해진 경우가 있었다. 그 계기로 감정에 휘둘려지기 보다 조금 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되었다.
<수용능력> 역시 단번에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모든 생명은 누구나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시키는 관성이 있어서 항상 외부와 충돌하게 된다. 그럴 수록 '침묵'하는 버릇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선인들의 도를 닦는 방법에도 '묵언수행'을 1단계로 두고있다. 삶의 변화를 위해 가장 첫번째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침묵'이다. 절이나 수도원, 명상센터에서도 수련자들은 말수를 줄인다. '침묵'의 원리는 분출하는 에너지를 참고 머금으며 숙성을 통해 몇번이고 내적으로 자정작용을 시키는 것이다. 일시적인 희노애락의 기분을 분출하지 않으며 그것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수용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침묵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분출하기 바쁘기에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때 단순하게 자신의 MUTE 버튼을 누른다면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작년 말에 회사를 그만두며 프리랜서 선언을 했는데 생각만큼 일이 들어오지 않아 매우 불안한 상태를 겪었다. 이러다가 굶어 죽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어 잠도 안오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 졌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습하는 불안감에 '피가 마르다'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생경하게 실감을 하고 있었다. 마침 지대넓얕의 패널 김도인이 명상센터 수강생을 모집하여 나는 무리하면서 까지 카드 할부로 수강을 신청했다. 처음에는 괜히 돈낭비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명상을 통해 내 안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수레바퀴에 비유했는데 자기 중심이 없으면 원심력에 지배당한다고 한다. 즉 원통의 겉면에 착 달라붙어 현상에 끌려다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침묵과 명상은 자신을 원의 중심으로 이동해 구심력을 유지해서 발란스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원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흔히 표현하는 '가랑이가 찢어진다' '등골이 휜다' '사지가 뒤틀린다'라는 말로도 내가 느끼는 고통을 완전히 드러내주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하든 나만의 표현이 있다. 그것은 '믹서기에 갈리는...'이다. 토네이도처럼 회전하는 날카로운 칼날에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고 피가 튀기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이러다가 정말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 였다. 그 시기에 '자살'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하고있는 행위도 일종의 '자살'이라 생각했다. 단 죽음으로 도망치기 위한 자살이 아니라 살기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자발적 행위라는 점에서 나름 숭고하고 영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시기동안 확실히 내 마음의 디톡스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용서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5년간 내가 몸 담았던 교회의 목사님과 교인들이었다. 가난한 청년 교회로 시작한 순수했던 교회에 돈이 있는 신자들이 몰려 들어오면서 교회가 변하기 시작했다. 차별과 이기주의가 횡행 했고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도 늘었다. 난 교회 주방장으로 300명이 넘는 신도들의 점심 식사를 책임졌고, 셀공동체의 수장으로서 사랑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기에 끝까지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점점 목사님의 사심으로 운영되었고 결국 나는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목사님이 설교 때 내가 악마의 유혹에 들었다 말한 사실을 남아있는 신도를 통해 전해 들었다. 심지어 일부 교인들에게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문자를 받기도 했다. 벌써 6~7년도 더 된 일이라 깨끗이 잊은 줄 알았는데 몇번이고 꿈에서 그 교회를 찾아가곤 했다. 다른 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뒤쪽 구석 한켠의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내 모습.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과 마주쳤을 때 목사님은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꿈을 반복해서 꾸다가 최근에야 목사님과 포옹하며 화해하는 꿈을 꾸었다. 교인들이 나를 따듯하게 맞이해주었고 난 다시 그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침묵과 수용 그리고 소통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아직까지도 나의 욱병이 완치되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과 욕심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목표가 확고할 수록 더욱 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을 즐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한계단 한계단 침묵과 소통의 단계를 밟으며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즉 단번에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욱병을 고치기 위해 탱고를 추러 간다. 하고싶은 동작을 뽐내기 보다 파트너의 숨결을 느끼며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가 원하는대로 이루어 주는 것. 춤추는 10분이라는 시간동안 행여 서로 안 맞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완주하는 것. 춤이 끝난 후 파트너의 서운하거나 일그러진 표정을 봐도 절대 상처받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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