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데, 나는 집을 단장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나를 만나버렸다

by 여운

누군가의 발소리를 상상하며 시작되는 하루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하루에 약속이 두 개쯤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고, 일주일 동안 일정이 비어 있으면 괜히 내가 세상에서 살짝 지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 만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 누구랑 만나지?’라는 생각이 하루의 기분을 정한다. 약속이 있으면 괜히 샤워할 때도 발걸음이 가볍고, 머리를 말리면서도 머릿속으로 대화를 미리 연습한다. 반대로 일정이 텅 비어 있으면, 특별히 슬픈 일이 없어도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약속이 없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아주 사소한 핑계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커피 한 잔 할래?”라는 말은, 사실 “오늘 나 좀 봐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 성향은 집을 대하는 태도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집은 쉬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누군가를 맞이할 수 있는 무대’다. 아침에 이불을 개면서도, 식탁을 닦으면서도, 나는 늘 상상의 관객을 떠올린다. 혹시 오늘 아이 친구들이 놀다가 더 놀고 싶다며 우리 집으로 몰려오면 어떡하지? 혹시 갑자기 지인이 근처에 왔다며 커피 한 잔 하러 들르자고 하면? 그리고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집 안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애 둘 키우는데도 집이 참 단정하다.” 그 한마디가 주는 묘한 위안과 뿌듯함. 나는 그 말을 아직 듣지 않았는데도, 이미 마음속에서는 수십 번쯤 들어본 사람처럼 미리 기뻐한다.


그래서 정리는 늘 ‘혹시’를 위한 준비였다.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누군가가 나와 내 삶을 잠시 들여다봐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무도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지 않으면 혼자 깨끗한 집을 쓰는 사람이 되고, 오면 칭찬받는 사람이 되니까. 어느 쪽이든 손해는 없다는 계산이 은근히 깔려 있다. 사실은 계산이라기보다, 외로움을 대비하는 나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집을 단정히 해두는 일은,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는 마음을 정리해 두는 일과 닮아 있다. 오늘도 혹시 모를 발소리를 상상하며 바닥을 닦고, 혹시 모를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소파 쿠션을 바로 놓는다. 나는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하루를 준비하며, 동시에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보여지는 삶에 길들여진 시대


요즘 우리는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은 시대’를 산다. 휴대폰 화면만 켜면 수십 명의 얼굴과 하루가 동시에 펼쳐지고, 누군가는 지금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깔끔한 집에서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목격하고, 비교하고,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스며든다. ‘나도 저만큼 살고 있나?’, ‘내 일상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가?’ 삶이 조용히 흘러가도, 보여지지 않으면 왠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


이 흐름 속에서 집도 더 이상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정돈된 거실과 반짝이는 주방, 미니멀한 아이 방은 이제 취향을 넘어 ‘자기 관리의 증거’처럼 소비된다. 사진 한 장으로 부지런함이 설명되고, 정리된 공간이 삶의 태도를 대신 말해준다. 특히 외향적인 사람에게 이 구조는 더 강하게 작동한다. 타인의 반응으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은,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흐른다. 손님이 없어도 마음속에는 늘 관객이 있고, 그들의 고개 끄덕임을 상상하며 우리는 오늘의 설거지를 끝낸다.


문제는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삶을 정렬하는 방식이 오래가면, 스스로의 기준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데 있다. 정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 정리하고, 편안해서가 아니라 평가받기 좋은 모습이기 때문에 공간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도 보지 않는 집 안에 혼자 있을 때조차 마음이 허전해진다. 조용히 쉬고 싶어도, 이 장면을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괜히 휴대폰을 켜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지금 너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니?”, “너의 오늘은 보여줄 만하니?” 그 질문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도 혼자만의 호흡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정리와 미니멀라이프, 그리고 집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살림의 차원을 넘어, 이 질문들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연습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편안히 머물기 위해 공간을 정돈하는 것. 그 선택이야말로, 보여지는 삶에 길들여진 시대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중심에 세우는 작은 저항처럼 느껴진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여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잘 해내는 방법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방식을 고민해왔습니다. 삶의 부담을 줄이는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가고자 합니다.

7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7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