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는 길
모든 전문영역은 그 영역에 도달까지의 길, 즉 도(道)가 있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단순한 열정을 발산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 역시 스토리의 도를 계속 닦고 있는 사람이라 완전하지 못하지만, 내가 깨달은 것을 함께 나누면 그 도를 닦으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읽는데 지루하지 않았으면 해서 자문자답 형식을 취했습니다. 끝까지 잘 따라오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최근 개인 소식을 알려주세요.
올해 영진위 기성작가 장편영화 기획개발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스포츠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최근에 비즈위크(프로듀서와 미팅하는 자리)에 참가했는데 제작사 3곳에서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어느 제작사와 할지 조율 중입니다.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보조작가 두 명이랑 영화 두 편, 드라마 한 편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습니다.
요즘 보았던 작품 중에 좋았던 작품은?
영화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드라마는 [은중과 상연], 애니메이션은 [귀멸의 칼날]과 [체인소맨]입니다.
최근 스토리시장에 대해 알려주세요.
개인적으로 많은 프로듀서와 작가들을 만나서 한국 스토리 시장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영화시장/드라마 시장은 투자가 안되어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일단 투자가 잘 안 되는 이유를 말씀드리면 코로나 이후 잠시 투자가 활발했는데 많은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감독들의 거대자본 영화가 폭망 하는 바람에 영화 쪽은 완전 투자가 얼어붙었습니다. 드라마는 예산이 워낙 많이 드는 반면, 수익을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눈물의 여왕'이 시청률 흥행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기록한 주된 이유는 드라마의 높은 제작비 때문입니다. 16부작에 총 56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러한 막대한 제작비는 시청률이 좋아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제작사들은 저예산 스토리를 선호합니다. 문제는 스토리 시장에 좋은 스토리가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듀서들은 좋은 스토리를 찾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공모전도 늘어났습니다. 작가지망생에게는 이런 위기가 기회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예산으로 제작할 수 있는, 좋은 스토리를 쓰면 기회가 빨리 찾아옵니다.
좋은 스토리의 기준이 뭘까요?
우선 새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기가 탄탄해야 합니다. 프로듀서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많은 작품들을 봅니다. 전 세계 영화, 드라마, 소설과 웹툰, 웹소설을 찾아보면서 발굴합니다. 즉 기존에 나온 작품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면 프로듀서들은 모작이라고 판단합니다. 모작은 뽑히지 않습니다.
(모작: 원작을 본떠서 만드는 행위나 그 결과물)
좋은 스토리가 많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가장 큰 원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입니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창의성이 부족합니다. 창의성이란 사실 자아가 발달되어야 하고 소통을 잘해야 나올 수 있는 능력인데 우린 어릴 때부터 자아를 존중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 소통보다 경쟁에 익숙합니다. 픽사를 예로 들면 픽사의 모든 작품은 감독의 개인경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또 개발과정에서 전 직원이 소통합니다. 그런 시스템이 좋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입니다. 즉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에 귀 기울이기보다 타인의 욕망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자신의 무게중심이 약하다 보니 유명하고 거대한 것에 쉽게 흡수됩니다. 자기 스스로 자존감이 높은 것이 아니라, 뭔가에 의존하면서 위안을 얻습니다. 이런 태도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드라마를 많이 봤다고 자신이 드라마를 쓸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이론과 실습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흔한 결과가 응모작 대부분이 베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공식을 외우고 그 공식에 대입하는 전형적인 한국 교육식으로 접근해서 스토리를 쓰는데 그런 스토리가 공모전에 당선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습니다. 기본기도 탄탄하지 않고 오리지널리티도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스토리를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의 꿈은 공모전 당선이 아니라 작가여야 합니다. 작가가 뭘까요? 텍스트로 스토리를 잘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독서량이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20년간 스토리텔링 교육을 했는데 지금까지 경험상 자신의 꿈을 이룬 수강생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즉 텍스트에 익숙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영화, 드라마를 많이 본다고 잘 쓸 수 없다는 얘기죠. 영상작가가 되려 해도 기본적으로 언어 감각이 뛰어나야 합니다.
