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스토리텔링 접근법
안녕하세요 류가 작가입니다.
공모전을 준비하거나 개인적으로 작품을 준비하는 스토리텔러들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올해 영진위에서 당선된 장편영화가 제작사 계약이 성사되어 현재 캐스팅을 위한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작품 개발에만 몰두하다 보니 그동안 글이 뜸했네요.
오늘은 좀 여유가 생겨서 커피 한잔 하면서 마음 편하게 들어왔습니다.
제가 요즘 대본을 수정하며 강렬하게 느끼는 것을 자유롭게 나눠볼까 합니다.
스토리텔링은 확실히 인간의 본능인 듯합니다. 원시인의 동굴벽화만 봐도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 역시 자는 동안에도 꿈꾸며 스토리텔링을 합니다. 깨어있을 때 전전긍긍하던 씬을 꿈에서 한방에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스토리 본능을 어떻게 펼치는가가 우리의 관건 아닐까요?
제가 항상 주장하는 첫 번째는 '자아'입니다.
'자아'가 확립되지 않으면 오리지널 스토리를 쓰기 힘듭니다.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그 사실을 간과합니다.
제가 아카데미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칠 때 첫 수업에 보여주는 PPT 2장입니다.
작가지망생들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를 실컷보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듯이 신나게 스토리텔링합니다. 반면 찐 작가들은 고된 일하는 농사꾼 같습니다. 자기만의 오리지널 스토리 씨앗을 땅에 심고 피땀눈물로 물과 양분을 주며 기획안을 만들어 싹을 틔웁니다. 구성단계에서 기둥을 만들고 대본단계에서 나뭇잎과 열매의 결실을 봅니다. 왼쪽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말이죠.
왼쪽과 오른쪽의 결과물 차이는 큽니다.
왼쪽의 결과물은 그냥 짜깁기에 불과하고, 오른쪽의 결과물은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은 기획안만 보고 1차 심사를 하는데 어디서 본 듯한, 흔한 스토리는 무조건 떨어집니다.
즉 수없이 공모전을 도전해도 계속 떨어진다면, 내가 과연 오리지널 스토리를 쓰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든 수강생들이 하나같이 묻습니다.
"샘~ 이 세상에 새로운 게 어디 있어요?"
저의 대답은 "당신이 제일 새로워요!"
우리는 먼저 우리가 받은 교육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입시교육 과정에는 인간의 '자아발전'과정이 제거되어 있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아'라는 단어가 매우 낯섭니다.
일단 자아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신'을 믿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신의 고유한 성질을 투여합니다.
성경에서 '신이 인간을 자신과 닮게 만들었다.'에서 그 닮은 것은 바로 '자아'를 말합니다.
즉 '나'라는 개념이 '자아'입니다.
모두의 각각의 자아는 본디 새롭고 창의적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확장합니다.
인간이 '자아'가 없다면 인류는 지금처럼 발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달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를 무시하고 또 타인의 자아를 무시하고 정해진 규칙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신과 소통하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그저 '~하는 법'만 따집니다.
즉 자신의 자아를 봉인하고서 말이죠. 작법책의 수많은 규칙에만 의존한 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아'를 깨우는 법은 무엇일까요?
일단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욕망, 나의 의지를 끊임없이 나의 언어로 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에세이'입니다. '에세이'는 일기와 다릅니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읽혀야 합니다. 자신의 SNS에 쓰던지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들어야 합니다. '에세이'는 자연스럽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스토리'로 확장합니다. 또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이 아니더라도 나의 에너지로 가득 찬 스토리를 쓰게 됩니다.
마치 개성이 강한 싱어송라이터가 만든 노래처럼 말이죠.
저는 20년간 아카데미에서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면서 별의별 글쓰기 접근법 실험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에세이로 스토리텔링 첫 단추를 꿰는 사람이 결국 오리지널 스토리를 쓰면서 입시나 공모전에 성공한다는 것.
즉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오리지널 스토리를 쓰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자꾸 내가 본 것을 이것저것 가져와서 결합시키는데... 누가 봐도 식상한 결과물만 양산하게 됩니다.
