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으로 배운 가장 현실적인 정리법
에너지도 있고, 시간도 있고, 해야 할 일도 분명한데 이상하게 집은 치우기 싫은 날이 있다. 누워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바쁘게 돌아다니지도 않는데, 정리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몸이 무거워지는 상태. 그날의 나는 집 안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며 커피를 마시고, “어디서부터 하지…”라는 말을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주방엔 설거지가 쌓여 있고, 아이 방엔 장난감이 바닥을 점령하고 있고, 욕실 거울에는 물때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해야 할 일은 너무 명확한데, 손을 대는 순간 일이 커질 것 같아 아무 데도 손을 못 대고 서성인다. 이때 사람은 흔히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단정한다. “난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왜 이렇게 집을 못 치울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상태는 게으름이라기보다 과부하에 가깝다. 해야 할 일이 한 덩어리로 보일 때, 뇌는 그것을 ‘위험한 일’로 인식하고 회피한다. 그래서 에너지가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정체 상태에 빠진다. 마치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띄워놓으면 마우스가 멈추는 것처럼, 집도 할 일이 한꺼번에 떠오를수록 손이 멈춘다.
그날 나는 무작정 가장 어지러운 주방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가장 덜 어지러운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개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옷 두어 벌을 제자리에 넣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먼저 정리됐다. 집 전체는 그대로인데, 내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한 하루”라는 낙인이 지워졌다. 이 작은 경험이 이후 내 정리 방식의 기준점이 되었다.
요즘 우리는 정리마저도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유튜브와 SNS에는 ‘비포&애프터’ 영상이 넘쳐난다. 산처럼 쌓인 물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수납함이 줄지어 들어가고, 집이 호텔처럼 변신하는 장면들. 보기에는 시원하지만, 동시에 숨이 막힌다. 저 정도는 해야 정리한 거라는 암묵적인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회는 늘 ‘한 번에, 확실하게, 눈에 띄게’ 바꾸라고 말한다. 다이어트도, 공부도, 자기 계발도, 집 정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시작부터 너무 큰 목표를 세운다. “오늘은 집을 싹 치워야지.” 이 말속에는 사실상 대청소, 대정리, 대결심이 모두 들어 있다. 문제는 이런 목표가 의욕을 주는 동시에, 시작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너무 커서, 너무 완벽해야 해서, 차라리 안 하는 쪽을 선택하게 만든다. 정리를 미루는 많은 사람들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기준이 너무 높아서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정리는 늘 마음속 숙제로 남고, 숙제는 미룰수록 더 무거워진다. 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에너지는 있는데 집은 치우기 싫은 상태”는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완벽주의에 길들여진 피로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