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보다 먼저 정리하는 마음
해가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보통 무엇을 먼저 할까. 다이어리를 사고, 목표를 적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새해 운이 달라지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추가’가 아니라 ‘정리’에 가깝다. 더 잘 살기 위해 무언가를 더하기 전에, 작년의 것을 내려놓는 일. 달력의 첫 장을 넘기기보다, 서랍의 마지막 칸을 비우는 일.
나는 매년 1월 1일이 오기 전에 꼭 한 번 집 안을 천천히 훑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이건 아직 올해까지 데리고 가야 할까, 아니면 여기까지일까.” 그러다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소스를 발견했다. 분명 작년 초, ‘언젠가 근사한 요리를 해 먹겠다’는 마음으로 샀던 병이다. 결국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채, 시간을 다 써버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걸 버리면서 이상하게도 물건보다 ‘기대’를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쓰지 못한 계획, 이루지 못한 다짐, 해보지 못한 일들. 새해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날인 줄 알았는데, 그날 나는 오히려 ‘작년을 정리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력이 바뀌는 순간보다, 서랍 하나를 비우는 순간에 시간이 넘어가는 느낌이 더 선명했다.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쌓는다. 물건도, 정보도, 감정도. 클릭 몇 번이면 집 앞으로 도착하고, 스크롤 몇 번이면 하루치 자극이 쏟아진다. 사회는 끊임없이 말한다. 더 사도 돼, 더 가져도 돼, 더 누려도 돼. 하지만 “이제 충분해”, “이제 보내도 돼”라고 말해주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집은 점점 무거워지고, 마음은 점점 복잡해진다. 정리는 부지런함의 문제가 아니라, 흐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들어오는 속도에 비해 나가는 속도가 너무 느린 시대. 새해가 되면 우리가 괜히 정리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 불균형을 잠시라도 바로잡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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