나 자신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사람이 결국 타자의 마음도 헤아리고 사회를 이해하게 되면서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스토리를 쓰게 됩니다.
글쓰기는 '과정의 미학'입니다. 작법서를 독파했다고 당장 대본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마치 요리책 한 권을 읽고 바로 요리사가 될 수 있다. 혹은 이소룡의 무술교본을 읽고 바로 무림고수가 될 수 있다는 착각과 같습니다.
반드시 매일 실습과정을 반복연습해야 합니다.
참고로 저는 마케팅과 잡지 기자일도 오래 했는데 온라인 쇼핑몰 상품페이지를 쓰면서... 기사를 쓰면서...
나만의 글쓰기 연습을 했습니다.
2016년에는 에세이 모임을 만들고 현재까지 계속 에세이 쓰고 - 서로 보여주고 - 감상 듣기 운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켭켭이 쌓여서 희곡을, 영화 시나리오를, 드라마 대본을,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게 생각한다는 쓴다와 동일합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즉 쓰면서 동시에 생각합니다. 즉 생각을 손으로 합니다. 지금 이렇게 하듯이 말이죠.
이 세상에 완벽한 소설도 대본도 없습니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하기에 인간이 만든 것은 모두 불완전합니다. 결국 모두가 과정의 산물일 뿐입니다. 즉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보면 나만의 결과물이 완성되는 것이고, 그 결과물이 문제가 있다면 내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나는 소질이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과정을 제대로 통과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본능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이유가 뭘까요?"
한국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대답은 이러합니다.
"욕심은 저 하늘 끝에, 하지만 현실은 바닥에... 그 간극을 한 스텝 한 스텝 오르며 메우기보다 조급한 마음에 자꾸 점프하는데 하늘에 닿을 수 없으니 우울해지는 것?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는 것?"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에 사는 외국 사람들에게 듣는 대답은 또 다릅니다.
"제가 느끼기에 한국 사람들은 너무 고독해 보여요. 모두 자기만의 방에 갇혀있고 외부와 소통을 자주 안 합니다. 저도 삶이 힘들지만 가족, 친구, 지인들과 자주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놀다 보면 힘을 많이 얻거든요. "
전 이 사고실험에서 놀라운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두 대답 다 일리가 있는데 관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한국 사람의 관점은 종에 관한 것이고, 외국인의 관점은 횡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의 관점은 '성공'이라는 키워드에서, 외국인의 관점은 '소통'이라는 키워드에서 접근합니다.
저는 이 차이에서 우리의 삶에 '종'에 대한 강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거의 저도 그랬고, 아카데미 수강생들도 '종'에 대한 강박이 강합니다.
일례로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라는 말보다
"빨리 등단해서 작가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등단을 하려면 당연히 좋은 작품을 써야 하는데
좋은 작품을 어떻게 쓸지는 고민하기보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앞섭니다.
그러다 보니 충분히 사유할 과정를 스스로 가지지 못합니다.
신기한 건 이런 '종에 대한 강박'이 수강생들의 대본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저는 스토리텔링의 모양이 물고기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관객이 새롭게 접하는 영화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 열쇠 구멍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주인공의 세계에 빠지면서 세계는 점점 확장합니다. 그리고 중반에서 주인공은 딜레마를 겪고 방황하다가 자기만의 목표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의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스토리는 다시 점점 좁아집니다. 목표점으로 집중니까요. 즉 타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생선 모양이 이 마름모와 같다면 결국 종은 플롯이고, 횡은 주인공이 만들어가는 에피소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만드는 스토리가 종에 비해 횡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 주인공이 플롯에 질질 끌려가는 것
- 주인공과 주변 인물 간의 상호적 관계가 잘 보이지 않아서 주변 인물을 도구로만 활용하는 것
- 그러다 보니 너무 뻔한 에피소드만 나열되고 있다는 것
- 결국 재미없다는 것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많이 고민했습니다.
스토리란 주인공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외부세계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기에 도일 상황에서 모든 인물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즉 종과 횡을 동시에 진행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종'이 더 설득력 있게 좋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대본 쓰기 3단계 기획-구성-대본의 두 번째 단계 구성과정에서 표를 만들어 활용합니다.
