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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라 Nov 21. 2020

헛되고 헛되니 지금 이 순간이 귀하도다

메멘토 모리

 미술사에서 ‘바니타스(Vanitas)’는 죽음의 불가피성, 속세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소재로 하는 정물화의 양식이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헛되다’는 뜻으로 성경에 있는 다음 구절에서 왔다.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비관주의는 바니타스 정물화의 주된 주제였는데, 이는 흑사병이나 30년 전쟁같은 중세 말의 비극적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아름다움이나 물질적 풍요는 영원하지 않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아름다움과 세속적인 욕망의 허영심을 경계하고, 물질적 풍요의 덧없음을 상기한다.


페테르 클라스(1597〜1660) 作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Still Life). 두개골이나 촛불, 꽃병의 꽃이나 모래시계 등 인생무상을 상징하는 소재들이 주로 그려졌다


 하지만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말이 인생을 허무주의로 이끌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내 삶의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선순위에 집중하여 한정된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한다. 언론인 박돈규는 그의 책 《월요일도 괜찮아》에서 메멘토 모리가 주는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죽음을 늘 의식하라는 충고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려는 게 아니다. 삶에서 진정한 우선순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결국 죽는다고 생각하면 근심은 대부분 무의미하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 감정에 대해서, 진짜 바라는 것에 대해서.”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현재’가 주는 소중함은 더욱 커진다. 죽음은 내가 사랑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해준다. 결국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는 ‘지금의 순간을 잡아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실제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기 직전에 사형집행을 면했던 경험이 있다. 죽음의 공포를 강렬히 경험했던 그는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미슈킨의 입을 통해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감정을 이렇게 적었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생명을 다시 찾는다면...그것이 영원이 아닐까! 그럼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 그때 나는 매 순간을 1세기로 연장시켜 아무것도 잃지 않고, 1분 1초라도 정확히 계산해 두어 결코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리라!”



 매 순간을 1세기(백년)로 연장시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니! 보통의 일반인은 사형수의 감정을 경험하기 힘들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오거나 어마어마한 일을 겪지 않는다면 공감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다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불교의 초기경전인 <아함경>은 오늘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다만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라. 누가 내일 죽는 것을 알리요. 저 죽음의 군대와 마주치지 않을 자는 없다. 이와 같이 잘 깨닫는 사람은 한마음으로 게으름 없이 오늘의 일을 실천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자.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 라틴어,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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