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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Oct 11. 2021

호주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더운 겨울이었다.

호주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꿀렁거리며 설렌다.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적인 행사라 어디서든 항상 기대가 되지만 크리스마스를 한여름 해가 쨍쨍할 때 예쁜 바닷가에서 보낼 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더 기대가 되고 설레겠는가! 특히, 한여름부터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듣고 다니는 나로서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는 건 그 무엇보다도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내가 호주를 막 도착했을 때는 12월 초였고, 크리스마스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때였다.  당시 백배 커스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과 외국인 친구들 몇몇을 초대해 코트슬로우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게 됐다. 크리스마스를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보낸다는 것은 내 인생에 너무 소중한 순간들 중 하나가 될게 분명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 어느덧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고, 2-3개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항상 날씨가 맑은 서호주는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날씨가 좋았다. 


우리가 갔던 바다에는 바비큐 스폿이 설치되어있었는데, 1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린 사람은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 바비큐 스폿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둔 것이라 예약으로 자리를 맡아둘 수도 없는 시스템이었다.  


거한 크리스마스 아침식사를 끝낸 가족이 우리에게 테이블을 넘겨주었고 간신히 테이블을 잡은 우리는 뭐에 홀린 듯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아마 옆 테이블 고기 냄새에 홀린 것이었지 싶다. 허겁지겁 굽고 먹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햇볕을 가득 안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수영을 매우 좋아하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이 날이었던 것 같다. 한 여름의 바다수영에 빠진 이유를 말하자면 세 시간은 곧잘 재잘거릴 수 있다. 더운 공기와 선선한 온도의 바다 그리고 물에 젖은 나를 언제든 뽀송하게 말려주는 햇빛 덕분에 바다수영은 매해 해야 하는 리스트에 꼭 추가되는 나와의 약속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바다수영을 끝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마치고 그 바다에서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여전히 다들 그때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 날 주웠던 조개껍데기, 친구들과 웃으며 했던 농담들, 같이 먹고 놀았던 시간 일분일초가 나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좋은 추억을 안겨준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바다와 크리스마스에도 그때 묻은 행복의 기운이 오랫동안 곁에 남아있길 바라본다.




워킹홀리데이의 현실을 마주할 때가 왔다.


터키에서 호주로 도망갈 때 가지고 간 현금은 단돈 200만 원과 함께 가자마자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같이 가져가서 도착했을 땐 돈에 대한 걱정이 크게 없었다. 하지만 가자마자 크리스마스를 한 번 지내고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설렘에 소비만 주구장창 하다 적어지는 통장의 숫자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일을 못 구하면 어쩌지..'라던지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얻은 기회인데 놓칠 수는 없어!'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물론 일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갈 때 영어로 작성한 이력서 20장 그리고 가자마자 추가로 프린트 한 이력서 150장. 이 수많은 이력서들을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돌렸는지도 모르게 하루 종일 이력서만 돌리고 다녔다. 호주 카페에서 일하고 싶은 막연한 소망이 있었지만 내가 갔던 때에 백배커스에 지내는 워홀러들 사이에선 소문이 돌고 있었다. "요즘 일자리가 구하기 쉽지 않은 때라 많은 사람들이 그냥 돌아가고 있어. 더 늦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구하는 게 좋을 거야." 한 친구가 친절하게 그 소문을 직접 전해주는 바람에 내 머릿속은 온통 일을 구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가득했다. 사소한 걱정도 크게 키워 생각하는 초보 워홀러인 나에게 떠돌아다니는 그 말은 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보니 입맛대로 원하는 곳에만 이력서를 주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해서 여러모로 정신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이력서를 돌렸던 곳들 중 여러 군데에서 대면 면접 제의가 왔고, 그렇게 출근하기로 한 곳은 두 군데. 그중 한 군데는 호주인이 경영하는 카페였다. 터키에 있었을 때 영어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고 갔지만 막상 카운터 앞에 서서 외국인들과 대화하려니 긴장이 됐다. 그래도 공부한 시간이 있는데 자신감을 갖고 받은 첫 주문. 

"Can I grab a long-mac, please?" 

내가 상상했던 질문은 'Can I have a cup of coffee, please?'와 같은 것들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으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같이 일하던 프랑스 친구도 내가 당황한 것을 느꼈는지 바로 나 대신 캐셔 업무를 봐주었고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커피머신 앞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서호주에서는 커피를 주문할 때 긴 단어를 짧게 줄여 말하곤 한다. 마끼아또를 'Mac'이라고 줄여 말하거나, 이외에도 chocolate을 choc이라고 한다거나, Americano가 없는 대신 long black이 있다거나 등 미국 영어에 익숙해져 있는 한 사람으로서 호주 카페에서 호주 영어를 처음 마주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2주쯤 이어져서야 조금 감을 잡기 시작했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많은 도움 주었던 친구들에게 여전히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말해주는 것을 한 자도 빠짐없이 적으려 얼마나 노력했던지 그때의 노트는 지금 봐도 여전히 심장이 쿵쿵거린다. 안타깝게도 일했던 카페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는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모든 추억이 묻혀있다. 추억의 무게가 무거워 차마 가지고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지 다시 서호주에 가서 그곳에 묻혀있는 그 많은 추억을 꺼내보는 상상을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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