12 플롯포인트: 1. 일상 > 2. 소명 > 3. 소명거부 > 4. 멘토 > 5. 1막진입 > 6. 조력자, 적대자, 시험 > 7. 첫번째 위기 > 8. 딜레마 > 9. 두번째 위기 > 10. 3막진입 > 11. 클라이막스 > 12. 결말
각 플롯포인트에 해당되는 인물의 '상황- 마음 - 반응'을 동시에 적습니다.
제 수강생들에게도 그것을 시킵니다.
그런데 처음 하는 사람은 죄다 잘못된 방법으로 작성합니다.
잘못된 방법이란 인물들이 따로 논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만의 목표로 움직인다는 것이죠.
저는 이 잘못된 방법 역시 '종에 대한 강박'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왜 '횡에 대한 인지'를 못하는 것일까?
우리의 진짜 삶도 타인들과 공존하면서 타인과 서로 관계를 통해 나아갑니다.
나와 타자는 서로 돕기도 하고, 나와 타자는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방향성이 시시각각 변합니다.
즉 종과 횡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나선형 구조'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나선형 구조로 스토리텔링
어렵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더군요.
막상 스토리를 완성하고, 공모전에 당선되고, 프로듀서를 만나서 모니터링을 받다 보면
제 스토리에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 자아: 주인공의 마음이 잘 안 느껴져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설득력이 부족해요.
2. 레퍼런스: 비슷한 결의 작품 좀 참고하세요. 그 작품을 넘어서야 하는데 더 못하는 듯...
3. 시의성: 지금 사회와의 연관성이 좀 더 있었으면 합니다.
4. 트렌드: 좀 올드하네요... (제일 많이 듣는 소리)
5. 제작비: 요즘 투자 잘 안 되는 거 아시죠? 이 대본은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드는데 저예산에 맞게 고치세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생각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오랜 기간을 거쳐서 성장하면서 많은 실수를 반복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산을 미리 등반한 사람으로서 어줍지 않게 충고하자면...
종에 대한 강박을 버리세요.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대본을 급하게 쓰는 성향이 강해요. 단적으로 말하면 구성 단계를 뛰어넘어서 그래요.
그저 지문과 대사로 한글 파일을 채우기 너무 급급합니다.
사실 영상 스토리텔링은 문장 중심인 순수문학과 다르게 디자인 영역이 필요합니다.
플롯포인트를 어떻게 구성할지...
인물간의 관계를 어떻게 구성할지...
각 시퀀스를 어떻게 구성할지...
각 씬을 어떻게 구성할지...
미리 설계되어 있지 않으면 대본을 쓸 수 없어요.
구성없는 대본은 마치 즉흥적으로 채워나가는 점묘화 같기도 합니다.
공모전 심사위원이나 프로듀서들이 작가들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지점이 뭔 줄 아세요?
맛깔난 대사가 아니라, 바로 구성입니다.
대사는 추후에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어요. 각색자가 해결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구성이 탄탄하지 못한 대본은 부분 수정이 불가능해요.
전체를 다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완성'이라는 강박에 날림공사로 지은 건물의 붕괴와도 같아요.
'구성'은 종과 횡의 완벽한 발란스를 찾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여러 가지 고려사항을 체크하고 동시에 고려하면서, 건물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아요.
설계도가 탄탄하면 대본을 쓸 때 매우 즐겁습니다.
목적이 명확한 씬을 쓰는 즐거움이란... 모호한 씬을 쓸 때 보다 훨씬 자유롭습니다.
종과 횡이 탄탄해지니까...
작가 본연의 끼를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종과 횡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종이 혼자 강해지면 캐릭터가 종에 질질 끌려가고
횡이 혼자 강해지면 스토리가 산만해진다. 잘못하면 산으로 간다.
종과 횡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발란스를 맞추며 나선형으로 확장해야 한다.
잊지 마세요. 이 접근법으로 구성과정을 통과하면 당신의 스토리가 훨씬 탄탄해질 것이고 당신의 글쓰기도 훨씬 즐거워질 것입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