제 아카데미 수강생들은 기본적으로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심지어 고전소설까지도. 그리고 무조건 에세이부터 쓰게 합니다. 에세이는 일기와 다릅니다. 타인이 읽을 수 있는 나의 경험이 담긴 스토리입니다. 즉 나의 자아와 타자와 연결하는 과정이 스토리텔링의 기본입니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정말 많이 늡니다. 물론 제 수강생 중에 에세이를 단 한편도 못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수강생이 쓴 스토리는 정말 형편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무리 기교적으로 잘 불러도 소울이 느껴지지 않으면 탈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글에는 반드시 자기만의 바이브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리지널리티입니다. 어떤 소재를 가져와도 자기만의 바이브로 녹여낼 수 있어야 진정 작가인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단계별 실습을 해야 합니다. 영상 스토리텔링은 소설처럼 단 번에 쓸 수 없습니다. 여러 단계의 제작과정을 통과하면서 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는 캔버스에 그림 그리듯이 작업할 수 있지만, 영상작가는 마치 공장을 돌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그저 자신을 믿고 단번에 대본을 써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런 과정으로 나오는 글은 결국 자기도 모르게 베껴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작품이 아니라 그냥 연습일 뿐이고 수정해도 절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영상작가는 영상스토리 개발 과정의 시스템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작법이론을 읽거나 배웠다고 절대 쓸 수 없는 것이 영상 스토리텔링입니다.
영상스토리텔링 과정 시스템(1.기획 - 2. 구성 - 3. 대본)을 통과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수강생들에게 평균 6개월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라고 합니다. 즉 1년에 두 번 공모전에 도전하라고.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최소 3개월 만에도 작품 완성이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꾸 반복 실습하면서 감각을 익혀야 합니다. 손흥민 선수가 맨몸으로 우수한 경기를 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골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도 스토리텔링 감각을 익히셔야 합니다. 그 감각만 있다면 계속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2022년부터 스토리 공모전에 도전했는데 올해까지 연속으로 6회 당선되었습니다. 한 해에 두 번 당선된 적도 있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요?
첫째, 스토리텔링 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반드시 영상스토리텔링 과정 시스템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가장 중요한 질문, [스토리의 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작가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작가의 정의는 뭘까? 예를 들어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이 이후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드라마 작품으로 등단했는데 흥행에 실패해서 이후 작품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작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죠. 작가의 정의는 쓰고 있는 상태이다.
즉 작가가 되려면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아쉬운 점은 다른 지망생들만큼(가수지망생, 댄스지망생, 요리사지망생 등등) 열심히 훈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로또를 하듯이 공모전에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는데 참가자 평균 연령이 18.2세인데 어린 참가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노래를 잘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연습을 했길래? 저조차도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 참가자들이 혼자 고독하게 연습하는 시간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작가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실 저도 작가지망생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 역시 영화과 시절 여러분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쓴 첫 장편 시나리오를 제작사에 보여줬을 때 '장편 시나리오를 쓸 줄 모른다'라고 혼쭐이 났습니다. 즉 지금 아는 것을 깨닫기까지 스토리텔링 연구팀 시절, 제작사 직원시절, 현업작가 활동시절, 스토리 아카데미 강사시절이 오랜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영상 스토리텔링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굉장히 거대한 작업입니다. 보는 것과 쓰는 것은 정말 다른 일입니다.
대부분의 작가지망생들이 생각하는 대본이라는 것이 집 앞에 있는 동산 정도라면, 제가 인지하는 대본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즉 대부분 작가지망생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것의 크기가 정확히 가늠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꿈꾸고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공모전에 자꾸 탈락하면서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일까?' 좌절합니다. 그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재능을 따지기 이전에 1. 그것을 모른다. 2. 그것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작가가 되는 방법? 간단합니다. 과정을 제대로 배우십시오. 그리고 매일 쓰면서 연습하세요.
생각하는 속도보다 글 쓰는 속도가 더 빨라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지망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관객의 자리와 작가의 자리는 지상과 대기권 밖처럼 매우 다르고 멉니다.
즉 관객의 자리에서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빨리 작가의 자리로 넘어오세요.
똑같은 작품을 보는 태도와 방법도 다릅니다.
또 당선이 된다 해도 계약까지 가려면 기본 실력이 받쳐줘야 합니다.
공모전 당선을 꿈꾸지 마시고, 작가라는 직업을 꿈꾸시고 정진하세요.
그러면 공모전 당선은 자연스럽게 벌어집니다.
제가 20년간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수강생에게 처음 하는 질문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예요?'인데 그동안 들었던 대답이 김수현, 노희경, 김은숙, 김은희, 임상춘, 박지은, 정서경, 박해영 8명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영화, 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가가 고작 8명이라는 것이 신기하지 않으세요? 이중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정서경 작가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 스토리시장의 현실입니다.
즉 스토리 우주에는 별이 될 여러분의 자리가 무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인간의 자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그 자아를 믿고 돌진하세요. 당신의 능력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