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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Dec 08. 2024

프롤로그 - ‘그날’로부터 하루 전날 (5)

타임슬립 소설

https://wrtn.ai/



소그드 상인이나 신라, 발해, 왜국 등지에서 온 자들이 장사를 하는 서시(西市: 서쪽 시장)와 달리, 동시에서는 주로 장안 백성들의 생필품을 판다.

자신들의 안전과 장사에 관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할 외국인들이 모인 서시도 가봐야겠지만, 그 전에 동시로 가서 하녀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피란을 온 사람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는 동시에서 밥을 사먹고 갖고 온 귀중품을 팔며 떠들고 있을 테니까….


“안록산이가 있던 데가 말이지, 자그마치 범양(范陽:  현재의 베이징)이라고! 그렇다는 건, 안록산이가 장안에 올 때까지 시일이 아주 많이, 그러니까 아주아주 많이 걸릴 거란 말이야! 범양에서 냑양까지가 무려 2,000리(중국 척도로는 840킬로미터)나 되고, 낙양에서 이 장안까지는 또 900리나 되니까 말이야!”




“당연하지요! 안록산이의 반란군이 제아무리 많은들 관군도 성들도 아주 많으니까요!”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대인’ 자신에게 한 말이겠지만, 주영치는 잘 받아주었다.

황제 폐하를 곁에서 모시는 고력사 나리와 잘 알고, 상당한 재력도 있는 자이니 가까이 하는 게 나은 것이다.

 나중에 고선지 장군께도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그리고 ‘대인’이나 주영치의 기대대로 상황은 진행되는 듯했다.


“아, 저 빌어먹을 노무 안록산이가요, 처음에는 말이죠, 양 승상을 토벌하라는 폐하의 밀지를 받았다면서 거병을 했더래요. 절도사 신분으로 고용한 오랑캐 무리까지 합쳐 무려 15만 대군을 이끌고 말이죠!”


주점에서 국수그릇을 깨끗이 비운 젊은 사내가 술이 든 사발을 들고서 떠들어댔다.

행색을 보아하니 피란민이 아니라 말린 과일을 파는 떠돌이 상인인 듯했다.

게다가 주영치가 동시에 들어선 뒤 피란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대인’이나 하녀나 경거망동을 한 거구먼…. 저 친구가 범인인가? 하하하!’


하지만 젊은 과일장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양 승상은 귀비 마마의 오라버니인데!”


“그럼! 그럼! 명색이 폐하의 처남이잖아. 돈도 잘 모으고….”


그렇게 말한 자는 정작 양국충이 그 돈을 어떻게 모으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장안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기도 했다.

연로하신 폐하께서 자신의 누이동생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동안, ‘어명’을 내세워 벼슬을 팔고 뇌물을 받으며, 중요한 자리에는 자기 부하들을 심었다는 사실 말이다.

양국충의 끄나풀들이 두려워 입 밖에 내지는 않고 있지만, 어쩌면 안록산이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일단은 말이지, 아까 대궐에서 나온 분이 천명하지 않았는가. 안록산이가 닷새쯤인가 전에 정말로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일세. 더 이상 안록산이는 폐하께서 임명한 절도사 나리가 아니라 대당제국의 역적이라고 말이지! 그러면서 필사침(畢思琛) 장군에게 낙양 방어를 맡기셨다지 않은가.”


역시나 하녀가 고작 떠돌이 장사꾼의 말을 듣고 호들갑을 떤 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럼 뭐, 안록산이가 아무리 지랄염병을 해도 낙양에서 끝나겠구먼.”


“맞아, 맞아. 혹시라도 고선지 장군이 대설산(大雪山:  파미르 고원) 너머 토번(吐蕃: 티벳)을 정복하셨을 때처럼 또 다시 무공을 세우실지 누가 알겠는가.”


무리 중의 어떤 중년 사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주영치를 봤다.

곧 여러 남녀노소의 시선도 일제히 주영치에게 집중되었다.

하긴, 주영치가 뭘 하는지는 그리고 왜 하는지는 장안의 온 백성들이 아니까.


“그렇소, 바로 그럴 것이오! 우리 고선지 장군께서 그 수퇘지 안록산이 놈의 거대한 배때지를 큼직한 장검으로 쑤셔주실 거요! 감히 폐하와 귀비께 그 안에 든 게 오직 충성심이라고 속이며 두들겼던 그 배때지를 말이오! 믿어요! 믿으시라고요!”


“그래요, 주 형! 누가 감히 천하의 고선지 장군을 안 믿는다고 하였소? 하하하!”


그 중년 사내를 시작으로 다들 웃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의 의미를 잘 알기에 주영치는 겉으로는 따라 웃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부글거렸다.


‘어리석은 것들…, 고선지 장군 덕에 명줄도 안 끊어지고 재산도 간수한 걸 깨닫고도 계속 웃을 수 있나 보자!’


그런데 바로 옆에 선 ‘대인’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졌다.

아주 화가 났을 때 빼곤 도통 자신의 심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양반이 아닌지라, 주영치는 일이 요상하게 풀리려는 건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곧 입술이 일그러질 정도로 입을 꾹 다물며 생각했다.


‘아냐, 이 양반이 지나치게 신중해서 그런 거야. 고선지 장군이 안록산이 놈의 배때지를 쑤시고, 수급을 들고서 주작대로에 들어서시기만 해도 자기가 고선지 장군이 이기실 줄 알았다고 떠들고 다닐 양반이니까. 하긴, 이렇게 신중하니 큰돈을 벌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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