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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03. 2018

0세 시대

소소하다 ㅣ 한공기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젊음의 척도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


그게 나의 지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 속의 생각일 뿐, 해가 바뀔 수록 몸이 예전같지 않다. 유난히 추웠던 올해 겨울에는재채기를 할 때마다 몸 안에 천둥이 친 것처럼 온몸이 울리고 뼈가 시렸다. 동안인 편이라 나름 자신감이 있었던 나는 나의재채기에 깜짝 놀라고 만 것이다. 그리고 올 겨울부터 거울을 보기가 두려워졌다. 혹시나 어제와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지 안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다는 깨달음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그래, 육체의 노화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마음의 나이가 육체 나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초중고 동창들을  만날 때마다 확실하게 실감한다. 자식이 있는 친구들은 만나면 우리는 영국식 티가 나오는 고급 카페나 드라마에서 봄직한 방이 있는 고급 일식집에 모여 자녀교육, 돈, 명품, 해외여행 등 화두로 이야기를 채운다. 하지만 나는 뜬금없이 연애, 영화, 게임, 춤, 자기계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들은 그런 나를 무척 신기해하고 부러워한다. 한 여자동창생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야 너가 하는 그 탱고 나도 한번 해볼가? 거기 가면 남자들 많이 만날 수 있냐?~”라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새 부터인가 친구들은 나를 번개모임에 점점 초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통해 알게되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시원했던 이유는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나 역시 폭삭 늙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거리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대치동학원, 영재학교, 과학고, 유학 등등의 그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단어들이 내겐 부글거리는소화불량 개스 거품으로만 보였다. 언제나 느끼는 것은 노골적으로 입밖에내지는 않지만, 모두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신분상승’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친구들 중에는 굉장한 부자가 몇몇 있고 그들은어느 새 동창들의 워너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친구가 부럽기도 하지만 헛된 망상에 헛바람이 드는 내 자신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모임에 초대하지 않아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 것이다. 참고로 회비는 엔분의 일인데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대신 난 나만의 모임을 즐긴다. 올해 초부터 스윙댄스 모임에 나가고 있다. 회원들의 연령대가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 사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처음 레슨을 받으러 갈 때는 기대와 설레임에 부풀어 있었다. 마치 대학 신입생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홍대에 있는 딴스 홀에는 재즈, 찰리 채플린,  엘비스플레슬리에 관련된 사진이 많이 붙어있어고 벽에는 Rocking Roll이라는 네온등이 눈에 띄었다. 공간에서 주는 젊음의 에너지로 나는 이미 압도당했다.  수업을 할 때 보니 정말 이제 막 대학을졸업한 듯한 애띈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남학생들의 피부에 광이 흐르고 무척 뽀송뽀송 한 것에 놀랐다. 스윙댄스는 이전에 추던 탱고춤에 비해 건전하고 귀여웠다. 스텝에 맞춰 빙글빙들 돌기도 하고, 깡총깡총 뛰기도 하는 것이 초등학생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춤이었다. 진짜로 초중고 체육시간에 배우면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다른 수강생들 못지 않게 어깨를 흔들며 신나게 즐겼다. 점프를 할 때마다 무릎과 골반에 통증을 느꼈지만, 젊어진 기분탓인지 참을만 했다. 스윙 강사는 내게 참 흥이 많으신 분이네요,라고 칭찬까지 해주었고 또 어느 여학생은 벌써부터 친한 척하며몇살이냐, 무슨 일을 하느냐 등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어느 여학생이 내게 오~빠라 부르며 애교를 부리고 자신의 파티비용 (9000원)을 대신 내달라 조르는 것이었다. 마음 속에서는 "그럼, 오빠가 쏠게!" 외쳤지만, 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왜?"라고 물었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될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아닌, 진짜 쿨한 가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후 간 뒤풀이 자리에서 난 영락없는 아저씨라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학생들은 술을 마시며 대화 없이 바로 술게임으로 돌입했고 게임의 속도를 못따라가는 나는 계속 술을 마셔야만 했다. 심지어 처음하는 게임인데도 게임의 룰에 관한 설명없이 하나! 둘!하며 게임을 시작했다. 금새 걸린 나는 억울해하며 룰을 먼저 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학생들은 "형님, 원래 게임은 걸리면서 배우는거예요~"말하며 소맥이 가득 담긴 맥주잔을 내게 들이밀었다. 그 날 이후로 뒤풀이에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몇살 먹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지만 그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질문인지 나는 잘 안다. 살다보면 가끔씩 나이를 초월한 사람을 만나곤 한다. 예를 들어 7살 먹은 나의 조카는 눈이 매우 깊다.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 아주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그것에 의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한다.  또 일흔이 넘은 나의 서예선생님은 스타크래프트나 모바일 게임을 좋아하고 여행을 많이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나보다 더 활력있는 삶을 사신다. 그 두 사람을 보면 그들의 나이가 몇인지 전혀 인식되지 않는다. 나보다 방 정리를 잘 하는 조카에게 청소 노하우를 배우기도 하고 나보다 게임을 잘하는 사부님에게 게임 노하우를 배우기도 한다. 나이에 개의치 않고 마음 맞는 사람과 어울린다면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싶다. 혹시 누가 내 나이를 묻는다면, 해맑게 웃으며 0세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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