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현실 사이에 쌓인 것들
집을 정리하다 보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물건들이 있다. 자주 쓰는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버리기 어려운 것들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물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의 나를 위해 산 물건이 아니라, 되고 싶었던 나를 대신해 사 온 물건이라는 점이다.
멋지고 세련된 사람을 동경하면 옷장이 먼저 불어난다. 화려하지만 손이 잘 가지 않는 옷과 화장품이 쌓인다. 살림을 잘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인테리어 소품이나 정리용품이 늘어난다. 똑똑해 보이고 싶을 때는 책이 많아진다. 그 물건들은 실용보다 이미지에 가깝다.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대신 들여온 셈이다.
내 경우에는 아이 장난감과 아동용 책이 많았다. 아이를 잘 키우는 부모에 대한 동경이 컸다. 아이와 충분히 놀아주고, 책도 많이 읽어주는 사람. 그런 모습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장난감과 책을 하나둘 사들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와 노는 시간은 생각보다 부족했고, 책은 읽히기보다 쌓였다. 물건은 늘었지만, 실천은 따라오지 못했다.
그때서야 알게 됐다. 내가 못하거나 서툰 부분을 물건으로 메우려 하고 있었다는 걸. 노력 대신 물건을 들이면, 마음은 잠시 편해진다.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천이 없는 물건은 오래가지 못한다. 쓰이지 않는 물건은 점점 부담이 되고, 방치된 물건은 오히려 나의 결핍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그런 물건을 버리려 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스스로 접는 것 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능력을 벗어난 물건은 나를 끌어올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관리되지 않은 채 남아, 계속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버릴 수 있었던 순간은,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솔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아직 어려운지 인정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물건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는 대신, 나를 기준으로 물건을 보게 됐다. 내가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것, 지금의 생활에 맞는 것만 남기기로 했다.
정리는 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이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되고 싶은 나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모습을 물건으로 대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은 필요하다. 내가 실천하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물건도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 실천에 맞지 않는 물건을 내려놓는 일은 포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삶을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물건을 덜어내고 나니, 집이 가벼워진 것보다 마음이 먼저 편해졌다. 더 이상 물건 앞에서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공간. 아마 정리가 주는 가장 큰 변화는, 그 인정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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