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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테르 Jan 12. 2021

혐오스러운 무한도전의 시절

혐오의 정점에 무한도전이 있었다.

무한도전 그 아름다운 시작


한 때 대한민국의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이름은 [무한도전]

평균 이하라는 콘셉트이지만 노홍철을 제외하고는 사실 평균 이하는 아니었다.  유재석은 정점의 시작이었고  박명수 정준하는 하향, 정형돈은 정체, 하하는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정말 평균 이하는 노홍철 하나뿐이었다.



6개월 파일럿 형태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언제든 사라져도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도전 프로그램은 늘 흔했다. 이창명의 [출발 드림팀]은 대표적인 예 일 것이다. 다만 출발 드림팀은 강한 자라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무한도전은 약골이라는 차이점은 존재했다. 이렇게 단순한 표현되는 프로그램에서  어느 날 새로운 PD에 의해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10년 많은 마니아 팬을 가진 방송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한도전의 보이지 않는 멤버 혹은 유재석과 함께 쌍두마차라고 불리는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이끌면서 무한도전은 모든 것에서 거침이 없었다. KBS는 이명박 , 박근혜 두 명의 보수정권의 대통령 밑에서 가장 정권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지만 MBC의 무한도전은 시청률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좌파라는 외부적 시달림 속에서도 잘 만들어 왔다. 그 당시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김태호 PD의 청개구리 심보였지는 지 모른다. 하지만 그 무한도전도 그 끝이 다가올 때쯤 자기 공멸(정형돈의 심리적 압박에 의한 자가 탈퇴 길, 노홍철 음주운전)과 김태호의 심리적 압박 그리고 마니아 팬들의 지나친 공격으로 무한도전은 결국 마냥 행복한 종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MBC 무한도전에 김태호와 유재석이 있었다면 KBS 1박 2일은 나영석과 강호동이 있었다.  두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매우 고액 연봉자 이면서 바보라는 콘셉트로 시청자들에게 부담 없는 모습으로 다가갔다. 만약 그들의 고액 연봉과  연예인의 거만한 모습만 보였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억지스러운 바보 같은 모습이지만 그 시대를 대변할 만큼 웃음을 주었다. 특히 1박 2일은 정치적 메시지는 없고 전국 노래자랑 같은 분위기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장점과 좋은 점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면에서 1박 2일은 대중적으로는 성공하고 모습을 보였다. 반면 무한도전의 팬들에게는 영혼 없는 프로그램으로 까이기 일 수였다. 


김태호의 패착 


MBC 음악방송인 음악중심은 예능성이 강조되었고 MBC 예능 방송 나는 가수다와 복면가왕은 음악이 강조되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김태호의 패착은 멋진 하루 편에서 엿볼 수 있다. 기획의도는 시청자와 시민을 만나고 만남의 공간을 택시를 통하 투영하면서 나름의 택시기사들의 애환을 담고자 했다. 하지만 택시 멋진 하루 편의 택시운전 자격 논란에 휘말리고 만다. 결국은 좋은 의도가 묻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무한도전의 에피소드 중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비효과 이후 북극곰의 눈물까지 이어지는 내용들은 좋은 기획 의도와 재미있는 예능적인 요소를 잘 살렸다. 하지만 그 방송이 과연 대중들에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되었다. 무한도전은 메시지는 실행하라 였지만 결국 그 의도는 반영되지 않고 논쟁과 혐오를 부추기는 구조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나비효과 콘셉트 무한도전의 방송구조는 환경을 구하는 실행의 보다는 상호 비난을 우선하게 만드는 모양이 된다. 



그 불편함은 나비효과 이전 에피소드인 의상한 형제 편에서도 자세히 드러난다. 쓰레기를 버리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예능이라는 틀 안에서 결국은 장난스럽게 보이고 말았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빈곤 포르노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방송이라는 그 한계에서 결국 더 혐오를 부추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것은 김태호가 의도하였든 하지 않든 결국 그렇게 되었다. 


무한도전의 에어로빅과 쉘 위 댄스 도전은 불편했다.  무한도전의 모든 의도는 순수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취미생활과 생활체육을 유도하기 위한 좋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평균 이하의 도전이 아니라 그들이 모든 이슈를 가져가 버리는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무한도전은 무한도전의 출연진들은 절대적 강자들이다. 방송과 높은 인지도를 통해 주목받아야 할 사람들을 사장시켜 버렸다.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나왔다. [예외조항]까지 만들어 급하게 남북 단일팀을 만들었고 결국 그 안에서 오랜 기간 동안 준비했던 사람들은 외면받고 그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은 매국노라는 취급까지 받았다. 시대가 변했고 남북이 각자 출전하고 남북 단일 응원이라는 하나의 고리를 만들어도 충분했다. 하지만 정치적 논리를 통해 개인의 취향과 시간은 깡그리 무시되었다.  대통령이 촛불에 의해 탄핵당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2018년의 자화상이었다. 


만약 무한도전이 공적인 영역 대중적 적인 영역에서 도전을 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도전하고 굳이 부담스러운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다면 더 오래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무한도전이 사랑받았던 만큼 무한도전의 결말이 지금보다 저 좋은 마지막을 장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다시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장점을 제외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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